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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무는 집

by 몽유

여자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빛이 유난히 밝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어깨가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었고, 한쪽 다리를 끄는 걸음이 익숙했다.

그는 누구보다 더디게 걸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먼저, 자주 미소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눈이 내리던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여자는 그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남편이 남긴 짧은 메모에는,

미안해. 더는 해내지 못하겠어.”


그 문장보다 더 큰 삶의 무게가, 그녀를 짓눌렀다.

아들은 이제 일곱 살이었고, 딸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장난감 자동차 두 개를 손에 쥐고 아빠 방 앞을 서성이는 아들, 아빠의 외투를 끌어안고 “냄새가 좋아”라고 중얼대는 딸아이.

그 작은 손들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동안, 여자는 스스로가 무너지는 소리를 온몸으로 들었다.


장례가 끝난 뒤, 여자는 마을에서 외떨어진 가장자리의 오래된 집으로 이사를 했다. 해가 짧아진 겨울날, 낮은 언덕에 지은 작은 집이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그녀에게 과한 연민이나 불청객 같은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그저 바람만이 매일 같은 리듬으로 창문을 두드렸다.


밤이면 남편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가 느꼈을 절망, 싸늘한 고독, 스스로를 놓아버리기까지의 길고 침묵한 시간들.

하지만, 그녀는 끝내 그 장면을 완성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라지는 데에는 이유가 여러 개여야 할 것 같지만,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에는 단 하나의 이유도 제대로 붙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물었다.

“엄마, 아빠는 왜 간 거야?”

여자는 대답을 찾기 위해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아빠는 너무 아팠어. 몸도 마음도. 아픈 사람이 가끔은 길을 잃기도 해. 그게 누구의 잘못은 아니란다.”


딸아이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엄마 무릎에 몸을 비비며 말했다.

“엄마는 가지 마. 나랑 오빠만 두고 가지 마.”

그 말이 그녀의 마지막 남은 마음을 붙잡았다.

여자는 그날 밤 처음으로 남편의 유품을 하나씩 정리했다.

그가 쓰던 지팡이, 구겨진 신문, 비 오는 날마다 쓰던 검은 우산. 그 모든 것들이 슬픔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여자는 매일 새벽에 눈을 뜨는 버릇이 생겼다.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 온 집이 숨을 고르는 시간. 창밖의 마당에 서서 하늘이 푸르스름해지는 걸 바라보면 가슴 어딘가에서 아주 작고 미세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그 온기는 겨울 양지처럼 찰나적이었지만, 분명 존재했다. 남편이 남긴 슬픔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온기였다.


여자는 이제 매일 아이들의 도시락을 싼다. 아들의 작은 고민을 들어주고, 딸아이의 머리핀을 골라 꽂아준다. 가끔은 남편이 살아 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지만, 그 상상은 더 이상 그녀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아침, 언덕 아래로 햇빛이 내려앉고, 지붕 위 눈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여자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사라질 수 있지만, 남은 사람의 삶까지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리고 그 생각은 그녀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아주 작았지만 확실한 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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