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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Nov 05. 2024

비록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 해도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애정결핍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정확한 정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단어를 듣자마자 이건 나를 설명하는 말 같았다. 단어를 듣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리며 저 단어 하나면 애매모호하고 알 수 없는 나란 존재를 아주 손쉽게 설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정결핍.

유소년기에 부모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주변인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경험으로 인해 초래되는 불안정한 정서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 그 단어는 정말 나! 그 자체였다.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은 기쁜 마음 반, 그리고 그게 날 내내 따라다니겠구나 하는 슬프고 고독한 마음이 반이었다.


유년 시절의 나를 생각해 본다. 2녀 중 막내, 언니와의 나이 차이는 5살이었다. 막내의 어쩔 수 없는 본능으로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애정을 갈구하며 언니에게 경쟁의식을 느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기에 정작 언니는 동생한테 관심도 없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경쟁의식도 우습게 보곤 했다. 엄마와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를 갈 때 엄마 옆자리에 내 또래의 아이가 앉기만 해도 우리 엄마랑 닿지 말라고 얘기하며 손바닥으로 가림막을 만들었을 정도였다. 난 어쩌면 태생부터 욕심 많고 애정에 대한 욕구가 큰 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의 본능에 가까운 욕구가 무사히 충족된 상태로 자랐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모습일까 하고 가끔 상상해 본다.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잘 상상되지 않는다. 상상조차 힘들 정도로 어둠에 갇혀 있던 내 마음을 한동안 봉인시켜 버렸다. 그 마음을 들여다본다 한들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느꼈다.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묵묵히 버티어 나가는 것뿐이었다.


아이를 낳고 사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그전의 나에게 사랑이란 남녀 간의 사랑이 최우선이었다. 그것처럼 호기심이 생기고 궁금한 건 없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나 종교적인 사랑은 나의 관심 밖이었고 나의 흥미를 끌지도 못했다. 그러나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를 하며 남편과의 사랑은 전우애로 탈바꿈했다.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달랐다. 흡사 여자로서 내 인생도 출산과 동시에 막이 내린 느낌이었다. 더 이상 드라마나 영화 속의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떨리지 않았다. 그것은 내 이야기가 될 수 없는 타인의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는 이야기가 주는 떨림을 느끼는 일이란 흡사 도둑질을 하는 것처럼 불쾌할 때도 있었다. 마치 남의 것을 탐하는 기분마저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야 말로 제일 일차원적이고 쉽게 녹아버리는 솜사탕 같은 것 단지 그것뿐이라고. 달콤하고 보드랍지만 금방 녹아 없어져 버리고 끈적거림만 남겨지는 것…


어쩌면 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가족 간의 사랑이 아닐까? 의지하고 기대고 누군가를 받쳐주고 젖 먹던 힘까지 더해서 널 보살펴 주는 것. 너를 살게 하고 더불어 나를 살게 하는 힘. 내가 어른이 되어 나 스스로 이룬 온전한 가족이 생기자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육아는 너무 고되고 아이 낳기 전과 낳은 후의 남편은 때때론 남의 편 같기도 하다. 외롭고 고독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가시덩굴 터널을 맨몸으로 헤매는 것 같다. 아파도 아프다 말할 수 없고 힘들어도 힘들다 말할 수 없는 그런 날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에게 다시 태어나거나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생기더라도 또 결혼할 거야? 아이는 또 낳을 거야?라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한결같다. 또 결혼할 거야. 다시 아이를 낳을 거야.  아이가 주는 기쁨과 충만함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땅한 답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혹여나 지금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는 변수가 생기더라도 난 다음 생에도 내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싶다. 그런 마음과 사랑은 내 아이를 자라게 하고 또한 날 살아가게 한다.


최근에야 비로소 내 마음속에 있는 작은 아이를 바라볼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 아파하고 소리치고 울고 절망하고 지쳐버린 그 아이를 바라보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서두르지 말고 양파껍질을 한 겹 한 겹 벗기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바라보자 다짐한다. 껍질을 벗기다가 눈이 매우면 잠시 멈추고 울자. 울고 난 후엔 다시 벗겨야 할 껍질과 마주할 수 있겠지.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매초 흐르고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도 계속 흘러가며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비록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 해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싶다. 내 육체와 영혼이 소멸하기 전까지 날 응원하고 싶다. 오로지 내 자애만으로도 날 꽉 채우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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