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에 넣을 내 타이틀은?
누구고 어디냐
명함에 넣을 내 타이틀은?
“학교, 회사, 직급, 가족의 일원 등 가진 타이틀을 쓰지 않고 명함에 본인을 표현하는 직책을 넣는다면 뭐라고 쓰시겠습니까?”
라고 질문했다.
그는 대학 졸업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성실하게 커리어를 쌓아왔다. 다양한 경험을 하려 했고, 맡은 일에 책임을 다했다. 덕분에 어느 회사에서든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성과도 좋고, 세평도 좋다.
코로나 시기엔 잠시 쉬었지만 곧 다시 재취업했고, 지금 회사에서도 인정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상사는 그런 그에게 자리를 물려줄 준비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좋은 일이었다.
“좋은 일이네요. 회사에서 관리하는 ‘핵심 인재’이신 거죠? 이런 상황에서 어떤 걸 어젠다로 삼고 싶으세요?”
잘 되고 있는데 먼저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무엇을 찾고 싶은지 길을 트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렇죠.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만족스럽지가 않아요. 기쁘지 않아요. 그냥 별로예요. 행복하지 않아요.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 싶어서 말씀드린 거예요. 당장 뭔가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느낌이 좀 오래됐어요. 코로나 때 잠시 쉬기도 했는데… 아직도 속 시원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왔는지 물었다.
“책임을 다하는 게 당연해서요.”
이직할 때는 어떤 이유였냐고 물었다.
“기회가 왔고, 경험을 위해서요.”
일을 잘 해냈을 때 무엇을 얻었냐고 물었다.
“결과가 좋으니 인정받았고, 그래서 뿌듯했어요.”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 이외에, 무엇을 위해 그렇게 느끼고 이뤄왔는가.
‘책임을 다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경험을 통해 어디에 다다르고 싶은지.
만약 성취하지 못했다면, 인정받지 못했다면 그래도 뿌듯한가.
그는 대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아채며 말을 멈췄다.
그래서 명함을 만든다면 어떤 타이틀을 넣을지 물었다.
그는 대답을 위한 대답을 하다 문득 말을 멈췄다.
이미 답답한데 ‘고구마’ 같은 질문들이 더 답답했을 터였다.
“명함의 타이틀이라…”
‘준비 땅’ 하면 그냥 뛰어왔던 사람이, 문득 왜 뛰는지, 어디를 향해 뛰는지 스스로도 궁금해진 순간이었다.
“선생님이요.”
잠시 조용히 앉아있던 그가 말했다.
고구마를 삼킨 모양이다.
“오. 이유는요?”
그의 답은 이제 ‘맞는 말’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들키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휴우. 감사합니다! 고구마는 제가 백 개쯤 먹은 줄… 켁.)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전혀 다른 업종인데도 ‘선생님’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눈빛을 교환하며 소통하고 성장하는 순환이 너무 좋았다고.
대학 때 개인 교습을 해줬던 기억도 떠올랐다고 했다.
물꼬가 트였다.
다음 세션에서는 그를 이루는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감정이 어떤 트리거에서 비롯되는지를 캐내면 된다. 그러면 그는 스스로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알 수 있다.
“제가 왜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떠올랐을까요, 코치님?”
“오. 그게 궁금하시죠? 생각해 보시고 다음 세션에 알려주세요.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연결된 사실들을 둘러보면, 답이 보일 거예요.”
그는 말했다.
“너무 다행이에요. 이렇게 대화를 하니 오늘 조금 기분이 나아졌어요. 감사합니다, 코치님…”
그렇다.
답답하다.
고구마 많이 먹여서 미안하다.
그 답답함에 나도 숨이 막힐 뻔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같이 시원한 동치미를 나누며 잘 소화해 보길 바랐다.
간. 절. 히.
***
고구마.
그게 시작이었다.
너무 답답해서.
(고구마는 잘 삼켜야죠.
원래 많이 맛난 거잖아요!)
나는 대단히 크고 화려한 일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은 일은 할 수 있다.
그래서 한다.
고구마를 같이 맛있게 먹기 위해서.
나도 좋고,
누군가에게도 좋다면
그것이 조금 더 나은 사회로 이어질 것 같아서.
더 긴 이야기는 나중에…
***
오늘까지 매일 100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지나가다 멈춰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로 전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봐 주신 것 같아 마음이 설레였습니다.
올해 남은 며칠은 잠시 멈추려 합니다.
답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요.
멈춤 속에서 답이 오기를 기다려보려고요.
그리고 다른 100개의 글을 지어보겠습니다.
어디에선가 책임을 다 하고 계실 여러분,
남은 올해 잘 보내시고, 새해도 반갑게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곧 다시 뵙겠습니다.
이만 총총.
오코치 드림.
사람과 문제 사이, “낀 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 속에서
“생각 리터치”로 조금 다른 각도로 사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울고 웃으며 달려왔습니다.
지금은 프로 코치로서, 생각의 결을 다듬고 있습니다.
글과 그림으로 더 많은 “낀 자”에게 닿기를 소원합니다.
생각이 잠시 머무는 곳,
오코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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