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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난 날, 나도 다시 태어났다.

육아를 하며 만난 진짜 나

by 메이더그린

육아를 하기 전과 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육아 전의 나는 껍데기만 있었을 뿐,

속은 텅 빈 사람이었다.

남들의 시선 속에 비치는 나를 포장하느라

정작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지금 나는 행복한지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늘 유행에 민감하고 당당한 척,

누구에게나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내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고,

그 시간들이 남들에겐 그럴듯해 보였을지 몰라도

혼자 있을 땐 나조차 내가 낯설게 느껴져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결혼을 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

아이들이 그렇게 예뻐 보인다던데,

나는 오히려 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나는 정말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구나..'라고

단정 지었다.




우리 집은 이혼 가정이었다.

열세 살, 열한 살이던 언니와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 시절엔 대부분의 부모들이

지금처럼 육아서를 읽거나

육아 정보를 찾아보는 일이 흔치 않았지만,

그래도 양육자가 부모님인 집과 조부모님인 집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부모님의 영향인지,

나는 복잡한 관계에 얽히거나 누군가를 오래 책임져야 하는

출산과 육아에 대해 막연한 불안과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었던 나인데 뭐에 홀렸는지..

사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정신을 차려보니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혼전임신...이었으면

스토리가 좀 매끄러운데 그것도 아니었다.

(기대했던 많은 분들께 실망을...

개그 욕심 있는 내겐 이것은 치명타...ㅋㅋㅋ)

무튼 서른다섯에 결혼을 하고,

서른여섯에 아이를 낳았다.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늦은 나이였고,

노산이라며 주변 분들의 걱정과 우려도 많았지만

임신 기간 내내 모든 게 순조로웠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복덩이였던 내 아이는,

세상에 나와서도 나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모유를 먹이고,

꼭 껴안고 살 냄새를 맡고,

심장 소리를 들으며 함께 잠이 들었던 그 날들

내 인생 처음으로

'온전히 행복하다 ‘는 감정을 느꼈다.

아이와 함께 잘 자고, 잘 먹고,

아직은 내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은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안의 어린 나에게 고백하듯,

고해성사하듯 건네는 진심이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털어놓는 그 시간은

내 마음속 깊은 상처를 스스로 쓰다듬고

치유하는 순간들이었다.




아이에게 더 많은 걸 보여주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더 넓은 세상을 알려주고 싶어서

여행도 부지런히 다녔다.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나 자신에게도 소소한 행복과

사소한 사치를 허락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한 한 문장.

미국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말이었다.


" 신기한 역설은,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육아 전보다 체중은 10킬로 이상 늘었고,

눈가와 입가의 주름도 완전히 자리를 잡았지만

예전처럼 외모에 집착하던 그때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이 체중을 당분간은 유지하겠다는

구질구질한 변명도 살짝 섞여있음.....)


이유는 아마 그 문장 그대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진짜 내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이 사실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아이를 낳고 알게 되었기에,

내 아이에게는

더 건강한 자존감을 심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완벽한 엄마가 있을까?

늘 부족하지만 지금처럼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하루하루가 퍽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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