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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알약 Oct 27. 2024

김유신의 말은 왜 기생집을 찾아갔는가 (2/3)

이중처리이론에 스키마 이론을 겹쳐보기

1. 앞 선 글에서 이중처리이론을 물고기 잡는 어부에 비유했었습니다. 어부는 물속에 잠겨있는 통발과 허리춤에 차고 있는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았었죠. 이때 물고기를 정보, 수면을 의식, 어부를 주의집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중처리이론에서는 통발을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부릅니다. 통발이 얼기설기 꿰매어진 그물망인 것처럼 휴리스틱도 정보획득 도구로써의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죠.


2. 하지만 이중처리이론은 투망에 해당하는 생각의 도구에는 따로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의식적으로 주의를 집중해서 정보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는 분석적 사고, 논리적 추론, 규칙 기반 처리 등의 방법이 활용된다고 하죠. 물론 이 영역에서의 사고과정은 다양하고 복잡하여 하나의 이름으로 묶기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1)


3. 이렇게 이중처리이론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서로 상이한 영역에서 작동하는 완전히 별개의 사고과정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두 사고과정이 각각의 영역에서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생각의 도구를 사용한다면, 무의식에서 만들어지는 오류를 제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무의식의 영역을 직접 조작할 수는 없으니까요. 따라서 시스템 2에서 사용되는 생각의 도구를 규명하고 그것이 휴리스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스키마를 처음 언급한 이후로 스키마 이론은 꾸준히 발전해 왔습니다. 칸트에게 진리란 인식과 대상이 합치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식의 과정에서 대상을 직관하여 얻어진 ‘표상’과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개념’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표상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반면 개념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표상이 개념에 포섭되기 위해서는 범주화가 필요하며 이 매개체로 스키마(도식)가 작용합니다.


5. 스키마가 선험적이며 불변적이라는 칸트의 주장과 달리 바틀렛은 스키마가 후험적이며 가변적임을 보입니다. 바틀렛에게 스키마는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인지적 틀입니다. 새로운 정보는 기존의 스키마에 비추어 이해되고 기억 속에 통합되는데, 이 과정에서 원래의 정보는 변형되거나 단순화됨을 실험으로 입증합니다.2) 기존의 스키마는 문화나 개인의 경험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새로운 경험은 스키마에 기반하여 능동적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이죠.


6. 피아제는 바틀렛의 가변적이고 후험적인 스키마의 개념을 이어받아 그것이 발달하는 과정을 아동의 인지발달 단계에 대입하여 설명합니다.3) 발달과정에서 스키마는 동화와 조절을 거치는데, 새로운 정보를 기존의 스키마에 통합시키는 과정이 동화(Assimilation)이고 새로운 정보에 따라 스키마를 변형하는 과정을 조절(Accommodation)이라 부릅니다.4) 피아제의 스키마는 외부 세계를 이해하고 반응하는 데 사용되는 인지적 틀로써 조직화된 지식 패턴인 셈입니다.


7. 루멜하트와 노먼은 스키마가 주변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능동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피아제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그 시기가 아동기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성인도 기존 스키마에 정보를 추가하는 누적(Accretion), 기존 스키마를 수정하는 조정(Tuning) 그리고 새로운 스키마를 생성하는 재구조화(Restructuring)를 통해 특정 개념이나 상황에 대한 일반화된 지식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5)


8. 특히 피아제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그들의 주장은 스키마가 계층적 구조와 상호연결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상위 수준의 스키마는 하위 수준의 스키마를 포함하고 조정하는 방식으로 조직되며, 스키마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스키마가 활성화되면 관련된 다른 스키마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하여 스키마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인지 구조로 바라보았습니다.6)


9. 칸트나 바틀렛의 경우에는 스키마에 직접 조절을 가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자동적이고 직관적인 시스템 1의 영역에서 작동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활용하는 스키마는 빠르고 자동적인 정보처리를 돕는 휴리스틱의 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피아제나 루멜하트와 노먼의 경우에는 스키마에 조절을 가해 변형시키는 경우가 있고, 이러한 과정에는 의식적인 사고가 필요하므로 시스템 2의 영역에서 스키마가 작동하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10. 이 관계는 어부가 물속의 통발(휴리스틱)을 꺼내어 투망(스키마)의 모양에 맞게(재구조화) 지속적으로 수리(조절)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이해에 불과합니다. 어부는 손을 뻗어 물 속의 투망을 꺼낼 수는 없습니다. 집중해서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무의식의 영역에 닿을 수는 없으니까요. 만약 주의가 집중된다면 그곳은 이미 의식의 영역입니다.


11. 즉 스키마에 변형을 가하는 이론은 모두 시스템 2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인지의 틀에 대한 설명일 뿐 시스템 1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휴리스틱과의 연결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스키마 이론만으로는 휴리스틱이 발생시키는 오류를 줄이는 방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서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연결성의 증거가 필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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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스템 2에서 작동하는 생각의 도구가 명시적인 규칙과 절차를 따라 정보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알고리즘적 처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 영국의 심리학자인 바틀렛(Frederic Bartlett)은 '반복 재생법(method of repeated reproduction)'이라는 실험에서 피험자들에게 '유령들의 전쟁(The War of the Ghosts)'이라는 낯선 문화권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이를 다시 기억해 내도록 요청합니다. 피험자들은 이야기를 완벽하게 재생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문화적 배경에 맞게 이야기를 변형시켜 회상해 냅니다.

3) 발달심리학자인 피아제(Jean Piaget)가 제시한 인지발달 4단계는 감각운동기(Sensorimotor stage), 전조작기(Preoperational stage), 구체적 조작기(Concrete operational stage), 형식적 조작기(Formal operational stage)로 나뉩니다.

4) 예를 들어, 아기가 '젖병'과 ‘컵’의 공통점을 인식하면서 '마실 것을 담는 그릇'이라는 보다 일반화된 스키마를 발달시키는 것이 동화, ‘젖병’과 ‘장난감’의 차이점을 인식하면서 스키마를 분화시키는 것이 조절입니다.

5) 루멜하트(David Rumelhart)와 노먼(Donald Norman)은 1970년대에 인지심리학과 인공지능 분야에서 스키마 이론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학자들입니다.

6) 이들의 인지 구조와 과정에 대한 모델은 인간의 인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인간의 지능을 모사할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스키마 이론은 지식 표현과 추론 분야에서도 활발히 연구되어 온톨로지(Ontology)나 시맨틱 네트워크(Semantic Network) 등의 개념은 스키마의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기계가 세상에 대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경망 이론으로 불리는 '연결주의(Connectionism)'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인지가 신경망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가정하는데, 여기서 지식은 신경망의 연결 강도, 스키마는 연결강도의 분포(활성화 패턴)로 표상되며 학습과 기억의 과정을 신경망의 ‘동역학’으로 모델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이론의 주요 주창자 중 한 명이 2024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이며 대규모언어모델(LLM)의 기초를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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