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뭐예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주저 않고 회사 연구원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직업이지 뭐 당연한 거 아닌가?' 30년을 넘게 살면서 이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명제였다. 어떤 회사를 다니더라도 회계업무를 하면 회계원, 안전관리업무를 하면 안전관리원, 부품제조를 하면 제조업 무원, 연구개발업무를 하면 연구원 등등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에서 하는 일이 있다면 일의 성격 그 자체가 직업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한 강연장에서였다.
"직업과 직장의 차이를 아시나요"
'무슨 농담 따먹기 하나? 스무고개 같은 건가? 일을 하는 곳이 직장이지 뭐 이런 뻔한 걸 물어보는 거지?' 연사분이 던진 첫 화두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분도 딱히 정답을 기대하진 않으셨는지 바로 강연을 이어가셨다.
"직업은 직장이 없어져도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분명히 구분해야 노후를 대비하실수 있습니다."
이 짧은 두 마디에 느닷없이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회사가 생긴 지도 꽤 됐고 여태까지 월급 한번 밀린 적 없었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뭐 요새 불경기라고 성과급도 없고, 임원들 연봉은 동결이라고 하긴 했는데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뭐, 근데 혹시나 진짜 회사가 망하면 어쩌지? 저번에 뉴스 보니까 갑자기 대기업공장인데도 부도났다던데.... 당장 아파트 대출도 이자만 100만 원이 나가는데 어디서 막일이라도 해야 되나....?'
마음속 깊은 곳에 파묻어버리고 애써 왜 면했던 불안함이 산불처럼 강렬하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사실, 그 불안함의 원인은 너무나도 단순 명료했다.
'회사는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혹시나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이 말이 회사에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자. 나서지 말고 대충 중간만 하자. 뭐 이런 의미는 절대 아니다.)
이제라도, 그동안 가졌던 직업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과감하게 버려야 했다. 그리고 이 불안함의 원흉과 정면으로 부딪혀 이겨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부캐를 키워보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 직업이 뭐예요? 하고 묻는다면 당당히 직장 다니는 작가라고 답할 것이다.
이제는 여러분께 조심히 질문드려보겠다.
"직업이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