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얼굴
3주 만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그
순간 나는 안도했다
힘든데 내일 새벽에 올라오지 그랬어요
차 막히는 길 고생을 사서 하는 그
반가움보다 먼저 튀어나온 잔소리
긴 세월 빛바래 덤덤해진 우리 사이
어제 아침 운동 갔던 등산로에서
주머니 가득 밤을 주워왔다
그릇이 없어 운동복 주머니에 채워왔던 밤
압력밥솥에 쪄서 내놓으니
그는 출처를 물으며 맛있게 먹었다
내일 아침엔 내가 더 주워올게
부지런한 그의 말은 언제나 실행으로 이어진다
연휴 하루를 남겨두고 그는
일터 복귀를 위한 짐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소지품을 챙기고 옷을 접었다 폈다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성격이 급한 그는 늘 그렇듯
아침을 기다리지 않고 미리 서둘렀다
새벽 쇼핑백 두 개 들고 나선 그
빈손으로 돌아와 투덜거렸다
헛수고한 표정은 어린아이 같았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LA갈비를 굽고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그이기에
손은 분주했다
밥솥에서는 치치 소리가
작은 긴장을 보탰다
견과류 얹은 수제 요플레를 내밀었다
식전에 이거 먼저 드세요
말없이 숟가락을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왠지 서글퍼 보였다
허리가 아프다며 약봉지를 챙기는 그
그 손길을 바라보는 나는
위로보다 원망이 먼저 튀어나왔다
힘겹게 번 돈 내 손엔 쥐꼬리
그는 허허 웃었지만
얼굴엔 ‘미안’이 묻어 있었다
나는 어김없이 그의 간식을 챙겼다
찐 밤, 찐 고구마, 구운 김
그리고 여러 가지 과일까지
쇼핑백은 점점 무거워졌다
뭐가 이렇게 많아 휴게소에서도 먹을 수 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꺼이 그것들을 들어 올린 그
사랑은 말없이 나누는 짐
손잡은 무게만큼 깊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위층 노부부가 운동복 차림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손을 꼭 잡은 다정한 모습에
부러움이 밀려왔다
잘 다녀오세요 몸조심하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탔다
문이 닫히는 순간
돌아서는데 눈이 젖었다
이 눈물은 뭘까
그를 죽도록 사랑했고 죽도록 미워했다
자기 일에는 세상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하고
일에서 손을 놓게 될까 늘 안절부절한다
60대 후반
닫히는 문 앞에서
때때로 거절이 그를 맞는다
그럴 때마다 가슴 아파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쉬지 않고 일하려 한다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금메달감이고
내가 유일하게 칭찬해 온 부분이다
기네스북에라도 올려야 할 만큼
한결같이 성실한 사람이다
그의 고단함이 애잔하게 다가왔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낸 내가 싫었다
이 또한 사랑의 다른 얼굴일까
떠나는 뒷모습은 쓸쓸한 바람
남겨진 눈물은 오래도록 뜨겁다
에필로그 – 사랑과 행복의 다른 얼굴
목숨 걸고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살다 보니 사랑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날이 많았다.
원망과 눈물, 잔소리와 고단함이
사랑의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그런데도 세월 속에서
우리 부부의 연은 곰삭고 익어가며
때로는 쓰디쓴 약이 되었다.
행복인문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행복은 완벽한 기쁨이 아니라
이 모든 애환을 껴안고 살아가는 힘이다.
지독한 부부의 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삶을.
그러나 알 수 없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함께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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