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한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다. 다만 속삭임을 듣지 않았을 뿐.
박사 학위를 받고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뿌듯함이 아닌 허무감이었다. 고시원 한 칸에서 유학을 위해 영어 공부를 할 때는 미국에서의 삶을 상상하며 힘을 얻었고, 미국에 도착해서는 앞으로 주어질 기회들에 흥분되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장애물을 극복하고 그토록 원하던 심리학자가 되었는데도, 이상하게 내 마음에는 허무감이 깊게 자리 잡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이 허무감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도 차도 돈도 없이, 물질적으로 따지자면 지난 6년의 시간을 바친 결과물은 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
나는 언제부터 집, 차, 돈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건 집을 산 사촌을 부러워하던 미용실 아줌마의 표정, 집을 샀다고 자랑하던 우리 이모의 얼굴 같은 것이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 결과였다. 나는 언젠가 집과 차, 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눈앞에 없어서 아쉬운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6년을 고생하며 집과 차, 돈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지식과 경험을 쌓기 위해 애썼다. 내가 성공하는 삶을 집, 차, 돈으로 정의했다면 그것을 더 이룰 수 있게 하는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 내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지 분명히 하지 않고 적당히 박사 따면 집, 차, 돈이 저절로 따라오리라 생각했으니 졸업하고 이런 허무감이 든 것이다. 돈은 내가 공부하는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고, 돈을 벌어야 돈이 들어오는 건데 말이다.
나란 존재는 어찌 이토록 어리석은가. 마치 팔운동 열심히 하고 엉덩이 커지기를 바라는 꼴 아닌가. 하지만 나만 이렇게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그것을 성취하며 살아간다지만, 나와 같이 정말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는 법을 모르기에 실패를 더 많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아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우리는 종종 다양한 이유로, 주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포기하거나 못 본 척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관심이 필요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성공적인 감독도 감독으로서의 삶이 처음엔 작은 속삭임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그는 그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고, 그것을 통해 길을 찾았다. 나는 나에게 귀 기울이는 과정의 중요성을 배운 적이 없다. 부모님은 바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내 작은 관심을 알아채줄 능력도 여유도 없었다. 어쩌면 내 세대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의 부모님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솔직한 자신으로 사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제 나는 그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내 마음속 작은 목소리에 더 집중하려 한다.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내가 이전에도 길을 찾은 것처럼 이번에도 길을 찾으리라 믿으며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는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가 이끄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려 한다. 어쩌면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성공은 남들이 정의한 기준이 아닌,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