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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 김에 뉴질랜드 Nov 15. 2024

뉴질랜드에서 아프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소아과가 없다.

일요일 저녁쯤에 리나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엄마의 촉이 곧장 발동! 비상사태가 시작되겠군!


곧장 마당에서 잡초를 잡아 뜯고 있는 남편을 불렀다. 리나가 아무래도 열이 나는 것 같다고 말이다. 호다닥 집안으로 들어온 남편은 황급히 체온계를 찾아들고 리나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리나가 감기가 오면 열감기를 항상 앓는다. 그런데 열이 잘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리나가 감기에만 걸리면 온 가족이 바짝 얼어붙는다. 남편이 열을 제는 사이에 나는 팬트리에서 리나의 감기약통을 꺼냈다. 그리고 아일랜드 테이블 위에 챔프 빨강, 노랑, 초록, 보라색을 두통씩 줄 맞춰 세우고, 열패치 두통을 꺼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시럽통도 말이다. 먹일 때마다 꺼내서 먹이는 것보다 한눈에 보이게 깔아 두고 먹이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엄마도 아빠도 허둥지둥 대니까.


오 마이갓! 리나는 열이 39도다. 비상이다.

남편은 열패치를 꺼내어 이마와 등, 허벅지에 붙이라고 했다. 그래서 2 봉지를 뜯어 허벅지 양쪽, 등, 이마에 각각 붙였다. 어쩐지 아까부터 입술도 마르고 하더라니. 어제 문어를 잡는다고 저녁에 바다에 들어간 것이 잘못이었나? 플리파볼을 할 때 추웠었나? 친구와 함께 바다에 가서 놀 때 추웠었나? 걱정이 밀려왔다.


남편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리나의 이니셜이 각인된 커스텀 청진기인 핑크 청진기를 꺼내왔다. 남편은 청진기로 리나를 청진하고, 해열제를 먹였다. 남편은 리나가 아플 때 침착해져야 한다며 스스로 침착, 침착을 중얼 거린다. 별일 아닌 감기 가지고 호들갑이다 싶지만, 내가 아플 때 본인이 병원도 그만두고 직접 갓난쟁이를 키울 만큼 자녀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은 남다르다. 가끔은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내가 눈물로 키운 내 새낀데, 자녀를 욕심으로 키우면 안 된다...


리나에게는 좋은 아빠가 있고, 나에게는 좋은 남편이 있어 다행이다.


남편은 휴대폰에 열이 난 시간, 약 먹은 시간을 적었다. 해열제를 먹은 지 1시간 후, 다시 열을 쟀는데 열이 생각만큼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열을 제고 약을 먹고를 무한 반복하며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월요일, 화요일 학교를 가지 못했다. 뉴질랜드는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아침에 학교 오피스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된다. 그래서 월요일 아침에 보냈던 메시지를 복사&붙여 넣기로 화요일 아침에 또 보냈다. 화요일 저녁에도 열은 38도 밑으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기침도 하고 가래 끓는 소리도 났으며 콧물도... 종합 감기인가 보다.


바이러스 종합선물세트가 왔구나.


나는 이석증이 있다. 가끔 그래서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증상이 거의 없어졌지만 혹시나 하는 두려운 마음에 휴대용 귀내시경 기계를 사 왔다. 남편이 그걸로 리나의 귀를 보았는데 다행히도 중이염은 아니었다. 그래도 고열이 지속적으로 나고 있어 수요일, 목요일은 항생제와 함께 해열제, 콧물, 가래약을 먹었다.

멜이 준 약

혹시 뉴질랜드 감기 바이러스는 한국에서의 바이러스와 다른가 싶어 앞집 멜에게 갔다. 뉴질랜드 엄마들은 어떤 약을 먹이는지 묻자 친절한 멜은 올리비아가 먹던 해열제를 병째로 주었다. 그리고 리나가 입맛이 없을 수 있으니 비타민이 많은 오렌지도 먹여 보라며 오렌지도 나누어 주었다. 다행히 나의 이웃들은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뉴질랜드에서 살다 보면 광활하고 눈부신 자연이 있어도 가끔은 내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방인이 되어 보니 알 것 같다. 내가 속하지 않았던 사회에서 속하기 위해 애쓰고, 자녀를 그 사회의 속한 사람으로 키우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단 것을 말이다. 아무리 유학원에서 도와주고, 인터넷 정보가 넘쳐흐른다 해도 키위의 사회에 속하여 그들과 함께 자녀를 키우기에는 부족하고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위 지인들과 한인들이 있어 살아볼 만하다.


사는 김에 뉴질랜드.


하지만 며칠 계속 약을 먹으니 리나의 장이 탈이 나버렸다. 설사도 하고 복통도 호소하고.

뉴질랜드의 병원 시스템에 대해 익히 들어 병원을 안 가려고 했으나,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남편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가보자고 했다. 한국의 소아과처럼 추가 비용을 내면 검사도 받고, 엑스레이도 찍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목요일 늦은 밤, 유학원의 실장님에게 문자를 했다. 리나가 아파서 내일은 병원을 가야 하는데 집 근처 닥터스를 가도 되는지의 내용이었다. 실장님은 곧장 전화가 왔고,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병원을 갈 때 꼭 알려 달라고 했다. 함께 가겠다고 말이다. 얼마나 고맙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유학이민생활을 할때 나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나가고 서포터를 해줄 수 있는 유학원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부분에서 나는 다행이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야 하는 부담 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금요일 아침 리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병원을 갈 때는 여권을 챙겨 가야 한다. 그리고 walk in이라고 말을 하면 데스크의 직원이 작성해야 하는 서류 1장을 준다. 그리고 아이가 아파서 왔다고 하자 데스크의 직원이 'oh. sweety.' 라며 리나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리나는 수줍게 'Thank you.'라며 대답을 했다.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다.


