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아쉬움 사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
아내는 꽤나 까다로운 딸이다. 하지만 까다로운 만큼 부모님을 세심하게 챙긴다. 결혼을 준비하던 무렵, 아내는 자신이 없는 친정을 걱정했다.
그녀는 매일 집안이 떠나가도록 크게 웃고, 장모님 침대에 누워 하루의 일상을 털어놓는 딸이자 어머님의 친구였다. 가끔은 짜증도 많이 냈다고 했지만, 그만큼 가까웠다는 뜻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내는 늘 딸을 키우고 싶어 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우리는 다소 중성적인 태명을 지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부르기 좋은 이름, 하이였다.
인사성 밝은 아이가 되라는 뜻의 Hi, 키도 쑥쑥 크길 바라는 High, 고속도로처럼 인생이 막힘없이 뻗어나가길 바라는 Highway.
아내가 고심 끝에 지은 이름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좋은 태명이라며 칭찬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좋은 말을 해준 걸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딸에 대한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성별을 확인하러 간 날, 초음파를 보던 의사 선생님이 다정하게 말했다.
“아빠랑 목욕탕 같이 가면 되겠네요~”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내는 결국 많은 대화 끝에 마음의 결론을 내렸다.
“그래, 나는 딸보단 아들이 나아. 딸이랑 하는 예민한 감정싸움은 자신 없어.”
“맞아 여보. 여보는 딸보다 아들이야. 무뚝뚝한 딸보다 다정한 아들이 좋지. 나도 딸 같은 아들이잖아.”
그렇게 우리는 이른바 ‘정신승리’를 했다.
하지만 아직 남은 숙제가 있었다.
둘째까지 계획했던 나는, 성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두려워하는 아내를 다시 설득해야 했다.
1. 경제적인 건 중요하지만, 아껴 쓰면 된다.
2. 첫째가 크면서 외로워할 수도 있다.
3. 아들이면 하이에게, 딸이면 아내에게 좋다.
4. 내가 잘 하겠다.
사실 모두 근거 없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인생의 사실관계란 결국 살아가며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마지막 다짐만큼은 꼭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아내는 다시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우리는 둘째 계획을 세우고, 딸을 얻기 위한 각종 민간요법을 시도했다.
“남자가 피곤해야 한다.”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믿으며, 단 한 번의 시도로 둘째가 찾아왔다.
태명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사랑이.
딸이길 바라는 마음과, 첫째가 둘째를 사랑으로 품어주길 바라는 뜻을 담았다.
임신 과정에서 아내는 첫째 때와는 다른 증상을 보였다. 우리는 그러한 다름에 ‘딸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덧씌웠다. 객관적인 근거는 없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딸’을 향해 있었다.
16주쯤 되었을 때, 우리는 성별을 확인하러 병원에 갔다. 그날은 심지어 떨리지도 않았다.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음파를 시작하자마자 화면 속에서 사랑이의 쫙 벌린 다리가 보였고, 가운데 고추는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사랑이가
“나 여기 있어요!”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순간 아내는 말을 잃었고 눈물을 흘렸다. 후에 그녀는 ‘왜 눈물이 났었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당황한 의사 선생님은 아내에게 좋은 말들을 건넸지만, 그 순간엔 아내도, 나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사실 둘째를 준비하던 초기에 나는 아들 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딸이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은 늘 품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딸이 “아빠!” 하며 웃는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이제 그 상상은 영원히 접어 두어야 했다.
그날 오후, 아내는 친정에서 시댁으로 전화를 걸어 울다 웃다 하며 소식을 전했다.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감정을 풀어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했다. 며칠간은 멍한 기분이 계속됐지만, 결국 우리는 또 원점으로 돌아와 긍정적으로 정리했다.
1. 첫째가 이미 딸 같은 아들이다.
2. 형제라서 같이 잘 놀 수 있을 것이다.
3. 우린 성향은 아들이 맞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걸 받아들였다.
신생아를 키우는 건 물론 힘들겠지만, 첫째 때처럼 결국 매일이 보상의 연속일 거라 믿는다.
사랑이가 태어나 두 아이가 함께 자라며 만들어갈 웃음소리, 그 사이를 오가며 피어날 우리의 대화.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그땐 참 힘들었지만 행복했지.”
라고 함께 회상할 그날을 기다린다.
결국 삶은,
긍정이란 조각으로 매일 단단히 쌓아 올리는 희망의 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