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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흙이 품어 올린 햇살의 결정체

화려하지 않아도, 순한 노랑의 온기처럼

by 아침햇살영


아침 여명이 언덕 위로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나는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황금빛 들판을 걸었다.

그때, 기대하지 않았던 노란 호박꽃 군락이 선물처럼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호박꽃도 꽃이란다.” 어릴 적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은 예쁘지 않다는 의미일까, 꽃으로 부족하다는 뜻이었을까.

그러나 지금 내 눈앞의 호박꽃은 화려함 대신 진심을

도드라짐 대신 오래 남는 온기를 품은 꽃이었다.

그 노란빛은 태양보다 따뜻했고, 오래된 미소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꽃잎의 노란빛은 단순한 색이 아니었다.

태양이 하루를 짜내 만든 황금, 흙이 품어 올린 햇살의 결정체였다.

그 안에서 벌들은 오래된 언어로 생명을 주고받는 듯 움직였다.

사랑을 말하지 않는 꽃은 향기로 대답했다.

부지런한 날갯짓은 짧지만 영원을 품은 한 줄 시(詩)처럼 보였다.


그 순간 떠오른 사람은 우리 어린이집 조리사님이었다.

늘 말보다 손길이 먼저 전해지는 분.

성실한 마음이 아이들의 밥상 위에서 조용한 온기로 피어나는 분.

말없이 사랑을 피워내는 모습이 호박꽃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유년의 풍경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호박잎이 언덕을 덮고 꽃잎들이 낮의 달빛처럼 빛나던 때.

아버지의 웃음과 어머니의 손끝, 오래된 부엌 냄비에서 피어오르던 늙은 호박죽의 향기.

사라진 줄 알았던 그 시간은, 호박꽃의 노란빛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어린이집 텃밭 역시 삶의 정성으로 가득한 자리였다.

작은 삽이 흙을 가를 때마다 아이들의 웃음이 씨앗처럼 묻히고

그 위로 따뜻한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흙은 말없이 일러주었다.

자라는 것은 모두 오래 기다리는 침묵에서 온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세상의 규정을 지우고 말하고 싶다.

“호박꽃이야말로 꽃답다.”


화려하지 않아도 따뜻한 생명을 품은 노란 마음

어떤 하루엔 은은히 스며들고

어떤 마음엔 작은 온기가 되어 머무는 힘.

그것이 내가 닮고 싶은 삶의 모양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람의 길에 빛을 더하는 존재

꽃이 열매로 바뀌듯 내가 건네는 작은 관심과 사랑도

언젠가 누군가의 내일을 밝히는 손길이 되기를 바란다.


KakaoTalk_20251026_235152718.jpg 사진- 황보영 촬영


호박꽃의 침묵이 가르치는 존중


호박꽃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에는 햇살과 바람을 향한 감사가 흐른다.

억지로 피어나지 않고 타인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며,

허락된 빛만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단정함.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되는 꽃.


꽃은 결국 자신을 내어준다.

벌에게는 향기를, 사람에게는 열매를,

세상에는 조용한 나눔의 미학을 남긴다.


오늘도 나는 아이 한 명의 손을 잡는다.

그 작은 손안에 심긴 빛 한 조각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을 환히 비추기를 바라며—


나는 다시, 한 송이 호박꽃 같은 하루를 건넨다.


https://www.instagram.com/saimdang6356/p/DRwndB7kjBT/

https://www.youtube.com/watch?v=2EAcVMZfuVs&t=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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