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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저녁 무렵

냇가에서 건져 올린 사색

by 아침햇살영



며칠 동안 내린 폭우에 냇물은 황톳빛으로 불어났다.

쉼 없이 몰아치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 물살을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도 그늘에 잠겼다.

그러나 흙은 가라앉고 결국 맑은 물이 드러났다.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은 초저녁 나는 늘 하던 대로 걷기 운동을 나섰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온몸이 땀에 젖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논에는 벼 이삭이 고개를 내밀고 풀잎 사이엔 한여름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어린 시절 비 온 뒤 흙길에서 맡던 흙내가 문득 되살아 났다.


그 순간 흙냄새에 배어 있던 오래된 기억이 문을 열듯 깨어났다.


맑음으로 나선 등굣길, 빗속에 젖어 돌아오던 하굣길

그 길은 빗물로 질척였고 벗겨진 고무신을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가던 아이


물풀에 가려 깊은 곳과 낮은 곳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냇가

크고 작은 돌 사이에서 물장구치며 깔깔대던 철없는 시절

물놀이하다 다칠까 “조심해라 물가에 가지 마라” 하시던 부모님의 잔소리


비바람에 농작물이 쓰러질까 염려하며

우비도 걸칠 새 없이 젖은 어깨로 밭두렁을 채비하시던 부모님의 모습

이 모든 추억은 지금도 내 마음을 바쳐주는 기둥이 된다.

산골의 소박한 삶은 언제나 정직했고 담백했다.


걷고 뛰는 호흡 사이로 나는 사색에 잠겼다

며칠간 내 안을 어지럽히던 마음도 흙탕물처럼 요동쳤지만

그저 바라보고 흘려보내자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억지로 밀어내지 않아도 애써 감추지 않아도

시간은 흙을 가라앉히고 맑은 물을 드러냈다


그때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물이 맑으면 달빛은 스스로 비친다.

흙탕물을 억지로 걷어낼 필요는 없다.

시간이 흙을 가라앉히듯 삶 또한 그렇게 맑음으로 되돌아온다.


운동을 마친 나는 흠뻑 젖은 몸을 잠시 개울가에 내려놓았다.

거센 물살로 휘몰아치던 냇물도 어느새

자갈과 잡풀 사이를 비집고 유순히 흘렀다.


땀방울과 함께 마음의 무거움도 흘려보내고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물소리는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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