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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리 Nov 22. 2024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 - 신아현

제 구남자친구가 불러주던 애칭은 연아였습니다. 



p. 66


생일 밥을 혼자 먹기 싫었던 할머니의 외로움이 내 심장에 박힌 건지, 다음 생에 사랑받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던 할머니의 슬픈 바람이 내 몸을 휘감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늘 보던 모습인데도 그날따라 이상하게 가슴에 찬 바람이 불었다. 박정자 할머니가 농약 마신 것을 이웃 주민이 발견해 119에 실려 왔는데 아무래도 오늘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며 할머니 보호자를 빨리 찾아달라는 전화였다. 



(* 나는 농약음독 시도자들을 응급실에서 많이 만났다. 화성시에 근무했을 때도, 시흥시에서 근무했을 때도. 화성시 근무 당시에는 대학병원은 아니고 동네 종합병원인데 응급실 답게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사이에 천 쪼가리 하나 닫고 면담을 해야한다. 보통 신체적 처치가 우선인데 그 과정에서 삶의 문턱을 오가는 과정에서 내가 아무리 주의집중을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경청하고 어떻게서든 더 나은 삶이 있다고 좋은 멋진 삶이 있다고 저연차때는 아무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환자의 분위기를 살피고 말 한 두마디를 겨우 뗐다. 



함께 출동나간 사수나 고연차들은 주변 상황파악하느라 자리를 비우면 나는 보호자 면담을 해야한다 하나라도 알기 위해서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 침묵일지라도 나는 태어나서 장례식에 간게 처음은 친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천안순천향대 장례식이고, 두 번째는 내 친구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조문을 갔고, 세 번째는 중학교 동창이 대학교 새내기때 자살로 삶을 마감해서 반가운 마음에 모인 장소가 장례식장이었다. 



다들 타지로 흩어졌다가 만난 20살 친구들이 반가웠지만 그 장례식에서 반가움을 표현해도 되는건지. 잘 모르는 어린 우리들은 반갑지만 입꼬리는 올리고 싶었지만 막상 친구의 부모님의 울부짖음을 봤을땐 우리도 무너졌다. 꽤나 장난기 많고 밝은 친구였고, 나와도 싸이월드 방명록으로 안부를 주고 받고 언제 만나자만나자 했지만 결국 만난게 장례식장에서 밝게 웃는 너의 영정사진 모습에 우리는 부모님을 붙잡고 같이 울어드렸다. 너와의 기억은 줄넘기 손잡이를 보고 19금 농담을 하는 친구였는데 여자인 친구 치고는 깨발랄에 겉은 조용해보여도 장난기 많던 친구였는데 거기서도 깨발랄하게 지내길 바라. 이승이나 저승이나 본성은 어디 못간다는 말을 나도 이제는 알아갈 것 같다.



아무튼 나를 괴롭혔던 상부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도 먼 타지에서 퇴근하고 차려입고 조문객을 갔고, 조루증처럼 입사한 병원에서도 시어머닌지 시할아버지인지 조부모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입사한지 이틀차인데도 장례식에 갔다. 



나이를 먹어가니 장례식 갈일이 많다. 아, 내 친구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갔다. 이제는 새로운 만남보다 이별할 만남들이 점점 더 많아가져가는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최고 관리자도 내 깨발랄함이 사라질 때, 그러셨다.  "정소연 선생, 이제는 고민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질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뭔 말인지 몰랐다. 고민은 늘 있었고, 나는 늘 잘 지내왔는데 왜 그런 말들을 하셨는지. 근데 이제는 그 말이 뭔지 알아버렸고, 세상은 따듯하고 안전한 곳이 아니라 개 썩 척은 나쁜놈들 더러운 년들도 또한 천지였던 것을 알아버려서, 차마 그 분 앞에서 울진 못하고, 울었나?.. 기억이 잘 안난다. 아무튼 그랬다. 



근데 또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대가리 꽃밭은 또 웃고 먹고 자기 바쁘다. 그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내가 많이 썼던 단어. 



애써 왔던 장소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나는 희노애락이라고 적었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즐거움도 모두 다 그곳에서 느꼈기에. 나 혼자만 느낀게 아니라 함께 느껴서 그렇게 적어서 냈다. 나만 그렇게 느꼈다면 죄송쓰..)



(* 아무튼 우리는 죽음앞에 한 없이 나약해진다. 이별앞에 태연한 사람은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거나 외면하거나 억압하거나 셋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원수가 죽더래도 속으로 꼴 좋다. 할 수 있지만 죽음은 사망이라는 건 인생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다 준다.)




p. 67


할머니의 슬픈 웃음과 함게 마지막 생신상을 같이 먹었던 장면과 둘이 나눈 이야기가 파노라마 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할머니는 외롭고 힘들다고 나한테 이야기한 거였네'



(* 외로운 신호 죽고싶은 사람은 굳이 알리지 않는다. 왜냐면 내 죽음을 말릴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 사람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은 자살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살이 내 인생에 제일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서 근무시 만났던 도박, 주식 자살시도자 아버지의 자살시도 중 사실혼 관계 여성의 신고로 자살을 실패하셨고, 그로 인한 분노가 엄청 컸다. 



그는, 눈을 감은채 나한테 체념한 듯 읊조리면서 얘기를 했다.



