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라고 불렀던 네 살 아이가 보여준 기적
11월의 차가운 바람이 서서히 겨울의 문을 두드리던 금요일이었다. 우리는 3·4세 아이들과 함께 매월 한 번씩 찾아가는 작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세상의 모든 부산스러움이 잠시 멈춘 듯, 도서관은 책의 온기로 밝게 빛나는 작은 등대 같았다. 정신이 메말라 가는 세상에서 이 고요한 공간만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곳도 드물 것이다.
그날 나는 이 평화로운 등대 안에서 내 안에 자리 잡은 불안과 선입견을 부수는 장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네 살 남자아이 중에는 언어 발달이 늦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 평소 자해 행동과 큰 소리를 내곤 하는 아이가 있다. 정숙을 요구하는 도서관에서 책에 집중할 수 있을지 혹은 주변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이는 책을 꺼내 조용히 자리에 앉더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 책장을 넘겼다. 책 넘기는 작은 소리 외에는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낸 정적만이 흘렀다. 평소 자동차를 좋아하던 아이의 몸짓은 책 앞에서 정박한 배처럼 잔잔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내 안의 긴장과 걱정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 기적은 그다음에 찾아왔다. 우리 어린이집에 등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모든 것이 낯선 세 살 여자아이와 그 아이가 서로 마주 앉아 있었다. 평소 자신의 공간이 침범되면 금세 과격해지던 아이였지만 신기하게도 그날은 달랐다.
아이의 작은 손이 허공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여자아이는 그 따뜻한 손길을 조용히 받아들였고 잠시 후 두 아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티 없이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한 부끄러움과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아이 안에도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구나.”
그때 알았다. 우리가 ‘문제 행동’이라 규정했던 것은 아이가 세상을 향해 쳐놓았던 단단한 성벽이었을 뿐, 그 안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따뜻한 마음의 방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상황과 환경 그리고 관계가 이 아이들에 의해서 자연스레이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만나게 되면 미리 지나치리만큼 염려와 불안 속에 힘들어하곤 한다. “감정 조절이 안 된다”, “다칠까 걱정이다”,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줄까 불안하다.”라고 아이를 단정하는 순간. 그 말들은 사실 아이를 온전히 믿지 못한 나의 불신 그리고 어른의 편견이 만들어낸 선입견이 숨어 있었다.
그 아이와 함께 했던 도서관에서의 경험은 내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의 행동을 규율의 잣대로 판단하는 대신 그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의 결을 읽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짜 교육이며 아이의 전인적인 발달을 돕는 가장 근본적인 길이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른의 성급한 판단이나 매뉴얼로는 닿지 못하는 ‘또 다른 방’ 즉 편견으로 오염된 어른의 마음으로는 발견하지 못하기 쉬운 ‘본성의 정원’이 언제나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의 성장에는 보이는 변화보다 보이지 않는 준비의 시간이 더 길다.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아이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날 도서관에서 나는 교육이란 변화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변화가 스스로 진행되게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는 서비스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의 문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의 세심한 관찰과 충분한 기다림, 그리고 어른 스스로 불안을 내려놓고 따뜻하고 사려 깊은 손길로 다가서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절감했다.
어쩌면 진짜 교육이라는 것도 그 일상의 문 앞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인지 모른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만날 때, 때론 닫힌 듯 보이는 문 앞에 설 때마다 문을 여는 것은 과연 아이일까, 아니면 우리 어른들의 마음일까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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