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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눈도 아닌 나의 눈

브런치 쉬어갑니다

by 단풍국 블리야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 녀석의 시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혹스럽다. 친구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선 후부터 그 녀석은 눈도 끔뻑거리지 않고, 숨은 쉬는 건지 도무지 움직임이란 없이 내 눈만 들여다보고 있다. 눈에 무슨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까. 왠지 허물이 하나씩 벗겨지는 것 같아 불편한 내 눈이 그만 흔들리고 만다.


"네 눈은 깊고 신비해. 한번 바라보면 헤어나지를 못하겠어."


소설에서나 나올 듯한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그 녀석의 멘트가 닭살세례를 퍼부은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아이돌 외모에 아이돌 이름을 가진 친구의 남자친구에게 하마터면 흔들릴 뻔했다. 허튼수작으로 듣고 넘겼던 그 녀석의 멘트를 성인이 되어 몇 번 다시 들었다. 내 눈을 오랫동안 빤히 바라봐줄 수 있는 상대는 제한적이나, 더러 그러한 관계밖에 있는 사람들로부터도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작은 아이였다. 중학교 1학년때 키순서대로 정한 번호에서 나는 3번이었고, 당시 몸무게는 20킬로대였다. 나보다 키도 덩치도 큰 동생과 몸싸움이라도 있을 때면 결국 방한구석까지 밀려나 두 눈에 눈물을 그렁거렸는데, 엄마는 매번 동생도 못 이기냐는 말로 상황을 종료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에 훌쩍 컸어도 여전히 나는 우리 가족 중에 엄마 다음으로 키가 작다. 키와 건조한 피부를 제외하고 나는 친탁을 했다. 특히 눈은 아빠와 똑 닮았다. 《글루미 릴레이》에 실린 어릴 적 사진처럼 웃을 때면 눈크기를 가늠할 수 없만, 제법 큰 눈 때문에 이름대신 '소방울'이라고 불리곤 했다.


브런치 작가 18인의 연작 에세이 《글루미 릴레이》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기가 다시 시작됐을 때다. 수업 중 교실을 왔다 갔다 하며 설명을 하시던 교과선생님이 뒤춤에 끼고 있던 출석부로 내 머리를 콩 내려쳤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꿀밤을 맞고 선생님을 올려다봤을 때,


"방학 때 공부는 안 하고 꼬막수술 하고 왔냐?"

"네? 꼬막수술이 뭔데요!"


억울함에 즉각적인 대응이 나왔다. 용케도 그 말을 알아들은 반친구 하나가 "아닌데요. 쟤 원래 쌍꺼풀 있었는데요."하고 선생님을 반격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거들고 나섰다.


대학 때는 급기야 "넌, 눈 빼면 시체야."라는 말도 들었다.


눈에 대한 말을 많이 들으니 언젠가부터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 눈이 그렇게 깊은가? 동공을 들여다보고 눈을 아래로 내려 뜬 채 깜빡거리며 양쪽 눈에 균일한 두께로 짙게 새겨진 쌍꺼풀을 들여다봤다. 이 눈이 수술한 것처럼 보인다는 거지? 장난기가 발동해,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수술한 거라고 말하면 "어쩐지.." 하며 모두 믿었다.


그 눈에 선천성 백내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캐나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그때까지 나는 안과적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태어난 후 시골로 보내져 자랐으니 내 눈의 특징을 알아차려줄 부모님이 곁에 없었고, 집에 돌아왔을 땐 맞벌이로 자식 넷을 키우며 힘든 살림을 꾸려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날들이었다. 표면상 증상이 미미해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세상이 원래부터 그렇게 눈부신 줄 알았다. 일을 하며 눈에 불편함을 느꼈을 때조차 과도한 업무 때문에 쌓인 피로감일 거라 여기고 진료를 받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안과의사는 진단을 내리며 점차 시력을 잃다 결국 실명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 잔인한 말은 이해했는데 진단명을 해석할 수 없어서 단어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종이를 받아 들고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단어를 찾아봤다. 그때의 기분은 그저 막연했다. 꿈이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것처럼 내 얘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은 잘 견뎌주었다. 진단을 받은 지 10년 만인 작년, 상태가 더 좋지 않았던 오른쪽 눈을 먼저 수술했다. 나는 우리 집 벽이 이렇게 밝은 하얀색이라는 걸 수술하고 처음 알았다. 남의 집에 잘못 들어온 줄 알고 멈칫할 정도로 낯설었다. 왼쪽 눈과 비교되는 세상의 온도는 너무도 달랐다. 그러니까 내가 평생 바라보고 기억에 담고 있던 세상은 누렇게 바래진 신문지속에 담긴 사진 같은 거였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난 올 4월 왼쪽 눈을 수술했다. 경과가 좋지 못했다. 사실을 말하면 수술에 착오가 있었다. 결국 나는 또 한 번의 수술을 하게 됐고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건 몇 주가 지났을 때부터다. 현재 소견으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증상들은 수술상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재수술로 인해 어떠한 가능성이 높아졌을 수는 있으나 경과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착오를 수정하기 위해 의사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안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성의에 감사한다. 추가 치료도 잘해줄 거라 믿는다.






브런치를 쉬어갑니다. 즐겁게 하고 싶은 브런치가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게 휴식을 취하며 치료를 받으려고 합니다. 연재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휴재 소식을 전하 되어 죄송합니다.


보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요. 치료 후 충분히 회복기를 갖고 건강한 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다시 즐거운 브런치 식탁을 차릴 때까지 소중한 벗님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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