선생님 어제 힘드신일이 있으셔서 찾아왔습니다. 지금 모든걸 말씀하시기 어렵겠지만 말씀하실 수 있는 만큼만 해주시면 됩니다. 몇 가지 여쭐게요. 힘드시면 대답안해주셔도 괜찮고,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첫 질문은 



"지금은 어떠실까요?"



대답은



"눈만 감고 침묵이다."



두 번째 질문은



"무엇이 가장 힘드셨을까요? 쉽지 않은 선택이셨을 텐데요."



대답은



"눈만 감고 침묵이다."



세 번째 질문은



"아... 뭐라 질문하지? " (속마음)



세 번째 대답은



"죽여버리고 싶어. - 읊조리셨다."



네 번째 질문은



"예? 제가 잘 못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다섯 번째 질문은



"그 여자 데리고와, 죽여버리게."



.

.

.

.

.

.

.

.

.

.

.....


많은 대화가 오고갔지만. 면담을 진행했지만.

나는 내 개인감정 컨트로를 하지 못했다.



그는 정말로 죽음을 택하기 위해 주변 정리를 했다.

그는 정말로 죽고 싶어서 10년간 연락하지 않았던 아들에게 연락했다.



내가 세상을 떠날 것 같으니 내 장례를 치뤄줄 수 있는지.



그 아들은 부리나케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뛰어왔다.

비슷한 내 또래 나이를 물어보니 나보다 어린 동생



남동생같은 친구가 뛰어왔다.



지금 아버지 상태가 이렇고, 

그간 어떻게 지내왔던 건지 상황좀 들을 수 있냐고했다.



중요한건 



자살고위험군이라 퇴원해도 다시 재시도할 우려가 매우 높으니

현재 병원은 입원 병동은 없고

주변 병원으로 가야한다.


.

.



나는 4회기 무료 상담이 가능하다.



(* 4회기 무료 상담이 이 아들한텐 중요했을까...?)


(* 나라면? 동의를 할까? 자신이 없었다.)


(* 나는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정신과 의사도 퇴사한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게 뭘까? 이 자살고위험군 앞에서 내가 느끼는 무력감은 매우 컸다.)


(* 잘 지도해 줄 슈퍼바이저가 사라졌다. 위로 해줄 선배도 하나 없다.)


(* 응급의료 센터장이고 과장이고 도망가기 바빴다. 사유는 알수 없다.)


(* 친구들도 자기 먹고 사느라 바쁘기 때문에 그리고 이쪽 전공분야가 아닌 이상 미안하지만 썩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별 시덥잖은 얘기 시시덕덕하는 얘기 대한민국 자살자는 쏟아지는데 굳이 무거운 얘기라 듣고 싶지 않아한다. 현실은 이건데 듣지도 보지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리 숙련된 4년차라 해도 어려웠다. 매년이 어렵다. 쉽다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거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연애를 해도 매일 새롭게 만나는 연애대상자들은 고유한 또다른 사람이기에 첫 연애때처럼 어려운게 팩트인데. 내가 아무리 자살시도자를 500명 만나도 그 한 명 한 명은 고유해서 케이스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려울 수 밖에 없는데 그냥 가볍게 넘기라고 한다.



그래서 퇴근 후 개 무시를 한다. 사람이 뒤지던지 말던지 아파트 값이 치솟던지 말던지. 비트코인이 떡락해서 그러던지 말던지. 도박을 해서 갚질 못해서 뒤지던지 말던지. 술중독에 빠져서, 마약에 빠져서 뒤지던지 말던지 그냥 알아서들 사세요. 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할까?



그 중간지점. 그 사기치는. 그 자살자를 양성하는 사람들은 누가 처벌을 하고 누가 관리를 아무도 안해주냐 말이다. 아무리 출산율을 높여봐라 사망자가 많으면 무용지물이다. 이 빡대갈들은 돈만 나오면 배때지가 허리둘레 사이즈가 어떤지도 모르고 처먹기 바쁘다. 돼지새끼들. 살 좀 빼라.)



내가 이렇게 바뀌는 지점들에 상황과 맥락.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 해결책을 만드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내 가해자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닫는다. 닫았다. 죽고싶을 때마다, 살고싶을때마다 나를 찾던 사람들에게 나는 말한다. 이제 그 얘기를 들어주던 사람은 뒤졌다고.



그러니 나를 찾지 말라고. 각자의 삶은 각자가 책임지자고 말이다.



꽤나 거칠어졌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도 있고, 이젠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발바닥에서 굳이 올리고 싶지않다.



아마 내가 지랄를 해주니 눈치를 살살 살피고 조금 변화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지만 사람은 계속 짖어주지 않으면 다시 늘어지고 게을러지는게 태반이라



내가 잠잠해지면 또 언제그랬냐는 듯 살아간다. 



그걸 모르지 않는다. 우리나라 냄비근성이 어디 가겠냐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거칠게 표현도 할 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한테까지는 그럴리 없겠지만.



정신들 좀 차려라.

계속 해서 짖어줘야 중간이라도 간다.




(* 해당사항 없는 사람들은 그냥 재밌게 읽어주시면 됩니다.)

(* 찔리는 사람들은 똑바로들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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