말이 안 통해도, 피부색이 달라도 인류애는 있다.

그 서류를 작성하고 진료비 135달러를 결재하면 된다. 135달러면 얼마냐. 한국돈으로 11만 953.80원이다. 아직 의사를 보지도 못했구먼. 비싸다. 영주권이 없으니 당연하지.

1시간씩 기다린다는 말을 들었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갔을 때는 환자가 별로 없었기에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15분도 안되어 의료진 옷을 입은 남자분이 우리를 불렀다. 오? 너무 빨리 부르는데. 실장님도 아직 안 왔는데 어쩌지.


"웨진?"


개떡같이 불러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부르는 바람에 실장님도 없이 우리끼리 긴장한 채로 그 선생님을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이 의사인 줄 알았는데 간호사였다. 뉴질랜드 병원은 먼저 간호사 선생님이 자세하게 초진을 한다. 간호사 선생님이 한국에 갔다 온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는데,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우리는 마스에 갔다 왔다고 대답을 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친절하게 들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간호사 선생님이 웨이팅 룸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의사 선생님이 다시 부를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웨이팅 룸에 앉아 기다리며 실장님이 안 계셔도 우리끼리 잘했다며 서로를 칭찬했다. 그런데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마스!


그래서 도대체 마스가 뭐였어?


남편이 말한 마스는 5월을 이야기했던 건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메이를 마스로 3번이나 이야기한 것이다. 그 간호사 선생님은 우리가 화성에 갔다 왔었다고 이해를 했을까? 화성 한국에 갔다 왔다고 이해했을까?


어쨌든 다행히도 실장님이 도착했다. 곧 있으니 키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 다시 우리를 불렀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의사의 다른 점이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환자를 부를 때 의사가 웨이팅 룸으로 나와 부른다. 한국은 간호사 선생님이 부르거나, 전광판에 이름을 보고 들어간다. 한국은 의사 1명당 진료를 봐야 하는 환자가 많고 뉴질랜드는 상대적으로 적다.

속 시원하게 통역을 해줄 실장님과 함께 진료실에서 진료를 보았다. 진료는 특별하지 않았다. 집에서 남편이 리나에게 하는 진찰과 똑같은 것을 뉴질랜드 백인 의사 선생님에게 한번 더 받았을 뿐이다.


오.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정말 친절하다. 시간에 쫓기듯 보질 않으니까 농담도 하고 우리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준다. 진짜 친절하다. 세상 따숩게 친절하다.


한국은 소아과가 있지만 뉴질랜드 닥터스에는 없다. 내시경을 통하여 귀안을 보는 것이 아니라 80년대생이면 아는 귀이경으로 귀를 청진하였다. 소아과 전문의가 아니다. 한국의 소아과나 병원 시스템, 병원에서 사용하는 장비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 아닌가. 병원이 있고 의사가 존재하기에 아프면 진료를 받고 약을 먹어 병을 치료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는 거니까. 괜찮다.


한국의 의료 서비스와 뉴질랜드의 의료 서비스를 비교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이 정도로는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고, 엑스레이나 기타 다른 검사를 하지 않는다. 다 괜찮으니 집으로 가도 된다.라고 했다. 뭔가 빠진 게 있다?


처방전.


그렇다. 처방전은 없다. 이 정도 아픈 걸로는 처방전을 때리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의 의견은 10일간 고열이 지속될 때 항생제 처방이 나간다고 했다. 리나는 그 기준에 해당되지 않기에 그냥 집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서의 의사는 환자의 질병을 알아내고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많은 책임감이 따르는데 뉴질랜드는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데 상대적으로 책임감이 덜 한 것 같다. 한국의 병원은 전쟁터 같은 느낌이면 뉴질랜드의 병원은 진료를 보는데 시간적 여유가 많아 전쟁터가 아닌 느낌을 받았다. 또한 뉴질랜드는 아파서 증상이 있을 때 환자가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의사와 환자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환자들이 조금만 불편해도 그것을 호소하기에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약을 처방하는데, 뉴질랜드는 아프면 당연히 불편하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부분도 있으니까 불편해도 조금은 참아 보는 게 여기의 규칙인 것 같다. 즉 한국은 불편한 모든 것을 의사가 없애줘야만 한다면, 뉴질랜드는 아프면 불편한 부분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사회의 시스템과는 다른 의료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공공의료를 기반으로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문을 닫는 병원이 생기고 있다. 의사들이 뉴질랜드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의료인뿐만 아니라 많은 직업군이 호주와 임금차이가 2배에서 많게는 3배까지 발생한다. 한국에서 페이닥터로 받는 월급보다 뉴질랜드 임금이 현저히 낮다. 공공의료 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사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이 한국보다는 낮고, 사회 구성원들도 불편함을 어느 정도는 감수하는 게 아닐까? 어느 사회의 의료 서비스가 나은 지는 알 수 없다.  


단 1번 병원을 갔다고 뉴질랜드 병원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 수는 없다. 한국과의 비교도 어렵다. 단지 같은 의료인으로서 나의 남편은 그렇게 느낀 것이다.


앞으로 무수히 많은 날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아니다. 살아야 한다. 앞으로 또 병원을 가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겠지?


아프면 어딜 가나 고생이다. 리나의 고열감기는 지속 중이다. 학교를 안 가서 좋다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학교를 가야 하는데... 영어 까먹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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