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리학자의 은밀한 내면탐구
에리히 프롬은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의 이면에는 창조의 욕망이 있다고 했다. 이 통찰은 프롬에게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 동양철학에서도 존재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양극은 서로 통한다"라는 말은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것이 사실은 서로 통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내 내면의 폭력성과 파괴하고자 하는 욕구를 탐구해왔는데, 오랜 심리학 공부 끝에 난 이제야 내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내 마음에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고 잔혹해지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날에는, 이 마음을 풀어보고자 나는 종종 격투기를 본다. 강한 타격감을 보며 짜릿함을 느낀다. 나는 작은 체구에 꽤나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졌지만, 어린 시절부터 레슬링이나 격투기를 보는 것을 즐겼다. 이는 내 안의 무력감을 폭력을 숭배하고 공격자와 나를 동일시함으로써 지워버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맞으며 컸다. 내 반항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가 지나도록 나를 때렸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쉴 새 없이 맞기도 하고, 머리채를 붙잡혀 머리카락이 잔뜩 뽑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맞았던 것은 고등학생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미 신체적 성장이 끝났기에 당시 내 키는 154cm에 43kg쯤 됐다.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아버지의 폭력은 그 자체로 고통이었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졌다. 나를 더 아프게 했던 건 폭력을 멈추게 하려면 부당한 폭력에 무릎 꿇고 빌어야 했던 내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자존심도 없다며 두들겨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빌지 말았어야 했다는 내면의 비난이 나를 제일 고통스럽게 했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그중 하나는 내가 심리학자가 되기로 한 동기를 준 사건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같은 상에서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밥상에서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면 부지불식간에 쇠숟가락으로 머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젓가락질이 서툴러서, 어떤 때는 편식을 해서 맞았다. 그럴 때면 울먹이며 눈물 맛이 나는 찝찔한 맛의 밥을 삼켜야 했다.
12살쯤, 아빠와 밥상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자 얼른 밥 먹고 내가 책 속으로 도망치던 여느 날과 같은 날이었다. 그때 난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책을 펴들었는데, 그걸 본 아빠는 조소 담긴 말투로 "심리학 책은 이해도 못 할 텐데 뭘"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나에게 정말 비수처럼 박혔다. 우선 부모로부터 지지보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이 슬펐고, 그다음은 내가 왜 그를 피해 책 속으로 도망치는지 그는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을 체념했다. 다만, 나는 그 이해받음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가장 약한 목소리를 들어줄 줄 아는 어른이 되자고 생각했다.
그 어린 아이의 나는 체념하고, 내가 누군가를 이해해줌으로써 나의 결핍을 대리만족하고자 했다. 이후 난 다짐을 성실히 수행했고 얼마 전 미국에서 상담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생으로 유학 와 다른 언어도 문화에 적응하고 상담을 하는 것은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변화를 요했다. 물극필반이라. 모순되게도 나에게 최악의 경험들과 결핍은 내가 더 열심히 할 동기가 되었다.
나는 아버지와 연락을 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 만난다면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다.
"아빠! 아빠가 날 비웃어서 난 심리학자가 되었어. 내 관심과 열정은 당신이 비웃을 만한 것이 아니야. 이젠 내 마음에서 떠나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