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장이 변하면 학교가 산다
‘관리자라고 부르지 마세요!!’
교장과의 대화 중 내가 교장, 교감을 관리자라 칭하니 발끈하며 하는 소리입니다. 의외였습니다. 교장의 의무 중 관리적 기능도 포함되어 있기에 당연한 호칭이라고 볼 수도 있건만, 의외로 교장도 ‘관리자’라는 표현을 싫어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접해왔던 교장, 교감들은 거의 모두 '교육자'라기보다는 '관리자'의 모습만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이날도 교복 입지 않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방침을 강행한다길래 조심스럽게 의사를 전달하고자 내려가 보았던 교장실이었습니다.
어이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때 방과후 논술 수업을 받는 아이들과 머리도 식힐 겸 배드민턴을 치려고 체육관에 올라갔습니다. 입시를 앞두고 매일 익숙하지도 않은 글을 써 내려가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아이들에게 휴식 겸 충전을 하기 위해 가끔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칩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그냥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쇠사슬로 잠겨있었습니다. 관리실에 물어보니 쇠사슬은 교장샘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어제 저녁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칠 때 학생부장이 이 모습을 보고 교장샘에게 보고했던가 봅니다. 그에 대한 조치일 것입니다. 아이들끼리만 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교사가 참관하며 같이 놀고 있었는데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체육관 어느 구석을 부서뜨릴까 봐 걱정하는 것인지 도무지 그 이유를 가름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날 교장실에 내려가 물어보니 별다른 이유를 제시하지도 못하고 풀어준다 합니다. 감히 교사가 직접 내려와 따질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나 봅니다. 아이들과 교사들을 통제하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그저 자신이 익숙한 관리적 관점에 근거하여 고민없이 반사적인 조치를 내리고 따르라는 전형적인 관리자의 모습입니다. 더구나 혁신학교를 한다고 자원한 교장샘이었습니다.
'선생님들께..
6교시에 전체 직원협의회 있습니다~
5,6교시 동아리 활동인데...
학생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지도하시고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교감선생님께서 교직원 연수 출결 점검하십니다.'
수업 시간을 빼내면서까지 예정되지 않은 교직원 회의에 참석하라는 교무부장의 안내 메시지가 회의 시간 가까워지면서 반복적으로 던져집니다. 이번의 교직원 회의도 아이들 지도를 잘해달라면서 학급 자치회 시간이나 동아리 활동 시간을 교직원 회의로 빼냅니다. 토론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학습하는, 그래서 교사의 참관 지도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간임에도 교사들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교내 메신저만으로도 가능한 전달 내용을 굳이 바쁜 교사들을 불러 모아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직접 전달하고, 반복 강조해야지만이 권위가 서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봅니다. 하긴 어느 교사는 아이들 간 폭력 문제로 학부모 상담을 하느라 교직원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는데도 교감 샘이 뭐가 더 중요한지 분간을 못한다며 호통을 치고 사유서까지 요구했다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 지도보다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교직원 회의가 더 중요하다는 관점입니다. 관리적 관점에서는 학생자치나 동아리 활동, 심지어 학생지도까지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교사 활동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이 그렇듯이 학교 돌아가는 것들에 대한 여러 가지 걱정이 많습니다. 매번 교직원 회의 때마다 학생지도를 잘해 달라든가,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이 많다는 등의 걱정만 교사들에게 표하며 마치 모든 것이 교사들의 탓인 양 질책성 일장 연설을 늘어놓습니다. 가끔가다 관리적 열정이 지나쳐 잔소리를 넘어서 교사들을 직접적으로 혼내기도 합니다. 교직원 회의 공개석상에서 각 교실 관리상의 문제를 지적하다 그 반을 직접적으로 지적한 것도 모자라 아예 그 교사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혼을 냅니다. 관리적 사명감에 불 타 어느 정도가 적정한 선 인지도 분간을 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걱정들이 대부분 교육적인 걱정이라기보다는 관리적 차원에서의 걱정들에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리적 걱정들이 지나치면 자신의 학교를 지키기 위한 과감한(?) 대응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어느 날 우리 학교에 전입생이 계속 들어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교감이 여기저기 알아봅니다. 그 결과 그 지역의 대부분 학교들이 폭력으로 인한 전입 학생을 받지 않기 위해 온라인 교무업무 사이트에서 현재 학생 수를 원래 예정된 학생 정원에 맞추어 꽉 차게 적어냅니다. 전입생을 받을 빈자리가 없다는 거짓 정보를 입력하여 문제 학생 전입을 예방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단위 학교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에게 퇴학까지 시키기에는 너무 심하고, 그렇다고 아무 조치도 안 할 수는 없고 해서 취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치가 전학입니다. 속되게 표현하면 소위 ‘폭탄 돌리기’라고 합니다. 뒤늦게 다른 학교들의 동태를 알게 된 우리 학교도 비교육적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다음 날 현재 정원을 원래 정원 수와 동일하게 적으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허위 서류 조작을 통하여 정원이 다 찼으니 전학생을 받지 못함을 공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육현장의 교장들 대부분이 본질적인 교육적 기능보다, 아니 아예 교육적 기능은 제쳐두고 부차적인 것에 불과한 관리적 기능이 주기능인 것처럼 인식하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왜곡된 관리적 기능까지 마다하지 않는 행태입니다. 