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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하린 Feb 28. 2024

암흑

위로라는 이름의 폭력


미르는 하루하루 지쳐갔다. 어른들은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고 했지만 미르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삶은 바란 적도 없을뿐더러 매일 눈을 뜨는 순간동안 하기 싫은 것만으로 가득 찬 삶이 못 견디게 구역질 났을 뿐이었기에 그 말이 제겐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위로랍시고 자신에게 던지는 말들은 대부분 나보다 불행한 이들을 비교선상에 세우며 너의 과분함을 알아야 한다로 시작해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끝났기에 원한적 없던 위로란 이름의 폭력은 미르를 더욱 숨 막히게 했다.


미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통이란 게 애초에 객관적이고 계량적으로 측정가능한 것인가?’ 같은 상황에서 같은 시련을 겪어도 사람에 따라 고통을 느끼는 강도와 부위는 다른 법이다. 그야 각자 강한 부위도, 약한 부위도 다르기 때문에 단지 상황만으로 함부로 그 사람의 상처의 크기를 비교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미르는 항상 자신과 약한 부위와 약한 정도가 닮은 사람을 좋아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미르가 당신의 그 옛날보다 더 좋은 상황에서 교육받고 있으니 결코 힘든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더 행복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미르는 그 말에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택했다. 물론 상대방은 그 침묵을 대부분 자신들이 바라는 깨달음과 긍정으로 여겼지만 그 여백이 미르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이자 마지막 인내심의 한계였기 때문에 미르는 거의 모든 순간 침묵을 택했다. 미르는 애초에 위로도, 동정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위로와 동정은 항상 원치 않았던 순간에, 원치 않았던 방식으로 미르의 벌어진 상처에 또 한 번 소금을 뿌려 댔기에.


미르의 하루는 줄곧 암흑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자신의 방 천장이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으며 기도를 외우듯 중얼거렸다.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만 채우는 하루가 또다시 시작했구나. 오늘 하루는 얼마나 길고 그다음 하루는 또 얼마나 더 길까. 끝이란 게 있을까?’ 꿈속에서 수백 번 죽고 도망치고 정체 모를 존재에 하루 종일 쫓기더라도 차라리 이쪽이 현실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그래서 미르는 자꾸만 꿈속으로 도망쳤다. 세상이 만든 지옥에서 나와 스스로가 만든 지옥 속으로 매일같이 걸어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꿈을 꾸는 날도 점점 늘어갔다. 어느 날은 자신의 심장이 점점 느려지다 멈추는 걸 느끼며 죽기도 했고, 어느 날은 꿈에서 깨어나고도 몇 분 동안 치매환자처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도, 자신이 누워있는 이 방도, 자신이 살아온 삶도, 무서울 정도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몇 분의 시간 동안 미르는 살아있는 죽음을 경험했다. 미르는 분명 살아있었으나 결코 잘 살아내지는 못했다.


미르는 가끔 너무 지쳐 윤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다가도 제가 마지막 남은 힘으로 뻗은 손길이 무람없이 내쳐지고 짓밟힐까 두려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마지막으로 뻗은 손길마저 거부당하면 더 이상은 숨을 쉴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비굴하고 처절하게도 미르는 홀로 윤에게 위로받는 상상을 하며 마지막 남은 희망을 끝까지 지켰다. 비참함, 슬픔, 자기 연민, 동정, 고통, 분노, 허탈함이 뒤섞인 감정들이 물밀듯이 몰려와 미르를 끝내 먹어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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