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돌뱅이 Jul 29. 2024

반복되는 입사와 퇴사 그리고 내 업보들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요즘 말로 프로이직러라고 불릴 만큼 3년간 많은 회사를 옮겨 다녔다.


그동안의 출근지를 되짚어보면 (서) 부산 - 경기(남부) - 경남(마산) - 서울이었다. 취업준비를 하기에 앞서서 나는 ”무언가를 해야겠다 “라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큰 틀은 잡혀있었지만 세부적으로 봤을 때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러한 디테일한 계획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는 회사, 어느 부서, 어떤 직무로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가능한 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접목시킬 수 있는 그런 회사를 알아보면 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그런 회사들을 찾아보았다.


왜 나를 안 뽑아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 취업과 관련한 컨설팅을 해준다. 내가 다니던 학과도 해당직무와 관련한 컨설팅을 연결해 줘서 취업준비과정, 면접 등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배웠지만 전공이 의료계통이었던 탓에 병원이 아닌 일반적인 회사에 대한 정보는 전무했다.


단순히 국비지원으로 배운 것, 대학교 졸업장 만으로 사회에 부딪혔더니 당연하게도 이력서를 넣는 족족 다 떨어졌다. 심지어 이력서를 읽지도 않는 회사도 있었다. 그래서 사무보조 같은 보조적인 업무부터 시작해서 역량을 키운 후 다른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직무를 변경해서 입사지원을 했다. 방법을 바꾼 덕분인지 처음과는 달리 어떻게 면접까지는 갔지만 면접관들은 하나같이  “나이가 너무 어리다”, “일 경험이 없다”, “연륜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만 했다. 면접 결과는 예상했다시피 줄줄이 불합격이었다.


나를 뽑아주는 곳에서 일하자!

모아둔 돈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데 신입 주제에 너무 크게 재고 따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단순히 특정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한다는 공고에 입사지원을 했고 지원한 다음날 면접을 봐서 당일에 바로 채용되었는데 거기가 바로 첫 회사다.


사무실 건물과 현장이 바로 옆에 붙어 있던 그런 회사


어느 회사를 가든 자기 회사에 대해서 알려주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인데 첫 회사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비교적 많은 편에 속 했다. 그 회사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이전에 들어온 사람들 중 하루, 1주일, 한 달 일하고 간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덧붙여서 여러 일들을 이야기도 해줬었다. 설계 경력 몇십 년 되는 사람도 오래 못 버티고 나갔던 일, 구내식당이 공사 중이어서 외부 식당을 이용했었는데 자주 가던 식당의 이모님이 같이 오는 사람이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또 그만뒀어요?”라는 말이 나왔던 일 등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실제로 다니면서도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고?” 싶은 부분들이 정말 많았다. 현장이 있는 회사이다 보니 과격한 언행은 물론이고 장난이랍시고 하는 언행들에 성희롱과 성추행이 섞여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런 사실을 늦게 깨달은 걸은 아니다. 입사한 지 1달도 채 되지 않은 시기에 회사의 분위기나 상황을 알았지만 당장의 생활비가 없었고 게다가 내가 가장으로 집에 100만 원 남짓을 주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당장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회사에서 “권고사직”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한번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다녀 보기로 결심했었다. 그렇지만 과도한 업무량과 시도 때도 없이 연락 오는 거래처의 전화, 야근의 일상화 등이 기존에 내가 가진 자질구레한 정신질환들을  더욱 악화시켰다.





회사라는 곳이 처음이라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으나 모르는 것들이 많았던 탓에 업무의 기본은 물론이고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잦은 실수는 잦은 습관이 되었고 여느 신입과 마찬가지로 회사가 나인줄 알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자존감과 자존심 모두가 무너지면서 집에 가면서 펑펑 울었었다. 위기는 3,6,9 단위로 찾아온다고들 하는데 나는 3시간 , 6시간 , 9시간 단위로 찾아왔었다. 입사 초기에는 정신과 약을 먹지 않고도 그럭저럭 생활이 가능했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약을 먹어도 큰 진전이 없고 너무 힘들어서 직속상사에게 권고사직을 부탁드렸다. 상사는 나를 권고사직 처리하면 기존에 “내채공”을 들고 있는 직원 중 하나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곧 1년 차가 되기 때문에 딱 1년을 채우는 시점으로 퇴사하겠다고 퇴사 의사를 밝혔다.


