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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규 Jakyu Chun Aug 14. 2024

3. 인생을 뒤흔드는 조용한 지진에 무너지다.

대장암 선고

- 이 글은 현재 대장암 4기 투병 중인 저의 투병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쓰는 글입니다. 얼마나 자주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몸이 허락하는 대로 자주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에 오신 나그네 분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7. 검사 진행과 다시 몰려올 뻔했던 과거의 망령들.


내가 몸상태가 안 좋을 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는 바로 꼬리뼈 통증이었다. 정확히는 꼬리뼈인지 고관절인지 애매하게 넓은 영역에 걸친 통증인데, 웅웅거리는 통증과 더불어 쿡쿡 찌르는 통증이 이따금 고개를 든다. 몸이 한창 안 좋아서 체중이 반토막 났던 2013년 무렵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 그때는 체중이 줄면서 관절들이 몸을 지탱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통증은 계속되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통증은 가끔씩 재발했는데 이따금 나타나는 것이고 신경통이겠거니 생각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지금은 나를 가장 괴롭히는 통증이 될 것이라는 것은 그때는 몰랐다. 마약성 진통제로도 완전히 잡히지 않는 통증이니까.


그때부터 이미 암세포가 그곳에 있었던 걸까.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2023년의 7월은 각종 검사 - 복부와 흉부 CT, MRI, PET-CT 등 -  연달아 받았는데, 처음 받아보는 MRI는 장비의 천장에 딱 붙은 상태로 기괴한 기계음이 요란하게 울려서 과거의 공포심이 다시 몰려오는 것 같았다.


학부 3학년 가을 즈음이었나. 즉 2006년이었던 것 같다. 여느 날과 같이 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하다가 (공대의 시험기간은 자비심이 없다. 한 학기 내내 시험기간이다. 나는 천재형 인간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기에 오랜 시간 엉덩이 붙이고 끊임없이 쓰고 또 쓰며 공부해야 내용이 이해되고 만족하는 유형이었다)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가기 위해 서울대입구역으로 가던 중 관악경찰서 언덕을 막 넘어가던 때였다. 무심코 버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안과 광고를 들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나의 뇌 속에서는 '안과... 내가 만약 이 순간 눈이 멀게 되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마 켜켜이 쌓인 전공과목들의 압박이 내 뇌 속에서 형상화된 것이었을까. 마치 공황이 오는 것처럼 저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을 수가 없었고 결국 나는 급히 버스에서 내려서 숨을 돌리고 나서야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후에도 이 일은 여러번 반복됐고, 나의 귀가 소요시간은 길게 늘어났다.


이즈음 나타났던 또 다른 이상현상은 영화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영화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영화 중간에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굉음이 스피커에서 내 고막을 때렸다. 아마 격한 액션 씬이었을 거다. 그 순간 버스 안에서 느꼈던 답답하고도 묵직한 공포증이 다시 나의 의식을 가득 채웠고, 나는 끝내 그 영화의 끝을 보지 못하고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 꽤 오랬동안 영화관을 못 갔고, 아주 잔잔한 영화들만 겨우 볼 수 있었다.


다행히 MRI 장비의 내부가 완전 폐쇄된 공간이 아니었기에 과거의 망령들은 손길을 뻗다가 다시 사라졌다.


8. 선고. 2023년 8월 10일 오전.


검사들의 결과를 종합해서 최종 판정을 받던 날짜는 내 기억 속에, 아니 아마도 모든 환자들 각자의 기억 속에 마치 묵형 (墨刑: 조선시대에 죄인의 얼굴에 죄명을 문신하던 형벌)을 당한 것처럼 깊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2023년 8월 10일.


아침에 이대서울병원의 주치의에게 결과를 들으러 갔다. 암 표지자들이 급증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혈액검사를 봤던 주치의의 표정이 밝지 않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선고의 심각성을 흘려보내기에는.


직장암 (대장암) 4기. 직장에서 시작해서 대장과 주위의 림프절, 그리고 대장과 간을 잇는 간문맥을 통해서 간까지 전이가 되어있었다. 암에서 3기는 림프절 전이, 4기는 다른 장기로의 전이를 의미한다.


선고를 듣고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어떤 질문을 하든 돌아올 답변을 듣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던 것 같다. 침묵이 잠시 이어지다가 주치의가 치료를 어떻게 진행할까 물었다. 다행히 의사인 매형의 도움을 받아서 같은 날 오후에 서울아산병원 대장항문외과 예약을 잡아뒀었다. 주치의도 전원하겠다는 내 뜻을 받아들이고 각종 서류를 받을 수 있도록 진단서를 작성해 줬다. 필요서류들을 모두 발급받은 후 차를 몰고 서울을 가로질러 잠실로 향했다.


9. 확정선고. 2023년 8월 10일 오후.


점심시간이 슬슬 지나갈 즈음해서 아산병원에 도착해서 서류들을 접수하고 진료시간까지 대기했다. 과거에도 아산병원은 자주 왔었지만, 다시금 느꼈던 것은 이 병원이 정말 크고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었다. 지하의 식당가는 병원이 아니라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았다. 상당히 한적했던 이대서울병원에 있다가 북새통에 오니 벌써 기가 빠지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병원을 옮겼다고 해서 검사결과가 달라질 리 없었다. 차를 몰고 서울의 반대편으로 가면서 제발 이것이 현실이 아니기를 빌었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산병원에서의 판독 결과 역시 동일한 직장암 4기. 우선 지속적으로 분변이 직장을 지나면서 암세포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배에 장루를 뚫고, 장루조성수술에서 회복을 하고 나면 항암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외래진료를 마치고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은, 내가 질문을 던질까 말까 매우 고민했던 질문이었다. 그 답변이 너무 무서웠으니까.


"교수님, 그럼... 제가 생존할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


아마 암을 다루는 의사들이 가장 답하기 싫어하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사들은 정확하게 현실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환자에 대한 연민도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해주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괜히 희망을 줬다가 나중에 "당신이 나을 수 있다고 했잖아! 책임져!"같은 상황에 처하기 싫기 때문에 희망찬 이야기를 하기 꺼려하는 마음도 있다. 결국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하지만 그것은 이상적인 경우고, 보통은 후자의 사례를 당한 경험이 더 많기에 의사들은 냉정하게 답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리고 암과 싸우는 의사들이다 보니 자신의 환자들 중 결국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도 많을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살리지 못한 환자 하나하나에 고통스러워하지만 점점 그것도 익숙해지고, 갈수록 환자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치료하기 힘들어지겠지. 그래서 더욱 의사들의 답변은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차갑게 들릴 수 있으리라.


그래도 이때 답변을 준 교수는, 망설이면서 대답을 해줬다. 그 망설임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괜스레 고맙다.


"대장암 4기 환자의 경우... 5년 생존 확률은 약 13%입니다."


13%. 즉 내가 5년 내로 생을 마감할 확률이 87%라는, 압도적인 확률.


"하지만 의료 기술이 발달하고 항암제 또한 좋은 항암제들이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확률은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그래서 환자 분이 비록 힘드시겠지만, 절대 희망을 버릴 것은 아닙니다."


이미 1년이 지난 기억이기에 정확한 문장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교수는 대충 위와 같은 말을 덧붙였다.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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