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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케 Nov 11. 2024

잡초의 철학

작은 밭에서 배운 자연의 법칙


잡초에 대하여 생각이 많아진 건 시골집을 얻은

후부터다. 1평 남짓한 자그마한 텃밭을 일구며

난생처음 잡초와 전쟁을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쇠뜨기, 민들레, 질경이가 특히 인상 깊었다.


쇠뜨기의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다. 뽑아도

뽑아도 어디선가 다시 나오고, 장마철에는

며칠 만에 몇십 센티미터씩 자라 있다.  군락을

이룬 엄청난 쇠뜨기를 보면 순간 불 지르고 싶을

만큼 답답함이 밀려온다. 쇠뜨기는 관절 건강,

성인병 예방, 뇌 건강, 항암 작용, 간 건강, 면역력

향상 등 다양한 약효가 있다고 한다.

번식력과 약효면에서 질경이도 뒤지지 않는다.

이처럼 약효가 뛰어나도 난 약재상이

아니기 때문에 텃밭에서는 뽑아야 할 잡초일

뿐이다.


질경이


민들레는 약재로 쓰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애증의 대상이다. 노래 가사 때문인지

예전부터 좋아하는 꽃이다. 노을 질 무렵,

지는 해를 바라보며 입으로 후~ 불면

살랑살랑 날아가는 홀씨가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텃밭 한가운데 노랗게 피어난

민들레는 예뻐서 차마 뽑아낼 수가 없다.

이때부터 민들레는 잡초일까,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민들레




봄이 되면 잡초들도 언 땅을 뚫고 자라기

시작한다. 텃밭에 채소 모종을 심고는 잡초는

하나도 남겨두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시간 날

때마다 뽑았다. 작은 싹부터 손톱으로

하나하나 뽑아내는데, 마치 여드름 짜듯이

잡초를 뿌리째 쏙쏙 뽑는 손맛이 있다.

그렇게 한두 달은 잡초 없이 유지가 되지만,

장마철이 지나고 여름 무렵이면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자라난 잡초를 보며

무기력해진다. 가을쯤엔 거의 포기한 채

방치하고 말았다.

동네분들이 지나가며 멀칭을 하라고 조언을

주시지만, 텃밭에 시커먼 멀칭은 인위적인

느낌이라 거부감이 들어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윗집 아주머니의 말이 참 인상 깊었다.

잡초를 뽑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진다고.

무심히 잡초를 하나하나 뽑다 보면 명상이

필요 없을 정도로 무념무상 상태에 빠져든다.

잡초들이 감당 안 될 정도로 무성해지기

전까지 만이다.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민들레의 법칙'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에게 잡초일 뿐인 민들레가

어떤 이에게는 소중한 약재가 될 수 있고,

화가에게는 염료이며, 어린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민들레가 잡초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잡초라도 상관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풀들을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잡초로 나누고, 뽑아버리고, 홀대한다.

완벽한 잡초 제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결코 이롭지 않다. 잡초는 땅의 표토를

보호하기 때문에, 잡초가 사라지면 토양이

황폐화되어 농사를 망친다고 한다.


벌레 한 마리 살지 않는 (아니 살지 못하는)

콘크리트 건물이 인간에게 이로울까?

잡초 하나 없는 텃밭이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최선일까?


자연을 해치지 않고, 함께 공존하는 것...

이것이 우주를 창조한 신의 뜻이 아닐까.


유홍준 작가의 책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서

'잡초공적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부부(이해극, 윤금순)가 잡초 농법으로 무농약

농산물을 생산하며 2019년 강원도 평창에 세웠다고 한다.


"태초에 이 땅에 주인으로 태어나 잡초라는

이름으로 짓밟히고, 뽑혀도 그 질긴 생명력으로

생채기 난 흙을 품고 보듬어 생명에 터전을

치유하는 위대함을 기하고자 이 비를 세우다"



( 다음 편에 벌레이야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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