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은 쉼표 없는 마침표였어.
“아마 넌 모를 거야, 생일날 우는 게 얼마나 비참한 지.“
미르는 진에게 말했다. 미르는 지금이 울면서 보낸 몇 번째 생일인지를 세다가 이만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어차피 미르에게 생일은 별 의미 없는 날이었다. 다만 행복하지 않은 수많은 날들 중 하필 생일이 껴있으면 그날따라 유독 더 비참하고 더러운 기분이 드는 게 싫었을 뿐. 진은 미르의 생일을 세 번째로 함께 보내는 중이었다. 생일이라고 해서 별 다를 건 없었다. 그저 “생일 축하해.” 이 한마디와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함께 밥을 먹고 헤어졌다. 그래도 미르는 누군가 한 명이라도 옆에 함께 있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르는 매일같이 일부러 cctv 없는 어두운 골목을 지나다녔다. 기꺼이 누군가 자신을 해하길 바라며. 스스로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하지 못한 일을 누군가 대신해 주길 바라며. 어느 날은 이런 스스로의 모습이 못 견디게 서럽고 비참해져 아무도 보이지 않는 밤, 골목길에 홀로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미르는 언젠가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게 되는 날이 올까 했지만 아직 너무 먼 이야기 같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땐 그랬지, 나도 한때는 참 힘들었었어. 그래, 그랬던 것 같아.” 이미 희미해진 기억을 웃으며 가볍게 넘기게 될 그날을 속으로 수도 없이 그리며 버텼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까짓 고통쯤, 아무것도 아니야.’ 이것이 미르가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이었다. 정말 이겨냈는지 아니면 가끔은 졌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치 않았다. 영원한 건 없으니까. ‘행복도 고통도, 모두 언젠가는 끝날 마침표야.’ 그래서 미르는 마침표를 찍고 다시 첫 글자를 써야 할 차례가 오기를 숨죽이며 집요하게, 그리고 악착같이 기다렸다.
미르는 침대에서 하릴없이 뒤척이다가 해가 지고 밤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갔다. 딱히 갈 데가 있는 건 아니었다. 미르는 밤산책을 좋아했다. 특히 초여름 밤의 적당히 습하고 적당히 살랑이는 시원한 바람결에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사랑했다. 밤에는 미르가 싫어하는 사람들도 없었고, 자신의 존재까지도 흐려지는 기분이 들어 어딘가 아늑하고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한 발, 또 한 발 내딛기 위해 필요한 빛은 달빛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목적지도, 정해진 시간도 없이 정처 없이 헤매다가 발이 아파오고 살갗이 벗겨지기 시작할 때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건 미르만의 온전한 휴식이자 자유였다. 밤산책을 하는 시간은 미르가 살면서 느껴본 가장 큰 자유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마치 곧 하늘이라도 날 수 있을 것처럼, 심장이 터질 듯이 벅찬 기분을 느꼈다. 지쳐 쓰러지듯이 다시 침대에 누우며 미르는 어쩌면 이번 생일은 이대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