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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부지곰 Aug 07. 2024

나쁜 선생님

  “그만! 시끄럽단 말이야!” 수업 중에 지형이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일어나더니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모두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고함을 지르면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럴 때면 복도로 데리고 나가 그를 진정시켰다. 내가 지형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머지 27명의 학생은 익숙한 듯 자습하며 기다리곤 했다.


  나는 이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저학년일 때 도서관 앞에서 누워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고, 작년 담임 선생님은 지형이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면 열을 식히려고 얼음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곤 하셨다. 이제 내 차례였다. 나는 치아가 약해서 딱딱한 얼음을 부숴 먹을 수도 없다. 고학년이 되니 덩치도 꽤 커져 통제는 더욱 힘들었다.


  아이는 자기만 친구가 없다며 울면서 내게 하소연하곤 했다. 그래서 선생님도 친구가 없으니 같이 다니자고 했다. 다행히 그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인 지형이의 손을 잡고 다니며, 매일 나란히 앉아 점심도 같이 먹었다. 소음을 제일 싫어하는 지형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반에서 가장 시끄러웠다. 그래서 가까이에 있던 나는 늘 귀가 아팠다. 그렇게 나는 모두의 평화를 위해 그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할 때면 수시로 찾아왔고, 날마다 사랑한다며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점차 안정을 찾는 듯했다.


  동료 장학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2교시 수학 시간이 되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교감 선생님과 몇몇 선생님께서 참관하러 교실로 들어오셨다. 나는 칠판에 문제를 적었다. 나와서 풀고 싶은 학생을 물으니, 여럿이 손을 들었다. 그중에는 지형이도 있었다. 내가 다른 학생을 지목하자 지형이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나쁜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학생을 차별하는 나쁜 선생님이야!”


  당혹스러웠다.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놀라서 지형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교감 선생님께 아이를 부탁하고 침착하게 수업을 이어갔다.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공개수업에서, 게다가 교장 선생님도 계신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해 부끄러웠다. 하지만 아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교장 선생님께서 내게 다가와 말씀하셨다.


  “김 선생님, 앞으로는 공평하게 발표시키는 게 좋겠네요. 바둑알을 사용해 보시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저는 이미 발표 스틱을 만들어 골고루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형이는 1교시에 발표했었습니다.’라고 말하기에는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어  “네, 알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다음 날 지형이가 내게 와서 사과했다. “제가 어제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나쁜 선생님이 아니고 좋은 선생님인데.... 오늘은 잘해볼게요.” 3교시에는 미술 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공개수업이 예정돼 있었다. 어제 참관하셨던 선생님들께서 다시 교실로 들어오셨다. 나도 뒤에서 지켜봤다. 속으로 오늘도 어제처럼 난리를 치면 나의 누명(?)이 벗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지형이는 의젓하게 수업에 참여했다. 가끔 뒤를 돌아 나와 눈을 맞추며, 내 속도 모르고 자랑스럽게 웃어 보였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수업을 지켜보셨다.


  “선생님, 저 약속 지켰어요. 잘했죠?” 지형이가 쉬는 시간에 내게 와서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었다.

  “그래, 참 자~알 했어요.” 나의 쓴웃음 섞인 대답에 지형이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듬해 6학년이 된 지형이를 연결 통로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래서 반가워서 인사했다. 그런데 나를 못 알아보고 “누구세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고지형, 선생님 몰라? 작년에 우리 반이었잖아.” “아, 진짜 우리 선생님이네요.” 황당했다. 매일 같이 밥도 먹고, 그렇게 나를 사랑한다며 그새 잊은 것이었다. 그래도 녀석은 키도 훌쩍 크고, 편안해 보였다.


  ‘그래,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잘 지내고 있으니 됐다. 나도 이제 최악의 공개수업은 잊었어. 교장 선생님도 내가 나쁜 선생님이라는 것을 잊으셨겠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더라. 내게 나쁜 부분이 없지 않더라. 아니 꽤 많더라. 그땐 억울했었는데, 실은 네가 문제가 안 풀리면 소리 지르고 화낼까 봐 불안했었어. 그래서 다른 애가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 내가 나빴어. 늦었지만 미안해.’


* 글에 등장하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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