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으시다면서요.
말을 줄이세요.
듣고 싶으시다면서요.
말이 유독 많고 무한 반복을 한다. 일단 듣는다. 스스로 멈추는지, 어떤 답을 찾으려고 달리는지 행간을 듣기 위해서다.
그는 한동안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 답을 찾기 위해 과정을 말하는 듯했지만, 다시 처음부터 같은 이야기로 꼬리를 물었다. 그러기를 반복했다. 다람쥐 챗바퀴라 말하기도 하고, 뫼비우스의 띠라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마무리한다.
코치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말을 끊고 주제를 적극적이고 선명하게 정해 원하는 답을 캐낼 수 있도록 시작한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코치의 의지나 노하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말을 멈출 생각이 없고, 멈춰야 하는 시점을 인지하지 못하면 그냥 놔두기도 한다. 조직 안에서 권한이 많은 윗사람일수록 듣기보다 말이 많다. 말해보라 하고 정작 본인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조직 안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일대일 세션 동안 매번 혼자 9할의 말을 계속할 수는 없다. 어느 시점에서는 멈춘다.
그도 어느 세션에서 멈췄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저만 너무 떠드는 건가요? 코치님 별말이 없으셔서요.”
“네. 혼자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제가 별말하지 않은 것은 인지하신 것 같습니다.”
“아, 네네. 말씀하시지…”
(?)
“이야기하신 내용들 잘 듣고 있었습니다. 어젠다를 잡아 볼까요? 개선하고 싶으신 것이나 고민되는 것이 있으신가요?”
“아 네네. 팀원들과 활발한 논의를 하고 싶은데요, 말들을 잘 안 해요. 다들 조용히 앉아 있거나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어요. 그냥 저만 떠들다가 끝나고, 지시하고 마무리돼요. 서로 진행 중인 것을 업데이트도 하고, 과정도 듣고,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논쟁도 하고 그러면 좋잖아요…”
그는 십여 분 동안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장면을 설명하며 그런 모습이길 바란다고 했다.
(참고로 이분은 영화감독이 아니다. 연출해야 하는 어떤 분야도 아님을 밝힌다.)
그냥 가상의 스토리를 너무 많이 보신 듯하다. 상상의 자유이니 탓할 일은 아니다.
“아, 그러시군요. 활발한 대화와 열띤 논의가 펼쳐지는 미팅을 원하시는군요. 좋습니다. 보통 미팅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30분이나 1시간 정도일 것 같은데요.”
“네, 보통 1시간 정도예요. 팀원들이 많이 모이는 미팅은요. 일대일이나 2~3명이 모이는 건 30분 정도고요.”
“미팅 시간 동안 본인이 말하는 것과 팀원이 말하는 것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행동과 비교하면 꽤 오래 멈춰 있다.
“비율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제일 길게 말하죠. 다들 말을 안 하니까요.”
“그렇죠. 지금 하는 코칭 세션을 돌아보시겠어요? 제가 드린 질문이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각 세션에서 무엇을 여쭈었는지요.”
“질문 안 하셨는데요. 아무 말 안 하시길래 제가 말을 한 건데요.”
“그렇죠. 정확히 기억하시네요. 저는 묻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인사와 안부로 시작했고, 혼자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상대가 말을 안 하니 본인이 말하는 것이다.’ 맞지요?”
“네.”
“좋습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성립할까요? ‘상대가 말을 하니 본인은 말을 하지 않는다.’ 도 될까요?”
그가 다시 말을 멈췄다.
기분이 상한 건지 생각하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상황인지 알아채는지가 중요하다.
“본인이 말이 길다는 것을 아시나요? 저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말이 길든 짧든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답을 듣지 못한 채로 세션 종료 알림 창이 떴고, 이유를 떠올리는 대로 모두 다음 세션에 적어오라고 요청하고 마쳤다.
***
말이 많음을 인지했을까? 언제인가?
그 이유를 성찰했을까?
그리고 말을 줄여 무엇을 얻고, 어디로 향하려는지 알까?
다음 세션에서 이를 물어볼 예정이다.
그가 말을 줄일수록 원하는 것에 더 가까이 갈 것이다.
그 여정이 조금은 수월하기를 바란다.
(마음은 그렇다. 여정의 굴곡이 있을 테지만…)
***
지나가는 팀원을 관리하는 모든 팀장님들,
혹시 이 글을 읽으신다면요.
말을 줄이십시오.
팀원들이 가는 길에 등불을 비춰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응원하는 것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하시길.
물론, 팀장님들이 더 노련합니다.
본인이 더 노련합니다.
알지요.
그러니 그 노련함은 본인의 성장에 더 힘쓰고,
큰 그림을 그리며,
즐기고,
회사를 떠난 후 무엇을 하면 즐겁고 보람찰지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팀원들보다 말이 많아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마시고요.
심심을 아껴 쓰시길.
말로 다 탕진하지 마시옵소서!
(참고로, 영화나 드라마처럼 그런 장면은 미국에서도 흔하지 않다. 유리로 된 계단·벽·천장이 존재한다 해도, 날뛰다가 부딪히면 다친다. 호칭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이름을 부를 뿐이다. 직급별 권한과 지시의 단호함은 매우 강하다. 정말이다. 흥. 칫. 뽕.)
***
저도 오늘 더 말을 줄여 봅니다.
해요.
정말로요.
사람과 문제 사이, “낀 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 속에서
“생각 리터치”로 조금 다른 각도로 사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울고 웃으며 달려왔습니다.
지금은 프로 코치로서, 생각의 결을 다듬고 있습니다.
글과 그림으로 더 많은 “낀 자”에게 닿기를 소원합니다.
생각이 잠시 머무는 곳,
오코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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