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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star Aug 10. 2024

0.3. 공공기관 통폐합, 정치와 정책의 촌극


 지금부터 공공기관 통폐합이라는 거대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봅니다. 매일 아침 회사 메일로 받아보는 보도자료가 소식이 나옵니다. OOO 산하기관 방만 경영 척결을 위한 통폐합 작업 가시화! 공무원 조직의 홍보 파트에서 내보낸 초안이 이렇게 공격적이진 않았겠지만정무적 공무원들과 기자들이 기사를 마사지를 했을 겁니다. 오래 겪었지만 공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눈치를 많이 봐서 특히 자기들이 다칠 만한 일은 결코 하거든요. 대신 정치 쪽에 있는 사람들이나, 기자 처럼 책임을 적게 지느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편한 구석이 있습니다. 물론 만만하게 뭐라고 공무원들은 자기네들 한테 튀는 어떻게든 피하지만 공공기관을 대신 조져서 책임을 곧잘 전가하거든요. 그러니 공공기관은 방만과 비난의 표상이 됩니다. 여러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공공기관은 청와대-중앙부처-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로 내려오는 공무원의 위계에서 가장 밑단에, 우리 끼리는 말단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요. 그들이 예산을 주거든요. 물론 예산은 기획재정부에서 주고 국회가 의결합니다. 광역은 역시 실무부서가 편성하고 예산 과에서 정리해서 의회 의결로 결정되죠. 사실 말단 입장에선 그까짓 예산 없으면 일 안하고 좋죠. 하지만 일이 없으면 위에선 그놈의 조직 위상이 흔들리고 감원이나 조직 해체 같은 공격적인 메시지를 견디질 못해요.  


 보도자료 이후 이어진 설명회에 다녀온 간부진들은 흥분해 씩씩 거렸습니다. 이게 말이되느냐. 고작 몇 억짜리 용역 보고를 놓고 기관을 붙이네 자르네 이러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 기관이 제일 큰데 이상한 기관 조그마한 회의실에서 발표했다! 용역사가 비서실이랑 관계가 있다. 돈 먹은거 아니냐! 별별 얘기가 다 나왔습니다. 후에 듣기론 내가 모셨던 그 본부장님이 회의장에서 평소에 후배들 조지던 그 기세로 난리를 피우셨답니다. 거기다 민선 6기는 정무기능이 엉망이었어요. 결과를 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보통 이런걸 대신하는 용역사들은 공무원들의 입김에 눈치대로 일을 합니다. 나처럼 자기 중심을 갖고 고집스럽게 일하다가 튕겨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관료제로 작동하는 공조직은 대부분 윗분 눈치를 알아서 보면서 일을 해요. 실장-국장-과장-팀장으로 주르륵 내려오는 관리라인 들은 저 꼭대기 계신 분의 눈치를 봅니다. 이들은 이렇게 해서 문제 없이 일을 잘 처리해서 윗분의 정치적 야심을 해소해주고 자기들은 승진 열차를 타야 하거든요. 뒤에 얘기하겠지만 그놈의 승진이 공조직을 엉망으로 만드는 원천이자 그나마도 공조직을 작동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원천 입니다. 담당자들은 윗분이 이걸 좋아할 거다 싶은 걸 골라 용역사를 조지죠. 용역사가 만들어내는 보고서는 이런 라인들의 괴상한 눈치보기의 종합물입니다. 


 관리자들의 감정은 각 급의 기관에서 시끌벅적한 논평들 형태로 이어집니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 부터 시작해서 높으신 분들의 논평 까지 온갖 로비들이 이어집니다. 직접 의회를 통하기도 하고 정무직인 비서실을 통하기도 하죠. 기관들이 나서 언론에 광고를 내거나 노조가 시위를 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건 일종에 거래예요. 이런 프로젝트는 언제나 목표를 갖고 있거든요. 그 목표를 빼고 나면 나머지는 전부 협상의 대상입니다. 결과는 목표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시끄러운 판이 벌어지면 당초 절반으로 줄이려던 기관수는 기존보다 절반으로, 그리고 좀 이따가는 더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이야기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니 민선 6기의 지사가 들어온 이후 도와 의회를 통해 공공기관 방만 경영을 바로 잡기 위한 기관 통폐합 작업을 선언한 바 있었는데 1년 넘게 조용하다 갑자기 이슈가 된거 였습니다. 우리는 이 바닥 사정을 잘 알아요, 이 바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제는 잘 압니다. 아무리 시끄럽게 난리 염병을 피워도 특정 기관들은 계속해서 통폐합 대상으로 남고 조금만 연기를 피워도 어떤 기관은 대상에서 배제됩니다. 일단 찔러보면 저의를 알게 됩니다. 아. 나는 아니구나. 그렇게 한두군데 기관들의 이름들이 명단에서 계속 지워집니다. 아, 가만 있어도 남습니다. 정치인들은 일을 크게 벌리고 싶은데 저항하지 않는 자들은 언제나 먹이감이 되거든요. 정치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놈들은 밟혀도 될 놈들이구나. 


