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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Aug 03. 2024

학교에 시달리는 아이들

- 교사가 보는 학교

‘학교에 시달리는 아이들’


프랑스 언론에서 학교, 과외, 학원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아이들에 대하여 보도한 제목입니다. 또 다른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에서도 서울의 한 의료센터에서는 매월 우울증과 스트레스, 과로로 인한 폐해,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1000여 명의 아이들이 치료를 받는다는 보도를 합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학교를 감옥으로, 공장 같은 교육 제도에서 ‘공장형 인간’으로 교육하는 현대의 교육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학교의 아이들이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도 ‘미친(crazy)’, ‘사악한(evil)’이라는 표현까지 들어 우리 교육을 비판합니다. 이들 눈에만 우리 교육이 이렇게 기이한(?) 현상으로 보이는 것일까요?


이렇게 외국에서 우리 교육을 기이하게 보는 이유도 우리 아이들이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할 정도의 학습량에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선진국 아이들은 학교 수업만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 딸아이의 학습량을 보면 우리처럼 엄청난 내용의 양에, 진도 빼기에 바쁜 수업이 아닙니다. 미국 가기 전 영어를 미처 준비하지도 못하고 들어간 학교임에도 충분히 쫓아갈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아이임에도 학교 수업 충실히 참여하고, 집에 돌아와 작은 숙제 하나 해가면 여유 있게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쫓아가지 못하는 우리 같은 수업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아이들이 하는 만큼 조금만 충실하게 임하면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그런 수업이었습니다. 내가 미국에서 보았던 역사 수업도 주제 하나에 대하여 자료 보여주고, 설명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등 단순하면서도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수업 분위기였습니다. 지식, 내용에 초점을 둔 수업이 아니라 이해와 탐구, 토론 등 능력에 초점을 둔 수업입니다. 엄청난 양의 지식들을 쏟아부어 수업 이외 시간에 따로 외워야 하는 부담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업 시간에만 충실하면 되는 수업입니다. 


