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죽었다
할머니가 죽었다.
미르는 13살이었지만 죽음의 의미를 알기에는 충분한 나이였다. 그날은 비가 아주 많이 내렸다. 방 안에서 창문너머로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며 미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 사람이, 내가 알던 나의 세계 속 사람이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 사실 이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쏟아져 내렸지만 미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슬퍼해야 했을까? 언뜻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물이 차올랐던 것도 같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미르는 창밖만 바라보았다. 왜인지 할머니의 죽음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슬퍼해주는 건 이 빗방울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화장을 하는 동안, 엄마를 제외한 가족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다. 미르는 잠시 몰래 나온 화장실에서, 또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리고 자기 전 꼭꼭 숨은 이불속에서 엉엉 울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저 몰래 울어야 할 것만 같았다. 이건 미르의 오랜 고질병 같은 거였다. 다른 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순간 알몸을 보이는 것만 같은 당혹감과 수치스러움이 몰려와 차마 울 수 없었다. 그래서 기억에도 희미한 아주 어렸을 적을 제외하고는, 미르는 울지 않았다. 6살 때 깁스한 팔을 누가 실수로 밟아 뼈가 으스러지던 그 순간에도 미르는 울음을 참으며 애써 억지로 웃어 보였다.
미르는 마음껏 울지 못하는 대신에 더 자주 웃었다.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을 때에도, 미르는 습관처럼 웃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미르를 오해했고, 미르는 그런 오해를 좋아했다. 미르는 자신이 남들에게 순진하고 밝은 아이로 보이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런 오해 속에 숨어 남들을 몰래 비웃는 그 순간마저 즐겼다. 남들이 저를 오해하고 멋대로 규정지을 때마다 미르는 형용할 수 없이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속으로는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깊게 안심했다. 참으로 아늑한 나락이었다. 미르는 순수했으나 결코 순진하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누군가 미르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는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니?” 아마 미르가 너무 어려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래서 울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미르는 순간 구겨지는 인상을 펴느라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대체 나를 어느 정도로 어리고 순진하게 보는 거지?’ 그러나 이내 방금 들은 말을 마음껏 곱씹고 비웃으며 마음을 차분히 달랬다. 사실이 그랬다, 미르는 죽음에 대해서는 이미 아주 어렸을 적부터 줄곧 생각해 왔으니까. 7살? 혹은 8살? 그때부터 미르는 자신이 또래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미르는 더 이상 자랄 필요가 없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실상 그때와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티를 내서도 안 됐다.
엄마는 어린 미르가 투정을 부려 할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을 원망하며 미르에게 대놓고 탓하듯이 말했지만 미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딱히 아프지는 않았다. 엄마도 원망할 누군가는 있어야 할 테니, 그게 자신이 되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다. 정말 자신의 잘못이든 아니든 간에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미르는 그저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보았을 때 앙상하게 말라가던 할머니의 손목과 떨리던 손으로 제게 건네던 귤을 떠올렸다.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는 모습에 겁먹어 자신이 피했던 손길까지도. 단지 그 장면만을 아프도록 반복적으로 떠올릴 뿐이었다.
하루 간의 짧은 장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미르는 학교가 싫었다. 다들 지나치게 순수하고 순진했기에 미르는 누구와도 결코 진짜 친구가 될 수 없었다. 미르는 문득 이전 자신이 살던 동네가 그리워졌다. 그 동네 아이들은 순진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르는 그들이 좋았다. 다들 어딘가 억눌리고 비틀려 있는 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반면 전학을 온 후, 새로운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맑았다. 마치 새하얀 도화지 같았는데, 미르는 그런 아이들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이 하는 대화는 지나치게 순수했고, 그들이 하는 농담은 하나도 재밌지 않았으며, 그들이 하는 놀이는 시시하기만 했다. 그래서 미르는 차라리 혼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장례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친하지도 않은 서먹한 친구들이 와서 안부를 묻고 괜찮냐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미르는 아무에게도 할머니의 소식을 전한 적 없었으므로 곧 엄마의 전화를 받은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소식을 반 아이들 전체에게 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할머니의 장례를 치를 동안 담임선생님은 미르가 없는 자리에서 반아이들에게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 “미르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돌아오면 다들 위로의 말을 건네주도록 해라.” 미르는 자신의 자리 주위로 모여든 아이들에게 괜찮다며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또 한 번 어딘가 부서지는 기분을 느꼈으나 괜찮다는 말 외에 자신에게 허락된 말은 없는 듯 보였다. 그저 정해진 답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미르는 과연 지금 제가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들의 얕은 동정과 관심에 위로를 건네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 일이 시발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르는 전학 온 이후로 줄곧 자신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첫 사춘기, 첫 성장통이 찾아왔다. 그러나 아무도 미르가 그토록 아픈 것을 알지는 못했다. 미르는 남들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았고,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는 하루 종일 숨죽여 울며 밤마다 끝나지 않는 깊은 악몽만 꿀뿐이었다. 그렇게 홀로 견디는 밤이 길어질수록 미르 자신 또한 할머니의 곁으로 가길 바라는 날들도 많아졌다. 무엇이 그토록 자신을 괴롭게 하는지는 몰랐으나 확실한 건 첫 성장통을 겪는 내내 미르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은 항상 그렇듯 가장 아팠다. 미르는 밤마다 창문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일기를 쓰거나 울곤 했는데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보내는 가족들을 속으로 수도 없이 원망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반복하다가 그렇게 매일 밤 죽어갔다. 동시에 홀로 견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듯이 미르는 날마다 더욱 단단해졌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더욱 돌이키기 힘들어진 것도 같았다.
미르는 열세 살이 지난 이후로 더 이상 자랄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