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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초저속 충전 중

by 이 순간


고속충전이 고장 났다.


간식창고의 과자를 우르르 꺼내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익숙한 웹툰 속으로 풍덩 빠져

주인공과 함께 회귀도 하고, 빙의도 하고, 환생도 했다.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집 삼아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모든 센서를 꺼버리기도 했다.




골인 지점을 통과했는데,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 일만 끝나면 미뤄둔 글도 쓰고, 읽지 못한 책도 읽어야지.’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마무리를 하고 나니 그 마음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목표만 바라보며 달렸다.


일이 끝나면

색색의 단풍을 보며 계절을 느끼고,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산책을 하고

일렁이는 마음을 글로 적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선택과 집중’

선택했고, 집중했다.

하지만 집중이 끝나자

기쁨보다 먼저 스며든 건

텅 빈 방 안에 혼자 남겨진 듯한 허함과

서서히 몸 안으로 번져오는 무기력감이었다.

붙잡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먼지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기분.




‘성취 후 우울증후군’(Post Achievement Depression)

목표를 향해 달릴 때는 도파민이 활발히 분비되지만

목표가 사라지면 급격히 줄어들면서

허무가 밀려온다고 한다.

몰입이 사라진 자리에는

조용한 정적만이 남는다.


하루 이틀쯤은 쉬어도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유예기간은 며칠로 끝나지 않았다.

일상적인 일도 하기 싫어졌고

해야 하는 일도 겨우 이어갔다.


직업 특성상

내 감정의 흐름을 꽤 빠르게 이해한다.

어떤 패턴으로 꺼지고,

어떤 속도로 회복하는지를 안다.


하지만

‘안다’는 것과

‘조절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 나는

빈 들판 한가운데에 멈춰 서 있는 사람 같다.

한참을 뛰어온 뒤라

심장은 아직 빠르게 뛰고 있지만

몸의 힘은 빠졌고

마음은 비워진 채 정지해 있다.

멈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유인지,

잠시 쉬는 중인지,

아니면 재정비의 시간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억지로 마음을 추슬러

빨리 회복하라고 등을 떠밀고 싶진 않다.

나는 나를 믿고 있고

믿는다는 건 “곧 괜찮아질 거야”가 아니라

“괜찮아질 때까지 나는 너를 기다릴게”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빨리 털어내라거나

의지로 이겨내라는 말은

내 마음에게 해주고 싶지 않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네가 쉬고 싶을 때까지 쉬어.

나는 네가 원할 때까지 기다릴게.

문제가 생겨도

꼭 이겨내지 않아도 돼.

그 문제를 가진 채로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니.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조용히 움직이고 싶어질 테고,

혹은 스스로 정리하게 될 거야.”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든,

나는 그만큼 나와 함께 머물러 줄 거다.

지금 나는

고속충전 대신

초저속 충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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