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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진 Sep 14. 2024

힘들 때 큰 힘이 되어 준, 내 강아지

 살다보니 좋은 일도 일어났다.

 그렇게 큰 고층 아파트에서 살고 싶었는데 내가

 21살때 드디어  고층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그 전 까지 17평 아파트에 5층 까지 힘들게 계단을 통해 

올라가고 내려오고 했었는데 엘리베이터라는 것을 탈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이사를 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새 집으로 이사 가기 전에 장판도 새로 깔고 도배도 다시 

하고 몰딩도 했다. 또 그 동안 없었던 침대가 부모님, 나 

그리고 동생 것 까지 3개나 생겼고 장롱, 쇼파, 식탁 등 

가구도 새로 다 바꿨다.

 21살 만에 나만의 공간이 생겨 너무 좋은 나머지 집에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나만의 공간이 내 것으로 채워져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제약 없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전에 살았던 아파트에서는 방이 두 개였으니까 나와 동생은 

한방에서 같이 잤었다. 그리고 남동생이 중학생이 되자 자기

 방이 없는 것에 대해 불만을 얘기했다.

 이사 오면 동생이 자기 방이 생겨서 무척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사 온 첫날 매일 누나랑 자다가 혼자 자려니까 이상하고

 무섭기도 하다면서 자기 베개를 가지고 내 방으로 들어오며 

오늘 하루만 같이 자자고 했다.

 내 동생은 자기 새 침대를 놔두고 내 침대 밑에 이불을 깔고

 잠이 들었고 첫날만 잔다고 했으면서 며칠 동안 내 방 바닥에서

 잤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이렇게 32평 아파트로 이사 올 수 있었던 것은 엄마가 쉬지

 않고 일한 결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일은 나와 내 남동생은 강아지를 참 좋아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서로 강아지 흉내를 내면서 놀았었다. 

 그리고 아빠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강아지 키우는 것을 결사 반대하셨다. 그래서 못 키우고 있었는데 

우리는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보자고 했다.

 아빠가 동물 병원마다 다니면서 새끼 강아지가 들어오면 

꼭 전화를 해 달라고 했고 몇 번 여러 군데에서 전화가 왔었다.

 그런데 확 하고 첫눈에 들어오는 강아지가 없어서 

그냥 오시고는 했는데 아직도 날짜를 기억하는데 1999년 1월 13일에

 갑자기 아빠가 하얗고 작고 귀여운 솜털 같은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다.

 나와 내 남동생은 너무 좋아서 방방 뛰었다.

 말티즈였다.

 마치 조그맣고 하얀 털로 뒤덮인 솜사탕 같았다. 그렇게 

쪼그만 녀석이 꼬물꼬물 거리며 걸어 다니고 

꼬리를 치는데 너무 너무 귀여웠다.

 이름은 ‘재롱이’ 라고 지었다.

 그 때 당시에 내 동생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사춘기가

오면서 자기가 자라나온 환경에 힘들어 했던 시기였는데 

재롱이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동생은 재롱이로 인해 많이 밝아졌다.

 그리고 예전에는 친구들과 좀 놀다가 들어오기도 했는데

 재롱이가 우리집에 오고부터는 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재롱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얼른 집으로 왔다.

 또 동생이 학교에서 실시한 벼룩시장에서 재롱이가 좋아할

 만한 인형을 사 가지고 왔는데 건전지를 넣으면 깔깔대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인형이었다.

 그래서 재롱이가 움직이는 인형에게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깔깔대는 소리에 놀라 도망가기 바빴다.

 엄마는 아빠가 강아지를 데리고 왔을 때 너무 화가 나서 그대로

 동물 병원에 데려다 줄 거라며 키우지 않을 거라고 박박

 우기셨고 재롱이를 한번도  예뻐해 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셨다.

 그런데 나는 정신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었고 동생 또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쩌면 

강아지가 우리 정서에 도움이 될 거 같아 결국 허락하셨다.

 원래 아기 강아지일 때는 사람이 같이 데리고 자다가 압사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밤에 잘 때는 강아지를 강아지 집에 두고

 울타리를 쳐 놓아야 한다.

 그런데 자고 있는 밤 중에 낑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 잠귀가 어두운 편이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가보니까

 재롱이가 자기 침대에서 나와 가지고는 울타리에 딱 붙어서 나가고

 싶다고 낑낑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다 일어나 재롱이를 안고 내 방으로 데려와서 놀아주었다. 

그리고 내 옆에서 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함께 잤다.

 자다가 깨는 스타일이 아닌데 자다가 깨어보면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면 너무 귀여워서 쓰다듬어 주고는 했다.

 그렇게 재롱이는 나와 같이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그런지 식구들 중에 나를 가장 좋아했다.

 반대로 엄마를 가장 싫어했다.

 왜냐하면 배변 훈련을 엄마가 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롱이는 소변이 마렵거나 하면 자기가 저절로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나왔다.

 1년 넘게 나와 남동생이 가르치지 못했던 배변 훈련이 엄마에

 의해 성공한 것이다.

 그 때부터 재롱이에 대한 엄마의 집착이 시작되었다.

 원래 처음부터 강아지 키우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막상 

강아지를 데려오면 은근히 정이 들어서 강아지를 그 누구보다

 예뻐해 주고 놀아주는 경우가 많다.

 배변까지 해결되자 재롱이가 더 예뻐 보이고 기특해서 엄마는 

그때부터 재롱이를 많이 예뻐했는데 그와 반대로 재롱이는

 배변 훈련을 시킨 나쁜 엄마라는 인식이 박혀 있어서 엄마를

 가족 순위에서 최하위로 생각했다.