보통의 회사들은 직원이 퇴사할 시기가 되면 일을 덜 시킨다고 들었는데 퇴사를 1주일 남긴 시점부터 며칠간은 야근에 시달렸었다. 원래 근무시간은 8시 반 출근 7시 퇴근인데 많은 업무량에 시달려서 10시에 퇴근하는 일이 빈번했다. 안 그래도 정신질환에 시달리는데 늦게 퇴근까지 하니 바닥만큼 있던 정신력이 아예 고갈되어 버렸다. 일을 잘하면 모르겠는데 일도 못하는데 왜 자꾸 일을 주는지, 왜 내 일을 가져가주지 않는 건지 등  여러모로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들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회사의 잡플래닛 평점



퇴사 후 알게 된 첫 회사의 잡플래닛 평점이다. 보통 가족계회사, 10인미만 좋소회사도 1점대는 잘 없는데 1.2라니... 뭐라고 덧붙여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평점으로 보여줘도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집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족 내에서는 내 퇴사소식이 달갑지 않았다. 당장의 생활비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생활에 고정지출 비용이 있기 때문에... 퇴사한 지 1주일이 안 됐을 무렵부터 재촉을 해서 국가에서 하는 취업 알선 프로그램을 신청했었다.


선박관련 회사


그 프로그램에 등록된 연락처를 보고 서부산에서 하는 일자리 알선 사업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는데 그때 면접 보고 일하게 된 곳이 두 번째 회사이다. 돈 욕심이 크게 없던 사람이어서 면접을 볼 때 전에 다니던 회사와 똑같이 주시면 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계약서를 쓸 때 확인해 보니 내용이 면접 때 이야기 한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면접때와는  말이 다르지 않냐고 이야기를 했지만 연봉 2400에, 연말에 주는 상여금까지 하면 그전에 다니던 회사의 임금과 똑같다며 이야기할 뿐이었다. 지금이었다면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계약서를 쓰지 않았겠지만 뭘 잘 몰랐었기 때문에 나를 뽑아주는 게 어디인가 싶어서 다니기로 했다.


두 번째 회사를 입사할 무렵에는 첫 회사에서 악화된 정신병과 퇴사 후유증으로 인해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도 고립되어서 치료를 하는 것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약물 치료를 한다면 더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다.


취업 알선 프로그램을 통해서 취업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회사에 180만 원 남짓을 지원해 줬음에도 불고하고 세금을 떼고 나에게 떨어지는 돈도 그와 마찬가지로 180 남짓이었다. 당시에 개인사정으로 인해 자취를 했었는데 그 돈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투잡을 뛸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금전적인 것뿐만 아니라 거리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는데 자취하는 곳으로부터 회사까지 26km 거리라는 것이었다. 나름 부산은 교통편이 잘 되어 있지만 내가 있던 곳은 교통편이 불편해서 부산에서 부산으로 출퇴근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 거리였기 때문에 출퇴근이 버거워서 퇴사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1년을 채우고 나갈지 아니면 당장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회사의 복지는 점점 줄어갔고 몇몇 사원들이 연이어 퇴사를 했다. 차장, 부장급 상사들은 회사가 망해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도 이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 해주셨고 그 덕분에 망하기 전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도망쳐 나왔다.


왜 진작에 안 나갔어?

당시 내가 있던 팀 사람들은 입사 초반에 진작에 이 회사정말 쓰레기라고 눈치를 줬는데 왜 이제야 나가냐고 그랬었는데... 첫 회사 사람들이 회사욕을 신명 나게 하면서 안 나가듯이 그냥 회사 싫어하는 사람들의 인사치레인 줄 알았었다.



