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몸이 가장 많이 아팠던 한 해였고, 가장 힘들게 했던 활동지원사를 만난 해이기도 하다. 물론 20년 넘게 혼자 살면서 온갖 성향을 가진 활동지원사를 만나긴 했었다. 화장품 냄새를 싫어해서 내게 화장품을 발라 줄 때마다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싫은 티를 냈던 이를 비롯해서 현금 결제를 지원하고 거스름 돈을 주지 않고 꿀꺽해 버리는 이..... 등등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봤다. 이들 중에 정말 존경하고 감사할 만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활동지원사 매칭이 물리적 조건(원하는 시간대, 신체적인 조건 등)에 의해서만 성사되는 시스템이라 활동지원사도, 이용인도 각자의 관계 운빨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오고 간다.
몇 달 전, 기존 활동지원사 분이 개인적인 일로 그만두게 되면서 다른 활동지원사를 구하게 되었고, 중개기관을 통해 어렵사리 새로운 활동지원사를 연계받게 되었다. 하필이면 허리 상태가 가장 안 좋은 시기에 새로운 활동지원사로 교체된 것이다. 다행히 새로 매칭된 활동지원사 분은 힘이 쎈 분이었다. 그래도 내가 스스로 힘을 써야 할 부분에서 허리 통증으로 전혀 힘을 못 쓰는 상황이 잦아지면서 활동지원사 분도 무척 힘들어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역시 눈치가 보였다.
새로 매칭된 활동지원사는 이 일을 처음 하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성향이 나와 안 맞았다. 본인의 감정에 굉장히 솔직한 분이셨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며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였다. 그럴 때마다 "조금만 더 버텨 봐요.. 저도 돈 들어서 치료도 받고 운동도 하고 있으니 나아지겠죠"라는 말을 해왔다. 그러면서 불만을 자주 말했는데 "나도 00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이 말을 서두에 깔고 가슴이 철렁거리게 만드는 말을 했다. 처음 몇 번은 이 분을 어떻게든 붙잡아야 된다는 생각에 위로와 걱정의 말로 대꾸를 해주었다. 그러나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지겨워지듯.... 불만의 말을 자주 듣게 되니까 나중에는 나도 속으로 "그럼 상처주는 말 하지 마세요!"라는 못된 감정이 들었다.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직장이 힘들게 느껴질 때, 습관처럼 퇴사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나 역시 종종 입방정을 떨며 시시때때 없이 퇴사를 노래 불렀다. 안 좋은 습관인 걸 알면서도 이 말이라도 해야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활동지원은 개인 대 개인으로써 이루어지는 노동이다. 어느 한쪽이 불안정한 노동을 말하게 되면, 활동지원사나 이용자나 직접적인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활동지원사가 당장 내일부터 안 오게 되면 내 몸은 침대에 묶여 1센티의 움직임도 허용되지 못한 채 화장실도 못 가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난 그분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늘 불안했고, 당장 내일 아침에 안 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꿈까지 꾸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분의 불만을 어떻게든 들어주고 고쳐야 할 건 고치고자 노력했다.
그분의 불만 중에 하나가 내게 그분 말고도 두 명의 활동지원사가 더 있는데 그 두 명에게 왜 일을 분배를 안 한다는 것이다. 사실 분배는 되어 있다. 다만 그분의 원하는 만큼의 분배가 아니라서 문제가 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집에 빨대를 꽂아놓는 통이 있는데 다 떨어지면 싱크대 위 서랍에서 꺼내어 빨대통에 채워놓는 건데 그걸 본인만 하고 있단다. 나는 빨대통이 잘 안 보여서 빨대가 떨어졌는지 확인할 수 없고, 다른 샘들은 빨대가 없으면 그때그때 채워 넣었다. 이 분은 미리 준비를 해야 되는 성향이었고, 빨대가 떨어지기 전에 본인이 채웠던 것 같다. 이것을 다른 활동지원사들의 잘 못이라고 말하기에는 무엇인가 이상했지만, 어쨌든 개선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저녁에 다른 활동지원사에게 빨대를 안 쓰고 물을 그냥 마시게 해 달라고 했다. 빨대가 있는지 없는지 매일 확인하는 것보다 아예 사용 안 하는 게 더 편했다. 그리고 주말 활동지원사한텐 무조건 빨대를 가득 채워놓으라고 당부를 드렸다.
