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기억이 머물던 자리는
끝내 차갑다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한 시간의 그림자만
그 위에서 희미하게 식어간다
그늘을 벗어나
바람의 결을 따라 걷다보면
이름도 모양도 없이 흩어지는 먼지처럼
가벼워지기를 기다린다
어디선가 풀잎이 흔들리고
작은 씨앗은 밤새 자리를 찾아 눕지만
붙잡지 않아도
다시 피어나는 것들이 있다
슬픔이 손에 쥔 돌이라면
그 돌을 개울에 던져
잔물결 번져가는 모양을
오래 바라보겠다
흩어지는 건 사라짐이 아니다
새로운 기억의 틈새일 뿐
벼랑 끝에 피어난 꽃이
향기를 멀리로 밀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