두번째 회사의 잡 플래닛 평점


퇴사할 무렵에는 2점대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글을 쓰며 지금 다시 찾아보니 1점대로 떨어져 있었다. 처음으로 회사에서 소소하게 간식이 있었고, 회사에서 개인 이메일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좋았었지만 공고나 면접 시에 이야기하는 것들과 다른 점이 너무 많은 게 취업 사기가 아니었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생산직 공장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있으니 퇴사를 하고 급하게 찾아서 취업 한 곳이 경기 남부권에 있는 반도체 업체였다. 생산직, 교대근무가 처음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타지 생활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었다. 나름 아웃 소싱 업체로부터 잘 알선받아서 괜찮은 곳에 들어갔는데 1인용 오피스텔(1.5인용공 간) 사외 기숙사에  괜찮은 구내식당 그리고 복지까지 이전 직장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첫 회사를 다닐 적에 시궁창 같은 밥을 두고 “회사밥이 다 그렇다”, “살려고 먹는 거지 좋은 음식을 바라면 안 된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양질의 음식이 나오는 것부터 복지라는 게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정말 중견 회사라면 있을법한 복지들은 다 있었다. 유일한 단점을 꼽자면 연봉이 3600을 넘어서 내채공이 안된다는 것이 있었다.


배정받은 부서는 회사 내에서 다른 부서에 비해 업무강도가 힘들다고 알려진 부서였다. 나는 운동 부족에 쉬는 날이면 누워만 지내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 체력이 좋지 못한 편이었는데 쉽게 체력이 고갈되어서 일이 끝나서 숙소로 돌아가면 공부할 시간도 없이 뻗어서 잠이 들기 일 수였고 처음 한 동안은 몸살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니 코로나에 걸려서 고생을 했었다. 처음엔 다 힘들어서 그렇지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격주에 한 번씩 본가에 내려가서 고깃집 알바를 하기도 했었는데 체력적인 측면에서는 정말 힘들고 괴로웠지만 나름 뜻깊은 순간들이었다. 그러던 중 두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생긴 문제 때문에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일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퇴사를 하게 되었다.


생산직으로 있던 회사의 잡플래닛 평잠이다.


회사를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반도체 경기가 악화되었고, 그 문제 때문에 회사의 복지감소 그리고 일하는 시간의 감소가 이어졌다. 그래서 같은 팀이었던 몇몇 사람을 비롯해서 같이 입사했던 사람들이 이 회사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첫 회사와 유사한 직종이지만 규모가 컸었던 회사


가족들의 건강이 다시 안 좋아져서 경남권으로 일자리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이 마산 진동이었다. 이력서를 보고 연락 준 이사님은 내가 다녔던 첫 회사를 잘 안다고 예전에 그 회사에 일을 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면접을 요청했다. 면접에서도 첫회사를 언급하며, 일 많이 하고 힘들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나도 일을 잘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을 가지고 계셨는데 자존감이 낮은 나였기 때문에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한다는 게 불편하고 어려웠다.


생산직이 아닌 사무직으로는 처음 오게 된 중견회사였기 때문에 수습기간을 잘 버텨낼 수 있는가가 이 시기의 주요 관건이었다.


이 회사에서 하는 일은 첫 회사와는 달리 주로 문서적인 업무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었다. 첫 회사에서 단순 반복 업무만 했을 뿐 문서적인 일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매었고 중고 신입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만큼 허둥지둥 일을 했었다. 그래서 부서장이었던 차장님은 “얼마나 다닐지 모르겠지만 여기만큼 체계적인 곳이 없다. 있는 동안 잘 배워둬”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첫 회사를 다닐 적에는 사무실에 앉은 기계처럼 주어진 일을 처리한다고 바빠서 업무가 정해지고 일이 어떤 식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는지 과정부터 해서 세부적으로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 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었는데 이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한 큰 틀은 무엇이고 세부적으로 보았을 때 어떤 일을 해야 하며 그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왜 그런 식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일이 나와 회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잘 배우게 되었다.




이사님은 현장 경험이 많고 사무실과 현장 상황 모두를 잘 알기 때문에 서로 간의 고충을 잘 알아주는 유일무이한 분이셨다. 서로가 편하고 문제가 없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교육이나, 직원들 컨디션을 많이 신경 써주셨는데 내 경우는 방을 구하는 것 부터 해서 종종 저녁을 사주시기도 하며 밥을 잘 챙겨 먹고 있는지 등 객지에 나와서 산다고 정말 많은 신경을 써주셨었다. 자취방과 회사가 차로는 5분도 안 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기에는 버스 배차 간격이 180분에서 300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차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차와 자취방 두 가지 모두를 감수하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직원과 카풀을 하게 되었다.