다른 컴퓨터 수업에서는 1학기 동안 내내 컴퓨터 조립 및 분해를 반복합니다. 1학기 내내 컴퓨터를 분해했다 조립하고, 다시 분해하고 조립하고를 반복하면서 컴퓨터의 기본 구조와 원리를 깨닫고 통찰하는 수업이었습니다. 기본 원리에 대한 통찰이 생겨나면 다음 단계, 더 나아가 더 창의적인 응용으로 도약(점프 엎)이 가능하다는 담당교사의 설득력 있는 설명이 귓가에 아직도 맴돕니다. 다양하고 잡다한 지식들만을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는 통찰을 얻어낼 수가 없습니다. 통찰이 없으면 당연히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고요. 컴퓨터의 기본적 지식을 쌓고,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숙달할 정도로 반복 학습 과정을 통해 느리고 여유 있는, 그러나 완벽한 원리 이해부터 기능적 숙달까지 끌어낼 수 있는 수업이 아닌가요? 이런 수업에서도 포기하거나 부진 학생이 나올까요? 외국 학교들의 수업양과 의미는 나중에 수업 개혁 부분에서 따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서글프게도 우리 아이들은 한 가지 주제로 오래 사유하며 소화할 시간이 없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윤리와 사상이라는 교과에서 예를 든다면 동양의 공자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사상들까지, 그리고 서양의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하여 현대 사상들까지 이것저것 잡다한 모든 내용을 피상적으로 설명하고 나가야 합니다. 한 명 한 명이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심오한 사상들 인지라 한 명의 사상가를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하랴 해도 벅찰 수 있을진데 그 많은 동·서양 모든 사상가들의 사상을 피상적으로 정신없이 던져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습해야 할 양은 교과서 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수능 시험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내용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영역까지 잡다하게 섭렵해야 합니다. 그러니 교사는 교과서의 내용 전달하기에 급급하고, 아이들은 단편적인 지식들을 암기하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유 있게, 그러나 깊이 있게 교과서에 없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 성악설의 탄생 배경, 차이점, 공통점은 무엇이고, 두 주장의 한계점, 문제점은 없는가, 현재 사회의 관점에서 비판 가능한 점은 없는가 등 한 가지 주제에 대하여 심도 있게 분석해 보고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교과서에 의존한 강의식 수업만 한다고 교사 탓만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처음부터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을까요? 시작도 안 해보고 포기했을까요? 아닙니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온 1학년 아이들 교실을 들어가 보면 마치 결사항전의 자세로 공부에 매진하겠다는 비장함과 진지함이 넘쳐 가끔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하지만 2,3학년 올라가면서 1학년 때 보았던 그 아이들의 비장함과 진지함이 대부분 희석된 표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보기에는 공부 자체가 싫어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열심히 한다고 해도 중간 점검인, 그리고 최종 종착점인 시험을 잘 본다는 보장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난해한 시험을 위해 아이들은 쫓아가느라고 허덕이고, 교사는 달리고, 그러니 무슨 내용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있고, 재미가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쫓아가다 지쳐 포기부터 배웁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완벽에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아무리 해도 안되는구나.’를 심어주는 교육입니다. 거기에 상대평가로 인해 아무리 해도 나보다 잘하는 아이가 있으면 ‘나는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제도입니다. 단지 입시만을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엄청난 양의 지식들을 때려 넣는 교육에 점차 질려서, 해도 해도 안되는 그런 교육을 몰아붙이는 학교 자체가 싫어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 당연히 수업 흥미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행한 연구에서도 초등학교에서조차 학습량이 너무 많아 수업에 대한 흥미도가 프랑스, 영국, 일본 학생들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를 제시하였습니다. 더불어 교실 내에서 규칙을 지키고 교사, 같은 반 친구 등 타인을 존중하는 정도도 선진국 학생들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수업에 대한 흥미도 저하, 그리고 학업성취 저하가 인간관계, 즉 친구, 타인에 대한 존중도를 낮추는데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 아이들의 수학 과학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가 거의 최하위권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금은 그 이상 더 악화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 많은 수업 시간을 투자하면서 몰아가고 있는 우리 교육 현실에 비추어보면 어이없고 비참한 결과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학교교육이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의 교육에 반해 우리는 아예 학습에 대한 욕구, 흥미 등의 싹을 자르는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공부하고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시켜주어야 할 학교 교육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노력해 보려고 바둥거리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점차 퇴보시키는 교육, 좌절하게 하고 실패하게 만드는 교육, 교육이라고 부를 수 없는 교육, 이것이 바로 우리 교육입니다. 


교사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어떤 교재를 택해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칠지 등 사실상 개인적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는 핀란드처럼 자율권을 주지는 못할망정, 교사들이 외부 시험에 끌려다니면서 진도에 쫓기지나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도 자유롭고 심신이 편한 상태로 수업에 임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은 학습량을 소화해야 하다 보니 항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집에서 짜증 부리고, 학교에서는 반항하고 튕겨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아이들이 소화해 낼 정도의 내용 선별을 통한 학습량 조절,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업형태로 전환이 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요원한 얘기이지만, 이를 위해 먼저 수업을 충실히 임하면 동시에 시험까지 해결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더욱 낮은 수준의, 여유 있는 수업이 필요합니다. 속도와 학습량만을 강조하는 교육으로는 여유 있게, 그리고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자 하는 교육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관심 없던 세계사... 선생님 채널 보면서 너무 재미나네요.’

‘시험을 안 보니... 이렇게 재미있네요... 진짜 역사 공부.’


어느 날 역사 강의 유튜브를 보면서 평소에는 보지 않던 댓글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위의 댓글들을 보면 시험이 없다면, 그래서 진도나 많은 학습량에 쫓기지 않는다면 공부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다양한 선택과목제 도입이 아니라 아이들 학습 노동량을 단호하게 줄이고, 아이들의 학습 동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대전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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