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한 날들을 보낸다. 생각에 진전은 없고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퍼져간다. 그러면 곧이어 습관처럼 불면의 밤이 찾아온다. 불면의 밤이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더 주는 기회의 밤이 되지 않는다. 나의 상념들은 현재에서 과거로 현재에서 미래로 과거에서 과거로 점점 확장되고 내 상념들은 날 이미 끝나서 어쩔 수 없는 과거로 끌고 가 날 꽁꽁 묶어 둔다. 불면의 밤은 곧 후회의 시간들로 변해버린다. 나는 항상 내 과거를 후회했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한 나 자신을 후회했으며, 그때 그런 말을 한 나 자신을 후회했으며, 그때 그런 행동을 한 나 자신을 후회했다. 나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쳐 세포 하나하나까지 나 자신을 탓했다. 그리고 나면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왜 여기 이러고 고통받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자신의 생과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건 한 인간으로서 참 불쌍한 일이었다. 그런 의문자체가 불쌍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로 여전히 날 탓하고 후회하고 부정하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의 삶을 살아왔다.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인지 어떤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것인지 파악하려 해 보지만 나도 안다. 그건 쓸데없는 일이란 걸. 설사 나에게 잘못이 있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100% 내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말을 하게 만들고, 나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고,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원인은 따로 있는데 나는 자꾸만 스스로를 자책하고 나에게서만 원인을 찾았다. 그런 내 행동이 오히려 날 살아가게 했던 방어기제의 하나였다는 걸 최근 깨달았다. 차라리 날 탓하고 날 더 옥죄이고 날 더 툭툭 털어야만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숨 쉴 수 있었다. 아무 잘못 없는 내가 이렇게 고통받는 이유가, 내 잘못이 아닌데도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이유라는 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오히려 지금의 난 이미 소멸되어 버리지 않았을까?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질척거리는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내 한 몸 잠시나마 숨 쉴 수 있는 곳이 곰팡이 가득한 반지하 방뿐이라는 사실, 누군가 알아챌까 봐 아닌 척 모르는 척하며 숨기고 또 숨기고, 혹시라도 그런 먼지조각이라도 티 날까 봐 날 더 채찍질하고 툭툭 털어댔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기에 어쩌면 내가 아직,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이런 마음을 털어놓고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바라보고, 타인의 입으로 날 옹호할 수 있었던 시간들. 다행이었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나 스스로 날 포기하지 않아서, 나 스스로 날 소멸시키지 않아서, 차라리 날 탓할지언정 남에게 손가락질받는 삶을 선택하지 않아서 그래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밟아도 밟아도 밟힌 채로 자라는 이름 모를 잡초처럼 끈질기게 내 삶을 이어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꿈을 꾸고 기쁨도 누리며 이제 나를 사랑해 볼 마음의 준비도 되었다.
내 머리채를 끌고 현재에서 과거로, 현재에서 미래로, 과거에서 더 먼 과거로 끌고 다니는 상념들과 마주하는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되면 난 가만히 그 상념들을 마주한다. 이제는 그런 상념들 속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거나 모른 체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곧 나 자신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세포들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가만히 그리고 고요히 마주해 본다. 그것들이 내는 울음소리를 듣고, 그것들이 내는 상처를 느끼며 오롯이 마주 본다. 아직까지 아플 때도 있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업데이트를 기다리고 있는 웹툰, 시간 때우기 용으로 종종 하는 퍼즐 게임 따위도 도움 되지 않을 때, 내 옆에 누워 곤히 잠든 아이를 본다. 고르게 쌕쌕 거리는 아이의 숨소리를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본다. 땀에 젖은 보드라운 아이의 머리카락을 넘겨준다. 아직은 작은, 그렇지만 나에게 처음 왔을 때보다 부쩍 큰 아이의 손과 맨 발을 만지작거린다. 잠든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고 아이를 꼭 끌어안고 아이의 냄새를 폐 깊숙하게 들이마신다. 그러고 나면 뾰족뾰족 지푸라기 같던 상념의 줄기들이 한 곳을 향해 뻗어 간다.
이렇게 살아 있어서 참 좋다. 이렇게 살아 있기에 너를 만나고 너를 만지고 너를 보고 너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도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가 내 목을 또다시 옥죄여 올 때마다 날 현실로 끌어올려줄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 너에게 더 당당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나는 내 발목을 붙잡는 유령 같은 흔적들을 무시하며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