두번째 불만은 출근하는 아침에 손발톱 깎아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정이 있는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저녁에 퇴근 후에는 다 귀찮고 피곤해서 씻고 자는 게 가장 우선 시 돼서 손발톱 깎기가 무척 싫다. 주말엔 활동지원사 분들이 연세가 있어서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깎다가 피가 난 적이 많아 어느날부터 깎아달라는 말을 안 하게 되었다. 손발톱 깎는 것도 손재주에 포함는지 몰랐는데, 수십명의 활동지원사를 만나오면서 손발톱을 고르게 깎을 수 있는 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주중에 오시는 분들이 손발톱 깎는 솜씨가 좋은 분들이 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손발톱 깎는 타임이 주중 아침으로 고정된 것이었다. 이런 사정이 있는지 모르는 활동지원사 분은 아침에 출근 준비도 바쁜데 손발톱까지 맡긴다고 불만이었다. 그래도 나 나름 눈치껏 여유가 있고 시간이 있을 때 깎아달라고 말을 한 건데.... 이유가 뭐든 불만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중 아침을 고집할 만큼 이 분도 특별히 손발톱을 잘 깎는 것 같이 않아 어느 순간부터 주말에 손발톱을 깎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번쩨 불만은 저녁에 내일 입고 갈 옷과 속옷 등을 미리 안 챙겨놓는다는 것이다. 이건 진짜 나와 안 맞는 부분이다. 난 약간 즉흥적인 성향이 있고, 그날 아침에 컨디션에 따라 옷 취향이 달라진다. 독립한 지 20년 동안 한 번도 전날에 미리 준비한 적도 없고, 준비할 마음도 없다보니 이건 도저히 고쳐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불만이 쌓여갔다. 9월 어느 날 내가 올해 직장을 퇴사하고 내년에 멀리 있는 곳에 이직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내 활동지원을 계속하겠냐고 물었다. 사실 이 분만큼 젊고 힘 쎈 여성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워서 계속해 주길 바라는 마음과 나와 성향이 너무 맞지 않아 그만두길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내 마음이 두 갈레로 싸우고 있는 사이, 하루가 지나서 그분에게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만두겠다고.... 이번에는 붙잡지 않았다. 그냥 알겠다고 했다. 왠지 속이 시원했다.
그날 이후로 그분은 다른 이용자를 알아봤고, 나 역시 다른 활동지원사를 알아봤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상한 일이 있었는데 그걸 그분에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저 최소한의 활동지원을 받으며 서로에게 말 안 걸기를 도입을 했을 뿐이다. 2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활동지원사를 구하고자 중개기관마다 연락을 해봤다. 돌아오는 연락은 없었다. 중증장애인 이용자 기피 현상 등으로 적당한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 없었다. 간신히 연세가 많으신 분을 연계받았다. 연세가 많으신 분을 연계받으면 체력의 문제가 늘 발생했다. 연세가 있으신 활동지원사 분은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다른 활동지원사를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만두기로 한 활동지원사는 내게 마음이 떴는지 갑자기 새로운 사람 구했으면 그 사람 오라고 하라고..... 본인은 더 빨리 그만둬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약속한 기간이 남지 않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더 이상 안 좋게 끝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평소에 같은 시간에 와서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일으켜 앉히는데, 손길이 좀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다. 허리가 안 좋아서 천천히 일으켜야 하는데 말이다. 일단 모른 척하고 기계를 사용해서 일어나 목욕의자에 앉았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으며 다시 기계를 이용해 일어나서 바지를 올리고 전동휠체어에 앉으려는 순간, 엉덩이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서 바닥으로 주저앉을 뻔했다. 이 과정에서 활동지원사 분이 짜증이 났는지 "것 봐요 내가 기계 불편하다고 했잖아요!" 내가 허리가 안 좋아지며 제대로 일어나지 못 하는 상황이 반복되어 활동지원사 분들도 허리에 무리가 온다고 하길래 일부러 대여로까지 지불하면서 리프트 기계를 빌려 온 건데 그리 말하니 화가 났다. 그래서 나도 "다른 활동지원사 분들은 괜찮다고 하던데요?" 이랬다. 이 말에 활동지원사도 "그럼 그분들 와서 하라고 하세요. 그분들 와서 아침에 씻고 옷 갈아입히고 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지금 당장 그만둬도 되니까 새로운 사람 오라고 하던지요!" 이 말까지 듣고선 수십 가지의 못된 말이 떠올랐고, 무엇보다 지금 그냥 가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못 했다. 아픈 허리 때문에 어렵게 잡은 병원 예약이 당일에 잡혀 있었고, 당장 누군가 달려와 줄 사람도 없었다.
정말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그날 하루 동안 그 분한테 안겨서 병원 검사를 받았고, 두 번의 화장실 지원을 받았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그날 젊은 활동지원사를 연결받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분에게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된다고 했다. 고맙단다. 그렇게 저녁이 돼서야 그 분과 헤어질 수 있었다. 헤어지면서 '그동안 수고했다'라고 말을 할까 하다가 "잘 가요" 짧은 인사만 했다.
하루 정도 지난 후에 이 일이 내게 큰 내상을 입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아침에 바로 가라고 하지 못한 내 처지가 무척 자존심이 상한 것 같다. 이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에 통증이 찾아온다. 쓰리고 아프다. 끝까지 수고했다는 말을 생각한 내가 얼마나 나를 스스로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는지 좌절스로웠다. 도대체 왜 수고했단 말 대신 활동지원 이 일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똑부러진 한방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아마도 장애를 가진 나의 몸이 비굴한 노예적인 생각의 습성을 각인시킨 것만 같다.
최근 돌봄 노동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다. 돌봄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은 필요하다. 노동 환경이 개선되어야 돌봄을 받는 이들도 삶의 질이 나아질 것이다. 예컨대, 사실 나는 돌봄의 단어를 안 좋아했다. 돌봄은 돌봄을 받는 이들에게 수동적인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올해 몸이 아프면서 돌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돌봄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 내 몸에 대한 정확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인간에 대한 마음이 있는 돌봄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 돌봄의 철학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있는 손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