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 아닌 로컬들의 여행
금문교와 Pier39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양보하고 우리는 샌프란 2일 차 <Caltrain 바 투어>를 떠났다. Caltrain은 샌프란시스코 인근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기차다. 이 기차를 타고 주요 스폿에 내려 석헌의 단골 바를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원래 서양애들에겐 여기저기 바를 옮겨 다니며 맥주 한잔씩 먹는 것이 Bar Crawl이란 단어가 있듯 익숙한 일이다. 한국에도 1차, 2차 옮기는 문화가 있지만 아무래도 안주를 반드시 시켜야 하는 한국문화상 여러 군데를 돌긴 어렵다. 하지만 미국은 안주 없이 맥주 한 잔씩만 먹으며 옮기니 여러 곳을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석헌은 총 6개의 바를 준비해 두었다. Caltrain 하루권을 끊고 중간중간에 내려 먹는 것은 무척 기대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날이 샌프란시스코 역사상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단지 10월의 날씨가 아니라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날씨였다. 기상예보로는 섭씨 39도에 달할 정도였다. 햇볕까지 너무 강렬한 날씨 덕분에 우리의 최종 바 투어는 3곳에 그치고 말았다.
첫 목적지는 실리콘밸리의 심장인 팔로알토(Palo Alto)였다. 5년 전 난 스탠퍼드 대학에서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 연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호텔에서 학교 가던 등굣길을 다시 방문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모르고 간 길이었는데 가보니 당시의 등굣길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반가움이란! 5년 전 팔로알토 길가에서 수업과제를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 인터뷰 하며 고생했던 날들이 생생히 기억났다. 석헌의 단골 바를 갔고 오픈 30분 전이었지만 다행히 미리 열어 준 친절한 직원덕에 라거 한 잔을 맛있게 비웠다.
두 번째 목적지는 마운틴 뷰(Mountain View)였다. 이때가 최고 기온을 기록했던 것 같다. 마운틴뷰에선 독일식 맥주집을 갔는데 마침 옥토버페스트 기간이라 독일 필스너 맥주가 아주 잘 어울렸다.
세 번째 목적지는 힐스데일(Hillsdale)이었다. 전형적인 미국식 바에서 파인트 한 잔으로 더위로 인한 갈증을 씻어 냈다.
세 번째 투어를 마치니 이미 시간은 5시를 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마지막 장소이자 Dr. 구를 만나기로 한 한국갈빗집인 <국제숯불>로 향했다. 앞으로 멤피스까지는 한식을 먹지 못하기에 이틀 연속이긴 하나 보약을 먹는 심정으로 먹어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도 와 본 곳이었는데 양념 갈비도 맛있고 특히 된장찌개가 아주 훌륭했다. 출장으로 샌프란에 오면 주재원들과 가는 다운타운 근처 한식당들이 있는데 그곳에 비하면 사악한 샌프란 물가 대비 가격도 적정하고 소주를 마시기엔 오히려 훨씬 좋은 분위기였다.
어제 시차로 인한 비몽사몽에 비하면 컨디션은 좀 더 나은 편이었다. 낮 동안 더위에 지쳐 뜨거운 숯불 앞이 좀 버겁긴 했지만 이열치열에 익숙한 한국인답게 더위보다는 단백질 섭취란 대의명분을 떠올리며 충분히 맛있게 먹었다.
2차 겸 마무리로 근처 Bar로 옮긴 후 Dr. 구는 드디어 내일 우리가 갈 첫 번째 목적지를 공개했다. 그곳은 바로 바스토우(Barstow)였다. 한국 관광객들에겐 미 서부에서 들릴 수 있는 아울렛으로 좀 알려졌다는데 나는 처음 듣는 곳이었다. 당연히 방문해야 할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7,8시간을 운전해서 잠만 하루 자야 하는 곳이었다. 그 정도 시간을 운전해 갔는데 아직 캘리포니아란 것도 신기했다. 어쨌거나 출발 전날 첫날의 목적지가 정해졌다는 것은 MBTI J에겐 안심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차적응을 거의 완료한 이틀째, 샌프란시스코의 낡은 호텔에서 숙면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