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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네시스 NPC Feb 27. 2024

굳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별들을 보면, 존재론적 회의가 든다. 우주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히 하늘을 채울 것 같은 별들도 언젠가는 생을 다한다. 허블 법칙에 의하면, 우주가 더 팽창하여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음식도 언젠가 모두 썩고, 즐거웠던 순간도 다 잊힌다. 우리는 언젠가 죽고, 그 후 영원 같은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존재했다는 조금의 흔적은 철저히 사라질 것이다. 심해 깊은 곳에 빨려 들어간 듯, 우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진 한 장, 글 한 편 남지 않고 아무도 모른 채 죽는 것이다. 수명이 긴 별들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밤하늘의 별들도 모두 수명이 있다. 갓 태어난 별이 있으며 거의 죽어가는 별이 있다. 별들은 빛을 내뿜으며 살아가는데, 모든 빛을 내뿜고 별은 생애를 다한다. 살아가는 과정이 동시에 죽는 과정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삶이란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어가는 모순 같은 과정이다. 그렇다면, 이 죽어가는 삶 속에서 나는 왜 존재하고, 어차피 죽을 거 빠르게 죽으면 안 되는 것일까? 죽어가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길래 내가 살아가는 것일까?



 “삶은 부조리하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한 말이다. 카뮈가 많이 탐구했던 질문은 “과연, 이성적으로 이 세상에 아무런 의미도 증명될 수 없는데, 계속해서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였다. 그가 보았을 때, 인간은 이성적으로 열심히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도저히 세상에서는 의미가 찾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과 세상 사이에 ‘부조리’가 있다고 보았다. 이 부조리를 한 번에 극복하는 장치를 카뮈는 ‘비약’이라고 보았다. ‘비약’에는 종교적인 신념, 삶의 의미를 찾는 것, 자살 등이 해당한다. 여기서 카뮈가 스스로 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과연, 비약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할까?” 즉, 자신을 괴롭히는 부조리를 해소하지 않고, 이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다.



삶은 근본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죽을 이유도 없다.



 여기서 카뮈는 궁극적인 ‘자유’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 자유는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지 않으며, 자유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행동 자체도 ‘비약’으로 보았다. 즉, 부조리를 안고 살아간다면, 행동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어떤 것을 할 동기를 못 찾지만, 어떤 것을 하지 않을 동기 또한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카뮈는 부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부조리한 사람(the absurd man)’이라고 불렀다. ‘The absurd man’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비약 없이 자유인으로 남고자 한다는 점에서 반항적이다. 그리고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또한, 허무에 빠지지 않고 능동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점에서 열정적이다.


  내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여기서 답을 내릴 수 있다. 필자도 카뮈의 ‘부조리’에 동의한다. 인간과 세상 사이에는 큰 부조리가 있다. 세상은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필자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자 한다. 이것은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the absurd man’이 되겠다는 말이다. 부조리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뭐가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고, 무엇이든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이미 세상에 살고 있고, 죽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 노력 끝에, 삶에서 의미를 찾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내 삶은 백색의 도화지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 그 안에서 권위가 발현되고, 성공에 대한 기준이 생긴다. 보통 어떤 분야에서 특출난 사람이 된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성공한 삶’에 큰 가치를 둔다. 사회가 미리 도화지 위에 만들어 둔 청사진이 존재하는 것이다. 청사진이 있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가 없는 도화지에 그리는 것보다 비교적 쉬울 것이다. 하지만, 백색의 도화지 위에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가 선택한 방식이다. 어떤 것이 우월한지에 대한 판단은 불가하다. 판단 기준 따위는 궁금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삶은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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