남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니는거라 불편한 부분들이 정말 많았는데 저녁에 같이 다니시는 분이 야근을 하시면 그 동네에 사는 다른 분에게 부탁을 해야 했고 그 외에 시내를 나간다고 하더라도  회사에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잘 없으니 시내로 가는 직원분께 부탁을 해야만 했다. 출퇴근조차 나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입사 초부터 나는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지했었다. 일을 체계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신경 써 줄 만큼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나를 챙겨주는 것이 너무나 도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세번째 회사의 잡 플래닛 평점


수습 기간이 끝나자 이사님은 내가 다녔던 첫 회사가 그렇게 엉망이었을 줄 몰랐다며  멀리서 방을 구한 나에게 "기회"를 준다고 연봉을 낮춰서 새 마음 새 뜻으로 함께 하는 것을 권유했었지만 거절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내가 괜한 자존심을 부려서 적은 연봉은 싫다고 회사를 나간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수습기간 종료일을 앞두고 많은 생각들을 했었다.


애초에 첫 회사에서 일을 할 때 그 일이 나와는 맞지 않는 직무여서 퇴사를 했는데 안 맞는 일을 다시 시작하니 하기 싫은 것은 당연했고 그러다 보니 일을 잘 배우는 것도 없었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객지에 와서 회사 내에 유일한 20대였던 탓에 매일 외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힘들게 구한 자취방은 전에 사용하던 사람이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매일 청소를 하고 주말마다 대청소를 해도 집안곳곳에서 똥냄새가 올라왔고 더 이상 못 있겠다고 판단해서 수습 기간 종료일까지 기다린 것이다.


 



잡플래닛에 누군가가 쓰고 간 글


누가 쓰시고 간 건지 짐작이 되는 글인데 정말 잘 요약했다. 여기서 말하는 면접 시 어필해서 연봉 많이 받은 사람이 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사실 면접 때에 어필한 것은 없다. 묻는 말에 대답을 잘했고, 일을 어느 정도 하냐는 말에 중하 정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예 못하지는 않으나 중간은 못 미친다고도 언급을 했었다. 내 급여는 세금 떼고 약 240 정도였다. 이게 적은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회사의 기본적인 임금 테이블이 정말 낮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퇴사한 이후, 알바를 하며 나 자신과의 시간을 많이 가졌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차렸을 무렵부터 면접을 목적으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경기침체기다 보니 이상한 회사들이 정말 많았다.


취업사기(공고 및 면접 시 적힌 내용과 실제 계약서와 상의한 곳), 관상 보는 회사(어떠한 질문 하나 없이 관상만 보고 이 업무 잘하겠다 못하겠다 판단), 자기 자랑하는 면접관(회사자랑도 아니고 온전히 자기 자랑만 함),  부산이 무슨 깡시골 부산리에 있는 줄 아는 회사(자기들 일본 놀러 가듯이 부산사람들 서울로 한 번씩 관광 오냐고 물어봄), 나이가 많다고 후려치는 회사, 반대로 나이가 적다고 아는 게 없을 거라 후려치는 회사, 연봉 2400 준다고 라면서 서울에서 6개월 교육받고 부산 내려와서 일하라는 회사, 연봉 2800 이야기하면서 자기들 보다 많이 주는 곳 없다고 말하는 회사 등 해당회사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면접부터 개성 넘치는 말을 하는 회사들이 많았다.


잡플래닛 평점이 괜찮더라도 공고글이 기본양식인 곳은 이상한 곳이 많다고 그래서 좀 꾸며진 곳에 이력서 넣은 것인데도 어마무시했다. “회사에서는 사람이 안 뽑힌다.” “취준생들은 들어갈 회사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면접에서부터 “우리 회사 쓰레기예요~ ”하는 이상한 회사들 밖에 없는데 누가 거기서 돈을 벌고 싶겠냐 말이다.




