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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 Jul 22. 2024

늘 그리운, 그러나 외로운 그날(2)

- 떡만둣국

케냐의 7월은 겨울이다.

제법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고, 그 쌀쌀함은 한국의 겨울과는 다른 서늘하고 쓸쓸하며 외로운 느낌이다. 함박눈이 쏟아져 거리가 온통 움직이지 못하는 차와 아직 녹지 않아 투명함과 먼지로 뒤범벅된 눈이 가능한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추위가 온통 퍼져있는 겨울이 아닌, 여전히 초록의 계절이 함께 있으니 일상적인 날에 추위가 잔잔히 스며들어 쓸쓸한 그런 계절이다.


케냐와 덴마크에서 꽤 유명한 작가이자 사업가인 '카렌 브릭슨'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그녀가 계절이 반대인 나라를 오가며 살았던 것을 빗대어 두 계절을 동시에 느끼고 품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겨울과 여름을 동 시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는데, 요즘 케냐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에게 그리 느껴진다. 지금은 겨울인가 여름인가.


오늘 아침, 여전히 정갈하고 따뜻하게 차려진 밥상, 혹은 집밥.

8시에 나와 아침을 먹으라 하셨던 어제저녁의 인사가 주말 아침 모처럼의 늑장을 말리는 것 같아 내내 부담스러웠으나, 차려진 밥상을 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한참을 웃으며 반찬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맛있게 드시소!"라 건넨 인사에 "명절 같아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라 호들갑스레 인사했다, 마치 이 밥상을 기다렸던 것처럼.


떡만둣국, 

태어나서 엄마가 단 한 번도 해준 적 없던 음식이다. 만두 따로 떡국 따로 먹어본 적은 있으나, 일상에 혹은 명절에 엄마가 끓여주던 떡만둣국은 먹어본 기억이 없다, 우린 명절에 만두를 만들어 본 적이 없고, 겨우 몇 번 '고향만두'를 쪄 먹어본 적은 있는 것 같다, 그때 그 환상적인 맛이란...


설이나 추석이 되면 새 옷을 해 입을 형편이 되지 않았던 나는 그래도 중학교 올라가면서 제법 정장 같아 보였던 교복을 입고 어른들께 세배를 하러 갔던 기억이 있다. 다행인 것은 그 시절, 우리 집도 가난했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삶을 살았기에 부끄럽거나 누가 부럽지 않았고, 오히려 교복이 있어서 매일 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 마음 편했고 명절에 새 옷을 입지 않아도 단정해 보여 나름 괜찮다 생각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했다.

여전히 아버지는 떠돌았고, 나와 언니와 오빠는 학교며 직장생활도 아주 멀지는 않지만 거리가 있는 곳에 머물거나 이동했으나, 엄마만 늘 같은 곳에 있었다, 늘 우리의 뿌리이자 그늘처럼 그곳에 있어서 나에게는 갈 곳이 있었고, 그곳이 나의 고향이자 종착역이었다. 그리고 우린 그곳에서 늘 명절을 홀로 혹은 같이 보냈다.


해외를 떠돌며 일을 하다 보니 명절에 엄마를 찾는 횟수가 불규칙적이고 어떤 해는 아예 함께할 수가 없었다. 한국으로의 휴가 때나, 한국에서 근무하시는 시기에는 최대한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했으나, 평소에 함께한 시간이 많다고 해서 명절을 홀로 보내게 하는 엄마의 마음이 위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스스로도 명절이 아닐 때 함께 만나 짧은 여행도 하고, 맛집도 찾아가고, 쇼핑을 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에 누워 엄마가 챙겨주는 음식을 콩 따먹듯 받아먹은 적은 있었으나, 이러한 수 십 번의 만남과 시간이 '설 하루'동안의 시간과 의미를 채워주지는 않았다. 너무 많은 의미가 부여된 '명절'에 텅 빈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온 우주가 품고 있는 고독을 혼자 감내해야 하는 쓸쓸함과 고통과도 같은 느낌이었을 테니.


"올 수 있겠냐" "시간이 되냐" "시댁은 갔냐"며 조심스레 묻던 엄마의 음성에는 "그래도 오면 좋지" "시간이 되면 좋겠다" "시댁에서는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다"와 같은 본심이 너무나도 짙게 전해져 왔었다. 말로는 직접 표현하지 못하고 그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잔뜩 품었던 엄마는 정말로 자식들이 본심을 몰랐으면 했을까, 아니면 알아주기를 바랐던 걸까.


따끈한 떡만둣국을 보고 있자니, 

우리 식구가 다 모여 수다 떨며 밥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밥 먹고 뭘 할까 하며 인근 시간 보낼 데를 찾고 있을 때도 분명 있었겠지만, 집에서 홀로 밑반찬 두고 보리차 가득 부은 멀건 밥을 힘없이 뜨며, 함께하고픈 자식들 사진과 울리지 않은 휴대폰을 번갈아 보았을 쓸쓸한 엄마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어쩌면 엄마의 그 모습보다, 그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았던 나는 그때 무엇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그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하는 회환이 몰려온다. 김치 몇 조각을 둔 밥상에 만두가 들어가지 않은 초라한 떡국이라도 엄마랑 함께 따순 한 그릇을 비우고 부른 배를 만지며 "엄마가 끓여준 떡국이 제일로 맛나구만!"하며 큰 소리 내며 웃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우리의 명절은 늘 기다려지고 그립기만 한 시간이었을 것을,

엄마의 그리우며 한 없이 외로운 시간이 되지 않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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