 이럴때 나서야 하는게 보통 노조인데요, 우리 노조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첫째, 기관을 떠안는 모양새 였고 둘째 당시 대표가 의사결정권자인 지사로 부터 연임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머릴 콱 숙인 상태였습니다. 세번째는 노조 지도부가 이 사안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다를 줄 몰랐습니다. 나도 저항 했습니다. 2년차 철모르는 사원인 주제에 규약을 뜯어보면서 이 상황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지도부 탄핵을 위한 총회 의결을 요구한겁니다. 나는 규약을 살펴보고 탄핵문을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조합원 1/3 이상의 동의를 구하면 총회를 개의할 수 있고 탄핵은 2/3 이상 조합원의 찬성이면 된다.정치적 입장, 전후 사정 같은 건 난 몰랐습니다. 어쨌든 크나큰 변화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지도부를 향해 무엇인가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게 내가 생각한 전부 였습니다. 내 행동은 본사로 까지 소문이 번져 나갔고 곧 이어 긴급 총회가 개최된다는 이야기가 전해 졌습니다. 


 총회는 아무런 내용이 없었습니다. 며칠 후 열린 총회에서 나는 위원장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통폐합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뭘 근거로 안 된다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안 된다. 그간 경험상 그렇다. 당신 경험이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 근거를 갖고 와라. 내 감이 그렇다. 당신 감을 못 믿겠다. 내가 일개 조합원에게 설명할 의무가 없다.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나는 다시 한번 지도부의 몰상식에 놀랐습니다. "일개 조합원"이라니. 조합은 조합원들의 총합입니다. 조합원 부분집합의 합이 전체 조합이고 그 조합의 결정이 지도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조합의 근본적인 단위이자 총체가 바로 조합원 입니다. 나는 다시 한번 선배들의 질타에 의해 끌려 나왔습니다. 이후로도 노동조합은 어떤 활동에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기관은 처음 부터 통폐합 대상이었습니다. 내 속해있던 기관은 기업지원이라고 하는 사실상 거의 모든 경제 파트의 업무를 다루는 기관이었고 역사가 오래된데다 무엇보다 권력 상층부의 말을 참 잘 듣는 기관이었습니다.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폐합의 대상이 된 기관은 윗분들 눈에 거슬렸던 기관입니다. 사고를 일으켰고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자꾸만 보도자료에 나오고 언급됐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정입니다. 국감에서 거론되고 재판이 어쩌구 하니 높은 분의 정치적 방향에 거슬렸겠죠. 정치인들이 제일 잘 하는 일이 지워버리는 겁니다. 이름이 사라지면 검색을 할 수 없으니까요. 검색이 끊기면 과거도 끊깁니다. 대상 기관이 온갖 로비에 보도자료를 쏟아냈어도 변하는 건 없었습니다. 우리가 뉴스서 보는 '방만경영'이라는 말은 그저 명분 이었습니다. 어차피 공공기관은 외부에서 보기에 미움의 대상일 뿐입니다. 일도 하지 않는 것들이 돈은 많이 받아간다. 공무원들에게 더 밉죠. 자기들이 위인데 이것들이 공무원인 척을 하네? 거기다 돈도 자기들 보다 많이 받아? 그러니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게 그네들의 생리였습니다. 


 3월인가 4월 설명회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 됐습니다. 두어번의 설명회가 더 있었고 몇몇 기관들은 짧은 저항으로 명단에서 지워졌고 다른 기관들은 끝까지 저항 했지만 명단에 남았습니다. 그들이 처음 부터 목표 였을 겁니다. 그렇게 당초보다 크게 줄어든 규모의 통폐합 규모가 확정 됐습니다. 당시 기관 통폐합의 실무를 맡은 사람들은 상급기관에서 정한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분주했습니다.  12월 31일까지 통합 작업을 마치고 1월 1일자로 출범해야한다는 목표. 사람이 오고가는 일인데. 나는 이 곳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의 공직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너무도 잘 알게 됐습니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정책이 결정되고 데드라인과 타임테이블 또 거기 맞춰 진행됩니다. 각별히 공무원들 스스로의 이해관계와 무관할때 그래서 공공기관을 움직이는 일 따위에 대해서는 기계적으로 무시무시한 역량을 발휘합니다. 통폐합 과정에서 다뤄야 할 게 한두개가 아니었습니다. 직급체계, 호칭, 전산 시스템, 회계 단위, 사업 분류, 이사회 자료 작성 방법. 이런 것들이 눈에 띄는 것들이라면 문화적인 문제는 더 컸습니다. 물론 저들에게 고려대상이 아니었죠. 그들에겐 윗분의 스케쥴이 중요합니다. 내년은 선거가 있습니다. 민선 7기 재선을 위해 기관 통폐합은 지사의 매니페스토 한 줄입니다. 윗분의 스케쥴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과 인생이 휘청거립니다. 관료사회에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이 거대한 관료제 안에 퍼즐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라면 하는 퍼즐이어야 했고 하라는 걸 하는 퍼즐들이어야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두 기관 사람들 간의 정서적 융합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결 구도가 이어지게 됩니다. 이미 통합을 두차례 겪은 상대 기관은 통합 절차를 통해 무엇을 얻을지를 생각했고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내 출신 기관은 정해진 과업을 해결 하는데에만 골몰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일터가 더는 내가 선택한 일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됩니다. 정치인들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물론 경영진 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그런 감각에는 둔감해집니다. 윗분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니까요. 거기 노조 조차 없었습니다. 개인의 형사법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한 위원장이 있었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이해도 판단도 못하는 지도부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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