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필수교양, 사회기여적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기획하여 한 학기 동안 진행하면 되는 조별 수업. 주제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들의 발표를 듣고 조원들이 찾아가는 방식으로 조를 짰다.
오리엔테이션 내용을 듣자마자 주제가 떠오른 나는 제일 먼저 앞에 나가 발표를 시작했다.
"부러진 야구 배트. 흠집이 난 야구공. 터지고 해진 축구공과 농구공. 오래 입은 도복. 다 쓰이고 나면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던 적 없으신가요? 이 궁금증을 환경 문제와 엮어 다뤄보고 싶습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몇 명은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조 편성 결과는 처참했다. 우리 조가 가장 인기가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마음의 상처는 제쳐두더라도, 왜 그런지 명확한 원인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 괴로웠다. 몇 날 며칠을 이어지던 고민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 즈음 되어서야 정리가 끝났다. 결론을 얻고 나서야, 어려웠던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조가 인기가 없었던 이유. 이것은 프로젝트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대중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
복합 쓰레기로 폐기되는 스포츠용품. 응원단이 떠난 자리에 남은 쓰레기들. 조명과 전광판을 켜고 경기장까지 이동하는 데 들어가는 탄소. 경기장을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물. 하나하나 짚어 보면 지구에게 미안하긴 하다. 환경을 생각하는 스포츠, '그린스포츠'라는 개념은 그렇게 등장하였고, 21세기 스포츠를 대표하는 움직임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ESG경영. 더 큰 범위로는 '올바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특히 스포츠라는 산업에서 명분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든 싫든 '친환경', '녹색'이라는 키워드와는 함께 가야 한다.
똑똑한 현대 사회의 대중들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어느 정도 사정을 봐줄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다. 서구권 영화나 게임에 형식적으로 등장하는 소수자 등장인물을 웃어 넘기듯이 말이다.
그러나 산업을 주도하는 입장에서도 그렇게 안일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는 차별화가 있어야만 살아남는 것이 자본주의의 논리고, 환경이라는 키워드는 남들 다 해서 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히 상업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팬 중 환경 문제에 진정 관심이 있어 스포츠 뉴스 찾아보듯 몇십 분씩 들여다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반대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인생을 불태우는 사람 중에서 주말에 스포츠 구장에 찾아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수요층이 그다지 겹치지 않는다. 게다가 '스포츠'든 '환경'이든, 진입장벽이 상당한 분야다. 관심 없는 사람들은 꾸준히 관심이 없다. 관련 상품을 출시할 때도 유입층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기존에 사던 그 사람들이 알아서 지갑을 열 것이라고 믿는다.
오히려 그 어느 쪽의 소비 욕구도 크게 자극하지 못함으로써 진입장벽이 두 배가 된 셈이다.
그린스포츠는 흥미롭지 않다. 가슴이 따뜻해지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린스포츠'라는 것 자체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자료조사를 진행하던 조원들의 탄식을 불러온 펀딩 내역.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는 사람을 미치게 해야 한다. 생산성이나 효용성 같은 영역이 아닌 뜨겁고 치열한 열정이 산업의 본질적인 원동력이다. 그만큼 꿈과 성취욕, 팬심과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이 1순위다. 유행어를 빌리자면 '대가리가 깨져서', 뇌수를 질질 흘리며 지갑을 열고 있어야 한다.
한편 환경 분야의 상품은 소규모의, 단발성 소비를 유도하기는 쉽지만, 그 이상을 얻어내려면 상품성이나 특별한 스토리를 갖추어야만 한다. 모든 상품이 취지가 좋기 때문에, 그것 하나만으로는 경쟁력을 얻지 못한다.
이와 같은 두 분야의 특성을 융화하려는 시도가 잦은가? 아쉽게도 아직은 아니다.
그린스포츠 산업은 스포츠와 환경이라는 분야의, 일종의 콜라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보통 콜라보 이벤트에는 유인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편의점과 어떤 게임이 콜라보를 한다고 치자. 특정 상품을 구매하면 게임에서 쓸 수 있는 쿠폰 코드를 제공한다거나 한정 굿즈(씰, 카드 등)를 증정하는 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를 통해 게임 유저는 편의점을 한 번이라도 둘러보게 되고, 편의점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게임 상표 혹은 캐릭터에 노출되며, 두 구매층이 섞이게 된다.
소비자들에게는 소비할 이유가 필요하다. 그 이유를 만들어서 제시하는 것이 판매자의 역할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상품 혹은 사업이라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테마를 정하고 스토리를 붙이려는 적극적인 도전. 그리고 ESG 경영을 단순히 하나의 키워드나 태그로만 여기지 않는 진심 어린 태도. 이 요소들이 갖추어진다면 그린스포츠는 형식적이고 부수적이었던 기존의 위치를 뛰어넘은 새로운 아이템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품을 들일 가치가 있는 분야일까?
글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투자할 이유를 누군가 찾아내는지 여부가 그린스포츠의 미래를 결정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