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징조

나 아직 스무살인데...

by 루시퍼

가끔 내가 외계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지구라는 행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난 늘 애매한 존재였다. 이도저도 아닌 그런 존재. 병원에서는 항상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고 이상하게 쳐다봤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내 모습을 숨겨야 할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정말 정말 평범하지만 남들에겐 차마 하지 못했던 화자의 실제 이야기다.


"엽상종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덤덤하게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네? 엽...무슨 종이요? 그게 뭔데요, 혹시 암이라는 건가요?"

엄마가 옆에서 다급하게 물었고, 내 머릿속은 다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 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멍해졌다.

의사는 암은 아니고 나뭇잎처럼 생긴 종양이라고만 말했다. 그리곤 나에게 대학병원을 추천했다.

20살, 딱 스물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10월만이 품은 가을의 향기가 오롯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나는 새내기만이 가질 수 있는 설레고 흥분된 마음으로 지하철에 타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새로 산 토트넘 모자가 제법 잘 어울렸다.


좋았던 기분도 잠시, 갑자기 가슴이 찌릿거렸다. 정확히는 왼쪽 유방 위쪽이었다.

한번도 아픈 적이 없던 곳이었고, 평소엔 내 몸에 그 부위가 존재하는지도 모를정도로 신경 쓰이지 않는 곳이었다.


워낙 잔병치례가 많았던 나라서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강의를 듣는 중에도 욱신거리고 찌릿거리는 통증이 지속되었다. 한번씩 갑작스러운 통증에 손이 저절로 올라가기도 했다.


저녁에 집에서 샤워를 하는 데, 딱 그 부위에 뭔가 만져졌다. 딱딱하고 동그란 조약돌같은 게 가슴에 박혀있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혼자 몇일을 고민하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곤 가까운 유방외과로 갔다. 여자선생님이었고, 병원에 도착했을 쯤엔 왼쪽 가슴이 너무 아파서 부끄러움을 느낄 순간조차 없었다. 핑크색 가운으로 갈아입고 초음파 사진을 찍었다. 까맣고 동그란 고무공같은 게 보였는데, 섬유선종일 확률이 높은데 크기가 크니까 조직검사를 한번 해보자고 하셨다. 마취주사를 4번 정도 찔러넣는데 세번째 주사를 찌를 때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맺혔다.


조직을 떼어낸 후엔 섬유선종이 아니라 '엽상종'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름을 듣자마자 괜시리 기분이 나빠졌다. 나뭇잎처럼 옆으로 길쭉한 모양으로, 암은 아니지만 그냥 두면 크기가 빠른 속도로 커져서 위험해진다고 시술을 권했다.


나는 곧바로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가서 '맘모톰'이라는 시술을 받았다. 물레방아처럼 쇠막대가 돌아가며 조각조각 조직을 썰어서 들어올렸다. 아프진 않았다. 시술은 잘 끝났고, 하루 정도 입원을 했다. 코로나 시절이라 가족 빼곤 병문안을 올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새벽에는 모래주머니 같은 걸 수술부위에 올리고 자라고 했다. 처음엔 그럭저럭 버틸만 했는데 잠든지 30분쯤 지났을까,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통증에 잠에서 깼다. 그러곤 결국 밤을 새버렸다. 다음날 무사히 퇴원했고, 조금 속상하긴 했지만 흉터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귀엽게 남아있었다.

그런데...의사 선생님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시술하면서 다시 정밀조직검사를 했는데 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셨다. 암과 일반 종양 사이의 경계에 있다면서, 언제 암으로 변할지 모른다고 하셨다. 나는 꾹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대학병원으로 연계해서 최대한 빠른 수술날짜를 잡았다. 입원하기 전까지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서류를 받으러 간 종합병원에서 간호사가 이제 암보험이 적용된다면서 사인해달라고 종이를 내밀었다. 볼펜을 받아들고 사인을 하는데, KF94 마스크 안에 물이 점점 차올랐다. 내 눈물이었다.

아직 대학교 1학년, 스무 살이었다. 동기들이 인스타그램에 빈 소주병 다발을 찍어서 포스팅할때, 나는 입원을 했다. 너무 억울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신은 정말 있는걸까. 나 정말 착하게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데 왜 나한테 시련을 주는거지.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꽉 들어차서 버거웠다.


고2 시절의 지옥같은 통증이 다시 떠올라서 몸이 떨려왔다. 그 지옥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쉴 틈도 안주고 삶은 나를 몰아붙였다. 왜 불행은 계속 이어지고 행복은 잠깐 반짝였다 언제 반짝였는지도 모를만큼 금새 사라질까. 하지만 난 이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진짜 지옥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