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숨죽인 여름날, 뜻밖의 날갯짓과 시선이 마주쳤다.
유난히 덥고 바람 한 점 없던 나른한 휴일 오후, 공기마다 열기가 붙어 몸을 끌어안는 삼복더위였다. 40도의 열기는 마치 용광로에서 갓 쏟아낸 쇳물이 펄펄 끓듯 살을 파고드는 듯했다. 나는 서재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책과 글 사이에서 끈적임을 견디고 있었다.
그때 잠자리 한 마리가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아파트 8층까지 올라온 이 뜻밖의 방문객, 투명한 날개와 단정한 선은 품위와 정숙함을 담고 있었다. 눈에 띄는 화려함은 없지만 그 소박함 속에서 우아함이 살아 숨 쉬었다
그 절제된 자태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간직해 온 단아한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했다. 장식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고요한 존재였다.
햇살에 부서진 날개가 유리조각처럼 반짝였고, 여린 날갯짓은 방 안을 맴돌며 한낮의 열기를 잠시 잊게 해 주었다. 천장과 창가를 오가며 머물고 날아가는 모습은 마치 내 시선을 은근히 끌어당기는 무용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작은 존재는 내 방 안의 공기를 새롭게 바꾸었고 한여름의 선물처럼 내게 다가왔다.
햇살에 흔들리는 여린 풀잎처럼 은은한 빛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섬세한 자태를 바라보며 오래전 추억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먼 이국땅에서 참새 한 쌍이 방 안으로 날아든 적이 있었다. 비스듬히 열린 방문을 툭 툭 두드리던 날갯짓은 마치 운명이 전해주는 신호처럼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다음 날, 아들의 대학교 합격 소식이 전해졌고 우리는 간절히 기다린 기쁨에 부둥켜안아 눈물을 흘렸었다. 그 참새의 방문은 평범하지 않은 기이한 일이었으며 늘 행운을 전해주는 길조로 자리 잡았다.
이번 잠자리의 방문도 우연이 아닐 것 같았다. 여름 하늘 너머에서 무엇을 전하려 이곳까지 날아온 걸까?
담백하고 고상한 자태가 내 영혼에 빛을 비추며 무언가 좋은 소식을 전해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창밖 풍경은 늘 내 마음을 환히 열어준다. 논과 밭이 이어지고 그 위로 산자락이 부드럽게 감싼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어우러져 마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 전경은 매일 내게 감사와 위로를 건넨다.
한여름 절정의 풍경 속에서 날아든 잠자리는 자연이 건넨 은밀한 격려의 편지 같았다.
여린 날갯짓이 내 삶을 부드러운 빛으로 물들였다. 미세한 떨림 속에서 오히려 단단한 삶의 힘이 느껴졌다.
작은 날개라도 쉼 없이 움직이면 언젠가는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잠자리가 속삭이고 있는 듯했다. 한참을 노닐던 잠자리가 떠난 뒤에도 유리빛으로 번지는 흔적은 서재 안에 한 줄기 여운으로 남았다.
잠시 머문 손님 덕분에 조금 더 단아하게 조금 더 우아하게 내 삶을 펼쳐 보고 싶다는 마음을 배웠다
삶은 커다란 날갯짓보다 작은 떨림에서 시작된다. 특별한 방문객 잠자리의 속삭임처럼 우리도 저마다 투명한 날개 하나 달고 다시 한번 인생의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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