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르의 마니아인 제게 인생영화를 1가지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이번 작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 주인공은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 <콘택트, 1997>입니다. '칼 세이건' 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칼 세이건(1934~1996)은 영화 <콘택트>의 원작가이자 당대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했던 천문학자입니다. 그는 대표저서인 「코스모스(1980)」등 다양한 집필과 강연을 통해 20세기의 대중에게 '천문학 붐'을 일으켰던 인물입니다. 천문학자였던 칼은 차가운 과학의 언어를 넘어, 따뜻한 인문학의 언어로 대중들과 깊이 소통했습니다. 그리고 광활한 우주 속 생명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한 때 과학자의 삶을 살았던 시절이 있습니다.
스스로 알지 못한 채 태어나, 짓지 않은 이름으로 불리우던 우리는 / Track 9 - 이소라 中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어떤 곳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곤 했습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미지의 세계와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한 때 당신과 제가 품었던, 가장순수했던 시절의 질문이 있습니다.
"우주에 과연 우리는 혼자일까, 어디엔가 다른 존재가 있지는 않을까?"
1. 믿지 않는 자의 절실한 믿음
전파 천문학자가 된 엘리
주인공인 엘리(조디 포스터)의 어린 시절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다정한 아버지와 함께였습니다. 외딴 시골에서 어머니 없이 자랐던 엘리는, 자신의 방에서 전파 교신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녀는 미지의 바깥 세상에 있을 누군가의 존재가 궁금했고 그들과 연결되고 싶었습니다. 너무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던 어느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엘리는 빛의 속도로 떠나갈 전파 속에 스스로의 존재를 애타게 띄워 보냈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대답이 없을 부모님께 말을 건네곤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엘리는 전파 천문학자가 되어 SETI(외계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여전히 그녀는 세상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존재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파 속 메시지가 간절할지라도, 광활한 우주 속에 서로의 존재를 마주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과학의 숫자를 믿는 자에게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은 100%에 가까울테지만, 성간 우주의 거리는잔인하리만치 아득합니다. 어쩌면 인류는 영원히 고독해야 할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희망의 불빛이 꺼져가던 무렵, 결국 엘리는 외계로부터의 전파 메시지를 수신합니다. 전 세계는 그 소식에 주목하고 그녀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임무와 대면합니다. 전파 메시지에 담겨 있던 것은 매우 정교한 설계도였습니다. 그 설계도는 웜홀(이론 속, 가상의 천체)을 활용한 '텔레포트 장치'를 담고 있었고, 탑승할 기회는 엘리에게 주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신과 종교를 믿지 않았던 엘리는 인류를 대표할 자격을 박탈 당하게 됩니다. 그녀는 과학을 믿으며 미지의 존재와의 만남을 꿈꾸었지만, 끝내 종교와 사랑의 힘은 부정합니다.
2. 언젠가는 서로에게 닿기를
텔레포트 장치에 탑승하는 엘리
결국 여러 우연과 역경을 이겨낸 끝에 엘리는 텔레포트 장치에 탑승하게 됩니다. 그 순간 웜홀을 통해 먼 우주로 이동하는 장면의 연출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감탄을 자아낼만큼 아름답습니다. 이와 유사한 장면이 <인터스텔라, 2014>에 등장하는 것은우연의 일치가 아닐겁니다. 오늘날 SF 장르의 수많은 작품들이 이 영화의 여러 설정과 장면을 오마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소개할 장면은 작품의 가장 중요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과학자의 지식과 한 인간의 지평을 아득히 넘어서는 여행이 끝나고. 엘리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모습의 한 한 행성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잊혀진 어린 시절에 꿈꾸었던 낙원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손에 닿을 듯한 거리의 하늘에는 다양한 모습과 빛깔의 행성과 별이 걸려 있었고, 칠흑 같은 우주는 온통 오색찬란한 성운과 은하수로 수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내 엘리가 마주한 미지의 존재,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외계의 지적생명체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외계의 이방인은 그녀에게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고자,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이의 모습을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엘리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모습을 한 그에게 묻습니다. 이토록 친절한 인사와 따뜻한 만남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는 대답합니다.
"우리의 만남은 아주 오래 전 과거로부터 시작되었어."
"나 역시 과거 어느 우주의 이방인으로부터 같은 만남을 제안 받았고, 받은 선물을 그대로 건넬 뿐이야."
"이 위대한 여정은 멈추지 않아야 해."
"우리는 서로에게 닿으려는 노력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돼."
"고독한 운명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함께하게 될거야."
3. SF, 끝내 사랑을 외치는 이유
어린 시절 꿈꾸었던 어느 행성
여정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온 엘리는 위대한 여정과 만남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단 한 치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한 때 냉철한 과학의 언어만을 신뢰하던 그녀는, 이제 하나의 진리를 확신합니다. 필연적 고독과 존재의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사랑'에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여정이었지만 만남의 설렘과 벅찬 감동은 실재했다는 것을.
그렇게 영화 <콘택트>가 건넸던 사랑의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하는 유산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SF영화에 담겨 있는 주제의식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됩니다.인류의 냉철한 과학이 잃지 말아야 할 본질은 결국, 모든 존재에 대한 애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 창백한 푸른 점 위의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1990.2.14. / 보이저 1호 촬영)
1990년 2월의 어느 날 칼 세이건은 NASA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위험한 도박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당시 보이저 1호는 13년의 항해 끝에 명왕성 근처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위성은 곧 태양계를 떠나 성간 우주로의 영원한 항해를 시작할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연 보이저 1호는 카메라의 방향을 돌려 텅 빈 듯한 공간을 촬영하게 됩니다. 칼 세이건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지구의 사진을 촬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60억KM나 떨어져 있었던 위성의 방향을 조절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정이었고, 사진이 제대로 촬영되지 못할거라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햇빛의 각도와 광선의 산란이 겹친 기막힌 우연(혹은 운명)은 단 1장의 위대한 사진을 남겼습니다.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한 칼 세이건의 연설을 일부 소개하며,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