네번째 회사, 전형적인 사무실 회사


면접을 본다는 핑계로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좋게이야기 해보자면 면접 보러 타지에 간 것이지만 사실상 국내여행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별생각 없이 면접본 회사에서 합격 연락이 와서 거기로 출근하게 되었다.  이 회사 외에 다른 곳도 붙었지만 안 해본 것 색다른 것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 회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 회사 홈페이지를 비롯해서 관련기사, 회사블로그, 회사 인스타그램 등 많이 뜨는 회사였고 동종업계에서 5순위 안에 드는 유명한 회사였기 때문에 입사 전부터 이 회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못해도 다른 회사의 평균이상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첫 출근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 홈페이지와 메신저를 둘러본 후 마음이 바뀌었다. “대리, 과장” 중간직책의 상실, “다른 곳에서 이직해 온 차장, 부장, 이사 직급”을 보자 여기서 키워낸 인재들이 떠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날 느낀 생각은 “빛 좋은 개살구 같다”는 것이다. 엄청 특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회사 내에 복지가 있었고 젊은 사원들끼리 두루 잘 어울려 지내는 분위기여서 그냥 무던히 잘 견뎌서 열심히 다녀봐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그 다짐은  1주일이 안 되어서 무너졌다.


여러 문제들이 많았지만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사수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사실 이 회사를 다니면서 이 사람이 내 사수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퇴사 전 날까지 내 사수는 당연히 옆자리 선배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늘 업무에 대해서 알려주고 회사 사람들을 알려주며 적응하는 데에 도와준 것은 옆자리 선배였다. 그런데 퇴사 당일 과장님이 한 말로 인해서 차장님이 내 사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사님은 회식 때 차장이 “곤조”가 있다고 내게 이야기했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냥 곤조가 아니라 정말 “이상한 곤조”가 있는 사람이었다.


보통 어느 회사를 가면 쌩 신입이든 중고 신입이든 회사 OT와는 별개로 업무에 관한 OT를 받게 되는데 내 부서에서 나는 그런 것을 전혀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보다 먼저 입사를 한 옆 부서 선배나 옆자리 선배에게 내가 맡은 직무는 어떤 일을 하는지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해서 따로 물어보고 알게 되었다. 나름 규모가 큰 회사에서 왜 이런 것을 알려주지 않았는가 원인을 찾아본다면 사수의 문제였지 않나 싶다.


선배가 연차를 낸 날 이사님은 차장에게 이제 슬슬 나에게 업무에 대한 OT 알려줘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내가 몇 번이나 요청하고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알려주는 것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려주셨는데 그게 퇴사 며칠 전에 알게 된 것이었다.


살아온 연륜이 있으니까 본인 나름 임기응변을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업무적인 부분에서는 옆자리 선배보다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내가 느끼기에는 일반 사원 급인데 이름만 차장단게 아닐까 싶은 언행들이 더러 있었다. 윗사람들에게 보여주기식 일처리, 특정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다른 모습, 회사 규율이나 FM 식 대처법이 아닌 본인이 정한 방식으로 하는 일처리. 그 외 여러 이상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냥 내가 부족하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상사 밑에서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들게 되어서 학벌의 중요성, 능력의 필요성에 대해 많이 인지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수와 이야기를 한 것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한 가지 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적어보자면  내가 “대리나 과장 직급의 사람이 새로 들어오면 업무분담이 잘 되어서 차장님 일도 줄어들고 일하시기 편하실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더니 “여기는 가만히 있을 수 있는 회사예요. 영업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하기만 하고 자기 계발하지 않는 사람을 누가 대리, 과장을 시켜주겠어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퇴사한 사원 일을 옆자리 선배가 맡아서 하는 바람에 업무에 치여서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보기 불편하기도 하고 사수도 자기 일이 아닌 다른 일들을 하며 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한 것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이 회사는 3년 지나면, 대리, 과장 달아주는 회사라고 입사 후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이야기해 줬다. 본인 고과에 따라 승진이 되는 게 맞지만 내가 차장과 이야기하면서 질문의 요지는 멍청하게 회사만 왔다 갔다 다니는 사람 직급 달아줘서 중간직급이 생기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차장과 사원 사이에 중간 직급 인 사람이 없으니 사원이 윗 급의 일을 하고 차장도 자기 업무 외에 일을 더하니 데려와서 해당 직급에게 맞는 일을 줘서 원활한 업무 처리를 좋겠다는 의미에서 한 이야기였는데... (중략) 어떤 대화를 하든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니 의사소통이 너무 어려웠다.


