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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Aug 23. 2024

교사의 전문성, 끝이 없다 2

- 교사부터 변하자

'교사는 전문가이다.

우리는 교과 내용을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치료하기도 하고 개선, 발전을 위한 노력이 곁들여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가 환자의 병명과 그 원인을 정확히 알고 처방하는 것처럼 교사들도 학생들의 개인적인 특성과 문제점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하지 못하면 전문가도 아니요, 교사도 아니다. '


옛날 자료에서 보았던 정진곤 교육학 교수가 강경한 어투로 언급한 내용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파악해서 알맞은 도움을 주는 게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며, 심지어는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는 것도 교사들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이론을 공부할 때에는 그저 당연한 주장이려니 하고 무심히 보았던 내용이었는데, 교직 생활을 하다 보니 교사의 역할에서 아예 지워져 버린 듯한 영역인지라 새삼 절실히 와닿는 내용입니다. 


교사처럼 편한 직업도, 한편으로 가장 어려운 직업도 없습니다. 양극단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편하게 하려면 담임 안 하고, 입시 지도, 교사들을 옥죄는 잡다한 제도, 행정, 규정, 관리자의 학교 운영 등등에 눈 감고 귀 닫은 채 오직 수업만을 위해 교실만 왔다 갔다 생각한다면 그것처럼 편한 직장이 없습니다. 교직은 그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교사만큼 힘든 직업도 없습니다. 진정 슈퍼 전문가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수업 전문가는 물론, 다양한 성향과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고, 교육적으로 대처하려면 엄청난 전문적인 지식과 열정, 그리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아직 모든 면에서 미성숙한 아이들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인내심을 갖추어야 합니다. 항상 성장, 변화하고 있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충동적인 아이들을 상대하고 교육적으로 지도한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의 전문가들보다 더욱 폭넓고, 더욱 깊은 교육 관련 전문 능력들을 필요로 합니다. 교사는 교과 전문가인 동시에 교육 전문가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교직에 오래 근무하면서 우려되는 것은 몇 페이지를 읽고 습득한 식견과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고 습득한 식견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몇 페이지로 알아둔 지식과 식견을 충분한 것처럼 확신하는 교사들이 너무 많이 뜨인다는 것입니다. 대학원 다닐 때 전공 관련 외국 이론가들의 저서가 아직 우리나라에 원활하게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이론가의 원서를 꼭 구해서 보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론가들의 원서를 구한다는 것은 돈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대형서점에 직접 가서 신청하면 한, 두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번거로운 작업이었습니다. 복사본 원서를 구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다들 한국 책에 몇 페이지 소개된 내용만 가지고 공부하던 시절에 그런 후배의 행동은 상당히 경이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무얼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이왕 공부할 거면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후배의 답변이었습니다. 그 당시 처음에만 해도 ‘머, 그게 그거지, 얼마나 차이가 나겠나?’하면서 가볍게 판단했으나 대학원 토론 수업 시간에는 그 차이를 확연하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몇 페이지로 습득한 식견과 한 권의 책으로 파악한 식견의 차이를 말입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노력하는 교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윤리학을 전공한 경우가 아니면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는 경우라 교과서와 관련 참고 자료 등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칠 정도의 지식을 겨우 습득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윤리학을 전공한 교사가 교과서 내용에서 언급되고 있는 주요 사상가들의 저서를 항상 옆에 끼고 다니며 읽어대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능의 시험문제가 워낙 까다로워서 사상가들의 내용을 교과서 이상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도 있었지만, 이 친구는 그 이상으로 각 사상가들에 대한 확실한 전문적 식견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친구를 통하여 많이 배웠습니다. 


이러한 미세한 교사들 간의 차이점이 지방 학교에 내려오니 더욱 명확하게 보이고, 그 차이로 인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대학원에서처럼 같이 한 주제를 가지고 밀착하여 토론하는 경우도 거의 없어 자신과 다른 높은 차원의 식견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기회도 없습니다. 가뜩이나 교사 양성과정도 시원찮은데 거기에 교과 독립적인 교사만의 얄팍한 식견과 왜곡된 아집이 작동되면 비교, 발전의 기회를 접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다.'