 그렇게 감정이 메말라있던 우리 가족은 재롱이를 통해

 서로 대화도 하게 되고 웃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나와 남동생의 정서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엄마도

 장사하느냐고 피곤했던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마중 

나오는 재롱이를 보면서 피로를 덜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학교에 갔다 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고

 재롱이 마저 없었다.

 그래서 재롱이가 어디 가구 사이에 끼어 있어서 못나오나 싶

어 집 구석구석을 살피고 계속해서 불렀는데 대답도 없고 

보이지도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재롱이가 보이지 않는다며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상태가 좋지 않아 동물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몇 일 전부터 재롱이가 설사를 하고 잘 움직이지도 않고

 놀지도 않아서 안 그래도 걱정을 많이 했었다.

 난 재롱이가 내 곁을 떠날까봐 무서워서 자주 갖고 놀던 애착

 인형을 손에 꽉 쥐고 방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울었다. 그러는 와중에 동생도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누나가 심하게 울고 있으니까 왜

 그러냐고 물어서 어차피 남동생도 알게 될 일이니 재롱이 얘기를 

말해 주었다.

 사춘기여서 말도 없어지고 무뚝뚝하게 변한 남동생이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학교에 있을 때마다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

 라고 말하며 우는 것이다.

 그 말에 더 슬퍼진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리고 재롱이를 보러 동물 병원에 갔다.

 장염에 걸린 재롱이는 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보이자 꼬리를 흔들며 자기를 다시 데려가 

달라며 유리문을 박박 긁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약한 다리에 수액 주사 바늘이 꽂혀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며칠 뒤 퇴원하는 날 수의사 선생님이 아직 회복이 

100%된 상태가 아니어서 사료를 주면 소화하는데 

힘들 수가 있으니까 스프 같은 것을 먹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스프를 만들었다.  

 다행이 재롱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내가 학교에 가거나 가게에 있어서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재롱이는 주로 남동생과 놀았는데 조금 

소리만 나도 언니가 오는 줄 알고 귀를 쫑긋 세우고 킁킁거리며

 대문 앞에서 냄새를 맡고는 했다고 한다.

 내가 가게에서 오면 내 발자국 소리를 아는지 빨리 대문을 열고

 들어오라며 재롱이는 짖었고 내가 들어오면 자기를 안아 달라고

 매달렸다. 나는 하루종일 언니를 기다렸을 재롱이를 품에 안고는

 예뻐해 주었다.

 재롱이는 참 예쁘게 생긴 강아지였다. 이건 우리만의 생각이 

아니라 산책을 나갔을 때도 사람들에게 예쁨을 많이 받았고 

수의사 선생님도 강아지를 많이 봤지만 재롱이는 눈도 크고 

눈물 자국도 없고 입도 튀어 나오지 않았다며 검은색 코에 

핑크빛 입을 가진 전형적으로 예쁜 강아지에 속한다며 애견모델을

 시켜 보라고 할 정도였다.

 물론 지금 재롱이는 무지개 거리를 건넜다.

 내 나이 21살에 와서 33살 까지 나를 지켜주던 녀석.

 지금은 ‘곰돌이’ 라고 귀여운 녀석이 내 곁에 있는데 곰돌이를

 보고 있으면 아직까지도 재롱이가 생각날 때가 많다.

 커피를 좋아했고 사료 보다는 햄을 좋아 했으며 내가 커피를 

마시고 나서 꼭 박하사탕을 먹었는데 내가 먹던 박하사탕을 잘게

 부셔 주면 맛있다고 먹었던 재롱이였다.

 다른 사람이 주는 커피는 안 먹었고 내가 없을 때에는 그 좋아하는

 햄도 안 먹고 그렇게 좋아하던 박하사탕을 줘도 먹지 않았던 재롱이.

 눈이 크고 동그래서 그런지 유독 겁이 많아서 동물 병원 가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바들바들 떨고 혹시 언니가 자기 두고 갈 까봐 주사

 맞을 때도 내 품에서 맞겠다고 떼를 썼고 동물 병원에서 나올 때는

 집에 가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당당히 짖으면서 갔던 여우였다.

 내가 아프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다가오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던 눈빛이 아른거린다.

 그리고 비가 많이 와서 천둥, 번개가 치는 날 겁이 많았던 재롱이는

 작은 방 커텐 속의 행거에 숨어서는 불러도 불러도 대답도 없고 

나오지도 않은 겁 많은 숙녀였다.

 나와 내 남동생이 어렸을 때 제일 좋아했던 붕어빵을 너무 좋아해서

 겨울이 되면 붕어빵이나 호빵을 사와서 주면 팥이 있으면 먹고 팥이

 없는 거를 주면 코로 밀어내던 신기하게도 팥을 좋아했던 내 똥강아지.

 내가 결혼했을 때 같이 데려가는 바람에 온 집안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우리 집의 마스코트였던 재롱이.

 특히 내가 가장 힘들 때 내게 와서 항상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주고 귀여운 애교로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었던 고마운

 재롱이가 지금도 너무 보고 싶다.

 딱 한번만 다시 내 품 안에 안아보고 싶다.

 내 곁에 약 13년 머물다 언니 고생 안시키겠다고 갑자기

 숨이 멈춰 하늘 나라로 떠난 날을 잊을 수 없다.

 내게 죽음이 주는 이별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알려준 존재이다.

 재롱이가 나를 보기 위해 하늘나라에서 잠깐 내려 왔을 때 자기

 자리가 없으면 섭섭할까봐 아직도 내 마음 한 켠에 언제든지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두고 있다.     



ps.

 재롱아 고마웠어.

 진짜 너무 고마웠어.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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