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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Sep 22. 2024

아직도 지식주입인가? 2

‘최대한 많은 양의 지식을 빨리 머릿속에 집어넣는 지식 암기 교육이며, 학생들을 공부 기계로 만드는 교육이다. ‘기계의 인간화’를 논하는 시대에 여전히 ‘인간의 기계화’를 강요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오늘 우리 교육 개혁의 핵심이다.’


 조희연 전 서울시 교육감의 말입니다. 열심히 지식을 가르친다고 해도 제대로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무의미하고 단편적인 지식 주입 수업의 반복은 오히려 지적발달은커녕 지적 발달을 방해합니다. 브라질의 진보주의 교육학자 프레이리(P. Freire)도 교사가 학생에게 교육내용을 전달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는 ‘길들이기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우리 교육을 때로는 농담 삼아 '무뇌아 교육'이라고 표현합니다. 역설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무뇌아'를 양성한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옛날에 공부할 때 본 한국교육개발원의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고등학생 학생의 2/3가, 대학생은 1/3이 스위스의 인지심리학자 피아제(J. Piaget)의 지적발달 단계 이론에서 11세 이상이면 갖추어지는 지적발달 능력, 즉 형식적 조작기에 미달한다는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피아제의 형식적 조작기란 아동의 인지적 발달과정 단계에서 제4단계이자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시기로 가설과 논리적 추론이 가능해지는 11~15세 청소년기 동안의 발달 단계를 지칭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시행착오적 사고 활동에서 벗어나 직접적인 경험이 없이도 논리적인 추론, 즉 귀납적 추리와 연역적 사고, 그리고 주어진 조건들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 내는 등 추상적 사고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지적 발달단계입니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고등학생 학생의 2/3가, 대학생은 1/3이 이 정상적인 지적발달 단계에 미달한다는 것입니다. 수치가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심하면 심했지 지금도 나아진 것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경험해 본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피아제의 이론이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 학교교육의 질적 수준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제 고등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아직도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의 학교교육은 이 사고를 더 강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사회에 미성숙한 어른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암기교육 덕분에 우리 아이들 대부분이 추상적 사고가 가능할 수 있는 발달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데 고등 개념의 이해나 추론 능력을 기대하는 난해한 수능 문제를 풀라고 강요합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힘들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편적 지식 암기에 중점을 둔 우리 교육의 결과입니다. 


수시로 수업연구 발표회를 가끔 쫓아다녀 보지만 우리는 아직도 지식 전달과 이해에 거의 한정된 수업연구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어떤 한 분야에서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문제 해결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분야에 관련된 지식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식이란 단순한 사물 속성, 즉 사물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관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의 의미를 가질 때만이 지식으로서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또한 주어진 지식 그 자체로만은 무의미한 것이며 경험과 활용을 통한 지식으로 형성될 때만이 유의미한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즉,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느냐에 따라 지식의 전이 잠재성이나 유용성이 주로 결정됩니다. 이는 결국 지식의 전이 잠재력을 높이기 위하여 첫째, 전이 잠재력이 높고 중요한 교육 내용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지식을 습득할 것이냐’ 하는 점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갖는 문제는 이렇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가장 무의미한 방식으로 암기하고, 다시 시험에서의 재생이라는 오직 제한된 맥락 안에서만 그 가치를 한정시키고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학교에서 그렇게 열심히 학습한 지식들이 무기력한 지식, 즉 '죽은 지식(inert knowledge)'에 한정되고 만다는 것에 우리 교육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학교 현장은 교사와 학생이 교과서에 제시된 지식들을 아무런 의식 없이 단지 시험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반복 암기하는 주입식 수업에만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의 사고력을 함양하기는커녕 오히려 말살하고 있다는 비난의 소리만 더욱 높아지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러한 목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면서 보았던 어느 교육학자의 이론상 목표일뿐입니다. 하긴 입시라는 틀에 끌려다니는 고등학교 상황이니 수업혁신을 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엄청난 양의 교과 내용들을 이해시키기도 급급한 상황에서 수업혁신과 입시 결과 동시에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키라는 불가능한 요구를 교사들에게 부과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학습자의 고등사고능력을 지향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교수-학습방법의 개선뿐만 아니라 교과서, 평가 방법 등에 있어서 일관성 있는 변화가 동시에 수반되어야 합니다. 교사의 노력만으로 결실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나마 수시 학생부 종합 전형 덕분에 그저 발표 및 토론 수업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도 다행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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