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의 전문성
‘샘, 메타윤리학 이런 거 꼭 알아야 돼요?’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을 규범윤리학이니 머니 추상적인 개념들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치고 들어옵니다. 나 스스로도 지극히 이론적인, 그리고 현실감 1도 없는 개념들을 떠들어대고 있는 게 한심하던 차에 느닷없는 아이의 공격에 할 말을 잃고 맙니다. 와닿지도 않은 개념에 지루한 설명, 꽤나 답답했던가 봅니다. 수능 시험에 매번 출제되는 내용만 아니었다면(개념 자체가 아이들이 이해하기 난해하니 수능 문제로 출제하기 너무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벌써 지워버리고 말았을, 그리고 아이들도 시험만 끝나면 금방 잊어버릴 그런 지극히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그러나 무용한 개념일 뿐입니다. 다른 교과에서도 이처럼 무용한 지식들이 넘쳐납니다.
다음 중 <보기>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모음이 포함된 것은?
. 발음할 때 혀의 위치가 중간임
. 발음할 때 입술을 오므리지 않고 발음함
. 발음할 때 혀의 최고점의 위치가 뒤쪽에 있음
. 발음할 때 입술이나 혀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
① 참외 ② 검거 ③ 물개 ④ 구리 ⑤ 예고
학교 시험기간에 시험감독을 하면서 해당 시험 문제를 살펴보다 보면 ‘이런 지식을, 내용을 과연 우리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지식의 현실성, 실용성 관점에서 입니다. 물론 내가 국어영역에 무지하고, 교과 교사의 판단에 의하여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하면, 그리고 이런 내용도 수능 시험에 나오니까 가르치고 시험을 냈다 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수능이 교사의 수업내용을 한정 짓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시험기간에 시험감독으로 들어가면 해당 교과의 시험문제를 자주 살펴봅니다. 교과서의 지식 그 자체만을 강조하는 시험문제와 교과서 지식을 조작, 활용하거나 실생활과 연관하는 등 지식을 유의미화시키는 시험문제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교사의 시험문제를 들여다보면 교사의 지식에 대한 관점이나 수업방식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교사의 능력, 수준과 직접 연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담이지만 교장, 교감이 교사들의 시험문제를 검토할 때 시험문제의 유형을 파악하여 보다 적절한 지도를 할 수 있는 전문적인 능력만 갖추었어도 교사들의 수업이 훨씬 발전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시험문제들이 교과서 지식에 한정된, 지식 그 자체만을 묻는 시험문제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문제들입니다.
1. 다음 중 그라쿠스 형제가 다음 관직 중 어느 직책을 맡았는지 선택하시오.
2. 조선의 선조 통치 체제에서 설치된 기관이 아닌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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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아서도 알겠지만 우리들이 학교교육을 받아오면서 아무 생각 없이 암기해 왔던 단편적 지식의 유형입니다. 그냥 외워야만 하는 지식들에 불과합니다. 이런 지식들이 왜 필요한지, 어떤 안목을 길러주는지 의문을 갖기도 민망한 지식들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분절된 지식들 조각조각'으로 표현되는 무의미한 지식의 나열일 뿐입니다. 이래서 ‘단편적이고 편협한 지식 교육’이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무의미한 지식 그 자체만에 대한 강조는 본래 지식의 필요성이나 가치를 떨어트리거나, 더 나아가 지식 교육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좀 더 멀리 본다 할지라도 졸업하면 동시에 거의 폐기 처분되는 그런 쓸모없는 지식 덩어리를 암기하는데 주력했을 뿐입니다. 물론 수능에 나오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여기에서도 유효합니다.
무의미한 지식암기 교육은 우리 아이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오히려 안 하느니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보다 접하지 못하는 정보들이 수십만 배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직접 웹서핑을 통하여 방대한 자료를 검색하고 찾아서 정리하는 시대에서도 벗어나 AI Agent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정보만을 찾아서 정리해 주고, 선별한 정보를 정리하고 연결해서 새로운 정보까지를 생성해 주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의 뇌 구조와 읽지 못하는 사람의 뇌 구조가 다르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AI Agent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과의 뇌구조도 다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파편화된 지식, 정보를 암기만 하는 뇌의 구조와 지식,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뇌의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우리 지식 암기 위주의 교육이 부정적인 뇌의 발달로 고착화시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국, 영, 수 중심의 현행 교과 과정 한번 잘 보십시오.
저는 문과 출신이고 본고사 세대인데, 사회 나와서 직장 생활도 하고, 사업도 하고 여러 가지다 겪어 봤지만, 입시 때 죽어라 하고 공부했던 미분, 적분 고등학교 졸업하고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습니다. 비슷하게 가 본 적조차도 없습니다. 수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하는 훈민정음 아주 입에 달게 달달달 외웠습니다 사맛디가 고어로 어떻게 쓰고, 그게 무슨 뜻이고 어쩌고 하는 내용... 사회 나와서 단 한 번도 응용된 적 없고, 제 삶에 크든 작든 영향을 준 적 한 번도 없습니다. 이건 대학교 가서 그거 전공할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영어는 필요하지요. 영어도 국어 고문 배우듯 하는 것은 필요 없고 실제 책을 읽고, 회화를 할 때 필요한 수준으로 해야 하지요. 국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절에 불과 30초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뭐 하러 달달 외웁니까? 한창 밝게 꿈을 가지고 자랄 아이들이 삼 년 내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 가며, 꿈도 희망도 없이 무표정하고 지친 모습으로 바쳐서 공부하는 것들의 내용이 어떤 것인 줄 아십니까? 그것들 3년 치 몽땅 합쳐도 200기가 하드디스크 하나에도 다 못 들어갑니다. 그걸 왜 외우고 있습니까?'