학교 운영에 관련된 모든 것을 자기 책임하에 있다고 여기고 교육적인 활동에 우선점을 두기보다는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대비하여 가능한 관리, 통제 위주의 학교 운영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관리자의 임무에 포함된 관리적 기능은 모두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사실, 즉 학교의 교육적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단지 수단적 가치로 한정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나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교사들로부터 전문적 권위나 인간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교장들이 대부분인지라 억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가장 자신 있는 관리적 기능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3학년 기말고사 이원 목적분류표 예상 점수를 60점으로 고치겠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문제의 난이도에 따른 예상 점수로 해야지 실제 학생들이 불성실하게 치러서 낮은 점수가 나올 것을 예상해서 써선 곤란하다고 하셔서요...^^;;
내려오셔서 직접 고치셔야겠지만 수고스러우실 것 같아서 그냥 고사계에서 고치겠습니다. 혹 결사반대하시면 연락 주세요~!^^’
고사계 담당교사가 본인도 민망한듯이 메세지를 보내옵니다. 3학년 2학기 기말시험, 수능이 끝난 아이들에게 전혀 관심도 없는 기말시험을 의례적으로 치러야 합니다. 재수를 대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미 수시 전형으로 대학 진학이 결정 났거나, 수능 성적으로 대학을 결정하는 아이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그래서 시험 기간 동안 대부분의 아이들이 엎어져 잠을 청하는 그런 시험입니다. 물론 시험을 보기는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교사들은 시험문제를 완성하고 난 후 의례적으로, 별 의미 없이 시험의 예상 성적을 적게 되어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례적인 기입입니다. 나름 수능을 끝낸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무성의할(?) 자세를 고려하여 예상 점수를 낮게 잡았더니, 교장샘이 평균 60점을 제시하여서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녕 예상 점수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문제의 난이도에 따른 예상 점수라 하였지만 정말 전문적인 관점에서 내가 출제한 시험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한 후 난이도를 파악하고, 우리 아이들의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여 적절한 평균 점수를 예상하고 제시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전문성에 기초한 역량 발휘는 아닐 테고, 또 엄격하게 따지면 시험문제에 대한 예상 점수는 담당교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입니다. 의례적인 평균 60점, 정상분포도로 보아 가장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아이들의 성적 분포입니다. 아마도 서류상이나마 가장 그럴싸한 아이들의 성적분포를 보여주고 싶어, 꼭 필요하지도 않은 고생을 자초했나 봅니다.
단순한 예이지만 교사들을 설득하지도 못하는, 교육적 근거가 미약한 간섭이나 지시로 바쁜 교사들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대부분의 교장들이 그렇지만 특히 장학사 출신 교장일수록 모든 것을 서류상으로 완벽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리자들 덕분에 우리 교육은 서류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교육이니까요. 심지어는 그네들이 교사들보다도 자신 있는 부분이 서류, 행정 부분이기에 굳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데도 일부러 걸고넘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관리자에게 불평하는 것은 지나치게 행정적이고 쓸데없이 까다롭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관리자들의 단순하면서 아주 예리한(?) 지적과 관리 역량에 감탄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교사들은 꼭 필요하지 않은 영역, 아니 대부분의 교육활동 영역에서 관리자들의 지나친 간섭, 즉 ‘발목 잡기식 참견’을 싫어한다는 것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치 몽니를 부리는 듯합니다. 수업 시간에 가지고 들어가는 음료수도 정해줍니다. 수업 시간에 마실 것을 가져가지 마라, 물은 되고 커피는 안된다... 이런 자잘한 것들 하나하나 통제하고자 하는 교장의 발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관리자들이 학교 운영에 있어 철저한 관리 위주의 마인드로 무장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아니 무장될 수밖에 없는 단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이러니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교사들의 교육 활동에 대해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고, 교사들의 자율성에 맡기고 교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으면 더 좋겠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앞에서 언급한 '똑게(똑똑하나 게으른)' 리더는 되지 못할지언정 '멍부(멍청한데 부지런한)' 리더는 되지 말라는 원성일 것입니다.
이처럼 관리적 학교 운영에 집중하는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교육의 큰 원칙은 인식하지도 못한 채,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관리적 원칙을 고집합니다. 사소한 관리적 원칙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얽매여서 더 큰 원칙, 더 중요하고 교육적이고 유의미한 가치들, 즉 학교 본래의 교육적 기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