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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대화가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

부부싸움이 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구나.

by 글로업

커다란 상담센터 테이블 한쪽에 놓여있던


하얀 플라스틱 통.


원장님은 그 통을 테이블 가운데로 끌어다 놓았다.



통에 쓰여있는 글자가 우리 쪽으로 보이게 돌려주셨다.


천사점토.



"천사 점토. 오랜만에 보시죠?"


하얀 모습이 마치 눈처럼 보이죠.


"점토를 한주먹씩 가져가보시겠어요?"



남편과 내가 차례로 점토 한주먹씩을 뜯어 손에 쥐었다.


생각보다 촉촉해서 손에 참 감기는 느낌에


아무 생각 없이 점토를 만지작거렸다.




"한 번 점토 촉감을 조용히 느껴볼게요."


원장님의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점토를


조물딱 거리던 우리는 더 집중해서 촉감을 느꼈다.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 도로


우리는 금세 점토 만지기에 빠져들었다.



"자 점토를 보니 하얀 눈 같기도 하죠?"


"계속 만지시다가


어느 정도 내가 생각한 모양이 완성됐다 싶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놔두시면 됩니다.


어떤 형태든 상관이 없어요.


그냥 생각나는 걸 만드시고 완성되면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하얀 눈이라...


눈이라는 단어에 지난겨울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눈사람을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동글동글 예쁜 눈사람처럼


구모 양을 만들었다.



빠르게 점토를 빚어낸 나와는 달리


느긋하기 짝이 없는 남편.


아무리 옆에서 눈치를 줘도


혼자 무슨 생각에 빠진 건지


열심히 점토 빚기에 매진하는 중이다.

(다른 걸 좀 열심히... 해주겠니....?!)



원장님과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던 남편은 조용히 책상 위에


점토를 올려뒀다.



그가 빚어놓은 작품(?)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풉"

(사실은 웃음 아니고 비웃음)







그 순간의 웃음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신 원장님.


또다시 입가에 미소를 띠며 질문을 던졌다.

(무섭)


"글로업님, 방금 웃으셨는데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뜨끔)


마치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딴짓하다가 걸린 느낌.

(민망)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시키며 말을 꺼냈다.


"아... 딱 남편 스타일로 만든 것 같아서요."




원장님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끼셨을까요?


글로업님이 보시기엔 남편은 뭘 만드신 것 같으세요?"




"음... 제가 생각하기에 공 같은 걸 만든 것 같은데...


원래 남편은 2% 부족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거든요.


지금 만든 것도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모습에 웃음이 난 겁니다."

(껄껄)

(머쓱)




이어서 원장님은 남편에게 본인 작품(?)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얘기했다.


내가 설명한 내용이 어느 정도 맞는지도 함께 설명해 달라 하셨다.


"와이프가 얘기한 게 80% 정도는 맞아요."



"사실 뭔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만든 건 아닌데...

(그럼 그렇지...)


2% 부족하다는 생각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을 뿐이에요.



저는 학창 시절에도


제 에너지의 120%를 써서 전교 1등을 할 바에는


80%의 에너지를 써서 전교 5등을 하더라도


나머지 20%의 에너지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거든요.


부족함은 아니고 그냥 여유로운 삶을 뜻하는 거죠."




남편의 속내를 듣고 나니


남편의 생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뒤이어 내가 만든 모양을 설명하라는 말에


남편이 입을 열었다.


"동글동글한 게 너무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것 같아요."


"뭘 만든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공인가?"

(껄껄)




원장님은 나에게 설명을 요청하셨다.


"저는 지난겨울 아이들과 눈사람 만들던 때를 생각하면서


눈 굴리는 것처럼 동그랗게 만들었어요.


남편이 말한 대로 인공적이거나 인위적인 건 아니요.


저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최선을 하거든요.


그날도 아이들과 놀아줄 때도 남편은 야근이었고


다른 집은 아빠들이 나와서 눈 사람을 만들어주는데


저는 저 혼자 아이들을 위해 눈을 열심히 모아서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울컥)


그날의 추억은 행복함도 있었지만,


남편이 함께 하면 더 행복했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냥 마음 한편엔 외로움이 가득 찼던 것 같아요.


오늘 이 눈덩이를 만들면서도


그날의 외로움 + 아이들과 함께하는 행복같이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와서 눈물이 났네요."


"남편이 얘기한건 뭐 좋게 해석하면 반은 맞춘 것 같아요."

(50점이란 얘기)

(원장님 앞이라 50점 줬지 실제론 20점 ^^)



원장님은 두 작품을 본인 앞으로 끌어가며 얘기했다.


"이제 왜 부부 대화가 중요한지 말씀드릴게요."



"부부는 사소한 일상생활부터


커다란 경조사들까지 함께 공유를 하머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분 내 배우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가 만든 작품을 보고


만든 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추측을 했지만


만든 사람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던 부분이


대화를 통해 밝혀죠.


부부간에 익숙함에서 오는 추측이


부부 대화의 실패 요인입니다."



"남편이 퇴근을 자주 늦게 한다고 해도


'또 시작이네...' '네가 하는 짓이 그렇지 뭐...'

라는 생각을 하기에 앞서

(헉!)

(어떻게 아셨지?)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라고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겁니다.



글로업님 부부뿐만이 아니고 수많은 부부들이


이 사실을 놓치고 있어요.



아무리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도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데...


그동안 쌓여온 경험만 가지고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서 서로 오해가 생기고,


그런 것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감정이 상하고,


싸움이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이혼까지도 갈 수 있어요."




"작품을 보면 작가의 의도가 궁금한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배우자의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이 있다면


직접 물어보셔야 합니다.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듯이


대화를 통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배우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입니다."

(캬.... 명언)




"오늘부터 서로 질문해보세요.


'당신이 한 말이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떤 의미로 말한 건지 설명해줄 수 있어?'



'오늘 평소보다 많이 늦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오늘 돌아가서 대화 연습을 많이 하고 오세요.



그리고 과제가 있습니다.


배우자와 대화로 풀고 싶은 이야기 모두 적어보기!



잘하실 거라 믿어요!"



그렇게 그날의 상담은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다.





며칠 뒤, 혼자 책상에 노트를 펼치고 앉았다.


배우자와 대화로 풀어가고 싶은 이야기라....


과제를 써 내려가기도 전에 눈물이 노트 위로 뚝 떨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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