옛날 교육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있었다는 '고1 학부모'란 ID로 글을 올린 한 학부모의 글입니다. 학부모의 절절한 하소연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리고 우리 교육의 허구성을 완벽하게 대변해 줍니다. 학부모가 이럴진대 우리 교사들은 현실을 더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들어봤자 이해하기 어렵고, 그저 잡다하고 난해한 비현실적 지식들이 곳곳에 채워진 교과서입니다. 나의 경우에는 기억력이 나빠서도 그렇겠지만, 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들 중 남아있거나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지식들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수학뿐만 아니라 국어 책에서도 지금 써먹지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고어로 가득 찬 고문을 해석하면서 ‘이것들을 왜 배워야 하는 거지?’하는 강한 회의가 들었던 때가 기억납니다.
어느 날 국어 교사가 나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국어의 독서 교과에 어느 사상가의 사상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었는데 윤리, 철학을 가르치는 나도 읽어보지 못한 난해한 내용들이 깔려있었습니다. 특정 철학가, 사상가들의 특정 사상 내용. 내가 설명하기도 힘든데 전공하지 않는 국어선생님은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이들은 기술적 설명에 그치는 국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과연 이 내용을 제대로 독해는 할 수 있을까? 우리 교과서를 보면 깝깝해지면서 왜 굳이 어렵기만 하고 지식의 유용성이나 아이들 수준에 1도 부합되지 않는 이런 내용까지 배워야 하는지 교육학을 전공한 나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이런 내용을 꾸겨 넣어 교과서를 제작한 교사 및 교수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자기들만큼의 전공 수준으로 우리 아이들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욕심에서 일까? 수학은 안 그렇습니까? 나도 입시 본고사에서 내가 제일 어려워하면서 싫어했던 수학 점수를 얻기 위해 고등학교 전체 공부 시간의 1/3은 처절하게 매달렸을 것입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대학 들어오자마자 한 번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써먹어 보지도 못했던 그런 교과에, 단지 시험점수만을 위하여 낭비된 학창 시절 시간들이 너무 아깝습니다. 쓸데없는 지식들을 무의미하게 학습하느라 학창 시절에 너무 많은 시간들과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아이들도 학교 수업이 지루하고 피곤해집니다.
퇴임한 동료 교사들과 여행을 하던 중 TV 프로그램에서 본 상황을 꺼냈습니다. 외국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데, 출연자가 ‘어느 것이 좋으냐?’는 말을 영어로 하려고 했는데 표현이 안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동료들에게 그 표현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이들 중 두 명은 수능 있기 전 그 어려운 영어 본고사를 합격하고 들어간 서울대를 졸업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수준 높은 독해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그 간단한 영어 한마디를 내뱉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 영어 교육의 현실입니다. 서울대 영어 시험을 패스하기 위해 고급독해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투여하였을 텐데 돌아보면 낭비된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습니다. 또 영어 교과서인지 시험문제에서 인지 우연히 본 내용 중에 ‘명명 오류’라는 논리적 오류를 설명하는 영어로 쓰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개념 자체를 한국어로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일 텐데 그런 영어 내용을 해독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영어와 윤리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비전공자도 가르칠 수 있는 그 정도 수준의 영어였습니다. 가르치면서 점점 이 정도 수준의 영어면 고등학교에서도 충분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굳어집니다. 즉,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반복 학습한다면 충분히 외국인하고도 대화할 수 있는 정도의 실용적 수준이었습니다. 역시 윤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복잡한 사상가들도 어르신들에게 설명을 해드리면 충분히 알아듣고 쉽게 문제를 풀 수 있는 그런 수준 정도의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수준과 내용으로 학교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며,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여유롭게 생각을 펼치며 아주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옛날 어느 방송에서 룩셈부르크 교육과정을 조명한 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아주 특이하게 와닿았던 점은 거의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몇 개 안 되는 교과목과 기본적인 기초소양을 위한 교과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주변에 강대국 3국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서 주변 국가들의 언어들을 주요 교과로 설정한 교육과정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우리와는 너무 다른 교육과정에 담당 PD가 ‘수학은 안 배우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니 생활에 필요한 정도의 아주 기초적인 수준만 가르치고 그 이상의 전문적인 수준은 전공할 사람이 대학 가서 배우면 된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초, 중등 교육에서는 기본적인 자질의 함양과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기초 기능의 학습으로 충분하고, 그 이상의 나머지 학문적 체계에 의한 내용의 학습은 대학에서 하면 된다는, '필요한 만큼, 그리고 필요에 의한' 적실성(適實性)에 기초한 실용적 교육과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과정을 대신 명쾌하게 보여주는 듯하여 그저 부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