선배 사원이 여름휴가를 떠나면서 메일과 메신저로 자신의 업무를 인수인계 하고 떠났다. 염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나에게도 같은 내용을 전달했었는데 그걸 전달받은 사수는 이해하지 못해사 나에게 물어보고, 8개월도 전에 퇴사한 퇴사자에게 OO회사 나갈 때 좋게 나갔지 않냐고 일적인 질문을 하는 것을 보니 참... (중략)


퇴사의사를 밝히고 뒷자리에 앉은 과장님이 이 회사는 과자 같은 회사라고 이야기했다. 그냥 번지르르 한 포장지 속에 감자칩 보다 질소 함류량이 많은 그런 회사라고 말이다. 잘 찾아보면 작은 규모인데 괜찮은 회사가 있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다.


네번째 회사의 잡플래닛 평점


잡플래닛 평점이 높고 서울 중심에 있으면 좋은 회사라고 생각했었는데... 평점이 높다는 것은 간단한 복지는 물론이고 보여주는 이미지를 얼마나 신경 쓰느냐를 표현하는 수치가 아닐까 싶었다.


언급한 사수 외에 일 잘하고 능력 좋은 직원들이 많았고 본받고 싶은 멋진 사람들도 있었다. 어려운 부분을 꼽자면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분위기가 어려웠다는 거지만 여기서 잘 배운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잘 해내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 사수를 보는 것조차 역겨워서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안목을 넓히려면 여러 가지 경험해봐야 한다.


과거에 어느 회사 면접관이 언급했던 “연륜” , 과거 직장 선배로부터 들은 “다른 회사를 다녀보니 지난 회사가 좋은 직장인줄 알게 되었다”라는 후회 섞인 이야기, 협력업체 직원으로서 일을 배우러 간 날 해당 업체 교육자가 말했던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더라” 등 이러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무엇이든 경험이 필요하다. 좋은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이 더 많다. 여러 문제 들을 마주하고 겪으면서 본인 나름대로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업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우물에서 지내는 것과 연못에서 지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무렇게 살더라도 내가 사는 곳이 우물인지 연못인지를 어렴풋이라도 인지하고 있어야 더 작은 곳이 아니라 더 큰 곳에 가든 그곳에서 안정을 취하며 머무르든 하지 않을까 싶다.




정착하지 못하고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는 나를 보며 주변사람들이 내가 “절박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아쉬운 줄 모른다”라고 이야기했었다. 그 말들을 곱씹어보다가 생산직으로 일했던 곳을 제외하고 다녀본 회사들을 하나씩 재입사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서 그런가 회사를 다닐 때와는 느낌이 정말 달랐다. 현실에서는 오롯이 내 눈으로 내 주관적으로 보는 느낌이었다면 꿈은 좀 더 객관적이었다.


다시 입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면 수천억을 줘도 거기는 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좋지 않은 기억들도 추억으로 미화가 된다고들 하던데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처음 겪는 일들이었기 때문에 회사는 원래 그런 거다고 생각하며 괜찮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여러 회사를 거치고 나서 마주하니 좋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고, 다니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보통의 회사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족하지 않게 적당한 급여 그리고 나쁘지 않은 동료만 있어도 괜찮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스몰톡”이 가능한 동료와 임금이 두 가지였다. 일이야 뭐 적성에 심각하게 안 맞지 않는 이상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실력이 오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정적으로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안정감을 가진채.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고, 재밌으면서 자아도취가 가능하며,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바란다는 것은 아마도 정신병이 아닐까 싶다.  월급쟁이는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 소위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회사들도 일반 회사 와는 다르지만 월급쟁이로서의 고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매체에서도 그렇고  주변에도 찾아보면 회사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잘 버티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듯이 이런 일 저런 일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무던히 잘 견뎌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하고 싶지 않은, 하기 싫은 일들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부수적인 요소가 잘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회사에서 사람을 보고 채용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듯이 내가 회사에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단순히 열정과 의지만으로 매 순간을 견디기에는 어려운 환경들이 많다. 회사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있다 보면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의 언행을 따라 하며 그 사람들과 융화되어 간다. 지옥 같은 곳에서 견디며 살아가면 나 역시도 악마가 될 수밖에 없다. 회사가 수습기간을 두는 것이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입사한 사람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멋진 사회인으로서 살아가기란 너무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