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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예지 and Yeji Son Sep 17. 2024

가족 트라우마의 복잡성에 대해

미국사는 젊은 심리학자의 고찰 

미국의 정신질환 진단 기준인 DSM에는 '가족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족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은 그것이 실제 트라우마임을 삶을 통해 생생히 체험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와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정신질환은 아마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일 것입니다. PTSD 진단은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하는 등의 트라우마적 사건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가족 트라우마는 이보다 더 은밀하고 복잡합니다. 가족 트라우마는 교통사고나 범죄와 같은 단일 사건이라기보다는, 성장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경험되며 그 사람의 인생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이로 인해 교통사고, 범죄, 전쟁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증상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처럼 지속적인 경험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족 트라우마는 복합 PTSD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DSM을 작성할 당시 정신과 의사들과 학자들은 PTSD는 채택하면서도 복합 PTSD는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는 복합 PTSD가 PTSD와 너무 유사하다는 논리에 근거한 결정이었습니다. 필자는 이 결정에 큰 아쉬움을 느낍니다. 복합 PTSD를 DSM의 진단 기준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이런 은밀하고 복잡한 종류의 PTSD를 진단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추석을 맞아 가족 트라우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필자는 이제 8년째 미국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이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겪은 가족 트라우마가 삶에 영향을 미칠 때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납니다. 추석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하며 그리워해야 할 가족들이 이제는 잊고 싶은 과거처럼 느껴질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지고 괴로워집니다. 아마 가족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다른 이들도 비슷할 것입니다. 온전히 싫어하지도, 끊어내지도 못하는 가족과 관련된 고통을 정상적인 가족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혹은 '가족이니까 용서해야 한다'며 가족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들을 비난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오랜 시간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가족에게서도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으며, 그것이 PTSD와 유사한 증상으로 삶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과 거리를 두고 싶다면,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고 반추하며 회복하고 싶다면 그런 시간을 가지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좀 더 용서하게 되고 마음이 조금은 더 편안해진다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훗날에는 가족도 용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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