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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알약 Oct 22. 2024

김유신의 말은 왜 기생집을 찾아갔는가 (1/3)

뇌의 정보처리 방식이 두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중처리이론

1. 신라의 장군이었던 김유신이 화랑이었던 시절에는 음주와 여색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다 합니다. 천관녀라는 기생의 술집을 제집 드나들듯 하다가 어머니로부터 질책을 받고 출입을 끊었다고 하죠. 그러던 어느 날 김유신이 술에 취해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잠이 들었고, 그 사이에 말이 천관녀의 술집으로 가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 김유신이 말의 목을 쳤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이 일화는 뇌의 정보처리방식을 잘 설명해주는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2. 인지과학과 심리학에서는 우리의 정보처리 과정이 하나가 아니라고 합니다. 정보처리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각각 시스템 1(system 1), 시스템 2(system 2)라 부릅니다. 두 가지의 유형을 가르는 가장 선명한 구분선은 ‘의식의 개입 여부’입니다. 의식이 개입되지 않는 정보처리 방식을 시스템 1이라 하고, 의식이 개입되는 정보처리 방식을 시스템 2라고 합니다.1)


3. 시스템 1은 의식의 개입 없이도 무의식에서 자동적으로 구동됩니다. 또한 주의를 집중하거나 논리를 동원하지 않으므로 정보의 처리속도가 빠릅니다. 마치 술에 취한 김유신을 천관녀의 집 앞으로 데려다 놓은 김유신의 말과 유사합니다. 김유신이 고삐를 쥐거나 박차를 가하지 않았는 데도 스스로 경로를 설정하고 목적지에 도달하니까요.2)


4. 반면 시스템 2는 구동에 의식의 개입이 필요하고, 주의를 집중해서 논리를 조작해야 하므로 정보의 처리속도가 느립니다. 술에 취하지 않은 평소의 김유신처럼 말의 고삐를 쥐고 경로를 설정해서 실제 지형을 확인해 가며 말을 몰아가는 상태입니다. 이 과정에 주의와 의식이 계속해서 투입되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천관녀의 집 앞에 도착한 것을 발견했을 때처럼 시스템 1이 해결하지 못하는 돌발상황을 해결합니다.


5. 우리의 뇌에는 시스템 2인 김유신과 시스템 1인 말이 같이 들어있는 셈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김유신이 직접 운전하는 상태가 일반적이고 말이 알아서 가는 경우가 드문 경우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김유신 장군이 취해있는 상태가 우리의 보통 상태입니다. 스스로 생각의 고삐를 쥐고 있다는 것은 착각이고 대부분의 경우에 타고 있는 말이 생각의 경로와 도착지를 결정합니다. 즉 우리의 사고는 기본적으로 시스템 1에게 할당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심리학과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이중처리이론(Dual process Theory)’의 핵심입니다.


6.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쌍둥이의 구분 사례에서 그들의 엄마가 두 사람을 식별하는 방식이 시스템 1에 의한 것입니다. 즉각적이고, 고속으로 행해지며 생각의 노력이 거의 불필요한 인식과정을 거치니까요. 둘을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질문에 엄마가 ‘그냥 알겠다’고 대답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본인도 주의를 기울여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스템 1의 작동결과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7. 반면 쌍둥이에게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친구들이 두 사람을 구별하는 과정에서 작동한 사고처리 방식은 시스템 2입니다. 두 사람이 헷갈린다는 상황은 시스템 1의 작동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2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따라서 주의를 집중해서 두 사람의 차이점을 발견하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해지며 거기에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8. 이 두 겹의 사고과정은 마치 두 개의 그물을 가지고 있는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어부가 암초 사이의 물길에서 늘상 지나다니는 물고기를 포획한다고 합시다. 항상 잡던 위치라서 물속에는 이미 통발이 놓여있습니다. 게다가 허리춤에는 여분으로 투망을 차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물고기가 길목을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9. 항상 잡히던 물고기라면 통발의 크기와 그물코의 간격이 물고기를 포획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행동도 할 필요 없이 그저 물고기가 통발에 걸리니까요. 그런데 평소에 지나다니던 물고기보다 작은 크기의 어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물코를 통과해 통발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을 테니까요. 시스템 1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이지만 이런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10. 통발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어부는 허리춤의 투망을 꺼내 통발을 통과한 물고기 떼에 던지거나 통발을 들어 올려 그물코의 간격을 촘촘하게 수선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주의를 집중해 문제를 발견하고 논리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시간이 더 걸리죠. 바로 이것이 시스템 2가 의식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입니다.


11. 설치해 둔 통발 덕분에 어부는 편하게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만 거기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다른 길목으로 간다던가, 통발이 망가진다던가, 통발의 그물코보다 작은 물고기가 지나간다던가 하는 식이죠. 시스템 1의 작동 결과는 이런 오류의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사고과정의 오류를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필요해집니다.3)


문제는 어떻게 오류를 줄일 것인가? 하는 것이죠.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오류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

1)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생각에 관한 생각 2018, 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이중처리이론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2)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바른 마음 2014, The Righteous Mind>에서 시스템 1을 코끼리로, 시스템 2를 코끼리를 타고 있는 기수로 비유합니다.

3) 학습방법론으로 본 글을 읽고 있다면 무엇보다 이 지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새로운 정보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경우에 빠르고 쉽게 결론을 내렸다면 스스로 알지 못하는 오류에 빠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빠르고 쉬웠다는 것은 시스템 1이 작동했다는 것이니까요.

권장되는 방법은 '내 결론은 항상 잠정적일 뿐이며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우리의 사고과정이 무결하지 않은 이상 오류를 포함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일단 판단은 내리지만 새로운 정보가 제공된다면 언제든 판단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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