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낙원
미르에게는 그만의 현실도피법이 있었다. 세상의 기준에 비해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질 때나 죽도록 열심히 해도 결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미르는 언제건 자신이 만든 환상 속으로 도망쳤다. 그 환상 속에서 미르는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완벽한 이상을 보고, 느끼고 온전히 이룰 수 있었다. 애초에 미르가 꿈꾸고 바라고 욕망하는 것들은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었기에 오로지 그 환상 속에서만 완벽한 형태로, 그것도 영원히 존재할 수 있었다. 영원이자 완벽한 아름다움. 그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환상 이데아를 보기 위해선 그저 눈을 감고 자기 자신 속으로 뛰어들어 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 얼마나 쉽고 간단한가!
미르는 그 환상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가 되기도 하고, 억만장자가 되기도 했으며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기도 했다. 항상 배가 고팠던 현실과 달리, 자신이 만든 환상 속을 보고 오면 언제나 배가 불렀다. 미르는 자신도 모르는 새 그 텅 빈 포만감에 중독되어 갔다. 그것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결코 끊으래야 끊을 수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끊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미르는 완벽 주의자였다. 태생이 그랬다.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고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고자 했다. 그로 인한 벌인 것인지 ‘만족’이라는 감정은 미르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르는 자신이 삶에 단 한 번이라도 만족한 적이 있는가를 떠올리며, 행복과 만족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랑과 신뢰가 서로 다른 말이듯, 행복과 만족 또한 서로 비슷한 듯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고로 미르는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한 적은 있어도, 진실로 만족한 적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자신이 내세운 그 ‘완벽’한 기준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로지 허상 속에만 존재했다.
미르는 이따금 허공을 바라보거나 멍을 때릴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땐 대게 환상 속에 가 있었다. 달아나지 않을,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나만의 낙원. 미르는 그 낙원을 사랑했고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으며 이젠 그 없이는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도 미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실은 그 누구의 이해도 필요치 않았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세계를 만들며 밤마다 그 세계로 훌쩍 떠나곤 했는데 미르는 자신이 만든 세계 또한 어떠한 의미로는 ‘실재’한다고 믿었다.
치열하고 벅찬 현실 속 미르의 유일한 낙원은, 미르가 현실에서 불행하면 할수록 더욱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으로 덧칠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