경단급심(綆短汲深)이라는 공자의 말씀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수업만 하고, 주어진 서류 정리하고, 지시대로 행하는 것은 대학생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교사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아마 어떤 직종보다도 어렵고 다양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입니다. 인간의 성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교사들 스스로 교육 본연의 모습을 실천할 수 있는 확고한 의식과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 있게 대처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능력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사의 질, 즉 전문성 수준에 의하여 교육의 질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삶의 질까지도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현행 교직 시스템 내에서는 추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현장에서 요구되는 교사 자질은 입시라는 괴물과 학교의 관료화에 의해 엄청나게 왜곡되어 이제는 교사가 추구해야 하는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 정도입니다. 우선 시험에 잘 대처해 줄 수 있는 교사, 그리고 학생들을 잘 관리하고 (무조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안 나게 잘 통제하는), 행정 처리를 잘하는 교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문직이라 하는 우리 교사들이지만 실상 교육 전문가, 수업 전문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선봉장인 교장, 교감에 더욱 그렇습니다. 현장의 리더격들이 교사로서의 전문가가 아닌 행정가로서의 전문가만 포진한 듯합니다. 이러니 교사들이 수업 전문가조차 되질 못합니다. 또한 내가 굳이 알지 않아도, 교육적 판단을 고민하지 않아도 지시받은 대로, 규정대로 하면 되기에 ‘제대로’ 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는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교사들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상황들이 ‘대충’ 알아도 넘길 수 있는, 그래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관행적으로 대처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현행 입시제도와 교사 시스템이 대부분의 교사들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오류를 범하도록 세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처음에는 교직사회에서 요구되는 교사의 능력, 전문성은 말 그대로 교육학에서 공부했던 이론적인 내용들과 동일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보다 나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대학원 과정도 다니고, 미국까지 쫓아가서 미국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도 듣고, 그리고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에 초점을 맞춘 ‘고등사고 능력’이 필수적일 것이라는 판단하에 그 분야로 전공을 맞추어 공부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교수학습 전공 능력도 필요 없습니다. 내가 공부한 능력 중에는 단지 학위 논문을 써 본 경험에 의해 입시 논술지도로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준 것 말고는 내가 풀어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능력 신장을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 능력도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론적으로 강조되는 그러한 능력이라기보다는 학교를 짓누르는 잘못된 입시체제에 맞출 수 있는 현실적인 능력이 우선입니다. 단지 교과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열심히 설명하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 문제풀이를 잘해주는 능력, 그리고 아이들이 보다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입시지도를 잘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전부이었습니다.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교라면 인정받지 못하고, '입시 전문' 교사가 아니면 무능한 것이고 교사로서 자질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판국입니다. 


서울에서 혁신학교로 옮겨갔을 때에도 학부모 대표들과 대표 교사들과의 만남에서 공개적으로 00 고 괴담이라며 성토하는 학부모들의 항의까지 묵묵히 감수해야 했습니다. 혁신 학교는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더 정확히 말하면 사립 고등학교처럼 입시 위주로 아이들을 빡세게 몰고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개교 전에도 혁신학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혁신학교 반대라는 학부모들에 의해 건물이 완공된 채 2년여간 개교가 미루어지던 상태였기에 충분히 예상될 수 있었던 반발이었습니다. 혁신학교라 해서 아이들의 장래를, 입시를 아예 간과하는 학교가 아님을 알고 있었겠지만, 그만큼 학부모들의 입시에 대한 집착, 그리고 이에 따른 불안이 극에 달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위한 '전쟁터'에서 교사로서의 교육 소신과 철학은 온데간데없고, 학부모는 물론 아이들조차 그것들을 외려 거추장스럽게 여길뿐입니다. 


이러니 교사들은 그저 빨리빨리 가르치고, 쫓아오는 아이들 위주로 대학에 집어넣기 급급합니다. 실제 OECD 교육지표 조사 결과에서도 우리나라 교사들의 ‘자기효능감’이 조사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합니다. 자기효능감은 교사로서 자신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확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데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사들이 갖추어야 할 전문성은 끝이 없는데 정작 이러한 전문성 신장에 교사의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는 여건 형성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암울한 현실입니다. 교사들이 나태하다, 교사들이 무능력하다 이런 비판을 제기하기 전에 과연 교사들을 움직이기 위해서,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가를 우선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교사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전문성을 제고하고, 전문성을 신장해 줌으로써 교직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이 우선적이고 근본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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