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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학교 운영이 필요하다 2

- 교장이 변하면 학교가 산다

by 무상

'세이공청(洗耳恭聽)'

‘귀를 씻고 공손하게 듣는다’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많은 직원들을 이끄는 리더의 경청하는 습관이 실제로 조직의 많은 문제들을 자동적으로 풀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합니다. 화이자(Pfizer) 회사의 제프 킨들러 회장은 항상 바지 주머니에 늘 1센트짜리 동전 10개를 넣고 다닌다 합니다. 한 명의 직원과 대화를 하고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이 들면 왼쪽 주머니에 있던 동전 하나를 오른쪽 주머니로 하나씩 옮겨 하루에 10개를 다 옮길 정도로 부하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한편으로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문학을 읽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시를 읽는 것은, 소설을 읽는 것은 그 낮은 목소리를 듣는 훈련을 하는 것이랍니다. 모두 정서적 거리감을 없애고 구성원들의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있는 좋은 접근법들일 것입니다. 우리 교장들도 이러한 노력들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현실은 참혹합니다.


'아니, 관리자의 학교 운영 의도와 다르면 어떻게 학교를 운영합니까?'

교복자율화를 원하는 아이들의 의견수렴 결과와 교사들의 의견을 전체 교사들에게 공유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난 후 돌아온 교감의 답변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매번 갈등, 대립하는 학교 문제가 있으니 당사자들 의견 수렴해서 다 같이 공유하고, 이에 대한 고민을 나눠보고, 대안을 생각해 보기 위한 당연한 의견 수렴 및 공유과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교장의 운영 철학과 다른, 아이들과 교사들의 의견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견수렴 결과를 학교 운영에 참고하거나, 정 아니다 싶으면 최소한 아이들과, 그리고 교사들과 대화를, 또는 설득할 생각조차 갖질 못합니다. 학교 현장의 의사소통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관리자들의 사례입니다.


교장의 '독선적 학교운영 철학'이나 '의사소통의 부재'나 같은 맥락입니다. 그저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거부합니다. 아주 극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지만, 자신들의 생각이 학교 운영에 있어 기본 철칙이어야 하고, 정답이므로 의견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관리자들은 아주 흔하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구성원들 전체, 즉 ‘우리’의 교육적 이익이 아니라 그저 ‘당신들’의 학교만을 추구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류의 관리자들과 의사소통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상상이 가시는지요? 결국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교장은 교복을 안 입고 오는 아이들을 교문에서 돌려보내는 극약 처방을 내립니다. 이런 교장들이 평교사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을 벌이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어쩌겠습니까? 교장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도 없고, 학교 내에서는 교사들에게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끔 제도적으로 철저한 보장을 해주고 있는 것을. 오히려 교장에게 주어진 많은 행정적 권한이 학교의 민주적 운영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국가 공무원법 제57조에서 규정된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소속 상관의 직무상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이 관리자에게 많은 권한과 교사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권위의식을 더 키워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막대한 권한을 자신의 독단적인 학교 운영에 사용하는 것으로 한정함으로써 가끔 비리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 국회의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교장이 평교사에 견줘 파면 등 중징계 처분을 받은 비율이 6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실제로 단위학교에서 교장의 독적 권한을 견제할 장치는 전무합니다. 형식적인 위원회들이 많이 있지만 교장이 맘먹은 대로 하겠다면 무용지물입니다. 교장을 견제할 수 있는 기능으로 학교 운영위원회를 두었지만 단위학교만의 완전한 교육 자치 제도가 아니기에 실효성이 떨어지고, 시작 때 의도와는 달리 기능이 퇴색하여 교장의 의중에 동조하고 공고히 해주는 기능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사들도 지금의 제도하에서 별 의미 없다는 생각하에 관심도 없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위원들이 교장이 선호하는 위원들로 구성되기 일상입니다. 오히려 운영위원들에 대한 교육 활동 보고 및 심의 과정이 하나 더 추가되어 교사들의 업무만 증가되었을 뿐입니다.



학교의 민주적 운영에 있어 또 하나의 장애점은 역시 교사승진제의 해악과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래저래 우리 교사들의 승진 과정은 교직사회를 망치는 최악의 요인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험난했던 승진 과정을 거치며 몸에 밴 순응 자세, 그리고 힘든 과정에 대한 보상심리가 결국에는 학교의 민주적 운영이나 구성원들 간 의사소통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왜곡된 승진 과정 동안 오직 그 한자리를 위하여 뼈를 깎는 고통을 참으며 버텨왔는데, ‘죽어야 산다’를 수시로 뇌까리며 그 고생하면서 올라왔을 텐데 이제 와서 민주적 학교 운영이니, 아이들과 교사들 위주니 하는 철학을 받아들일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의 고통스러운 과정에 부합하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작동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앞에서 자주 언급한 대로 교사들로부터 제대로 대접(?), 즉 보상을 받지 못할 경우 교사들의 발목을 잡는 부정적인 행동으로도 권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부정적’ 보상심리가 작동되기도 합니다. 소위 말하는 몽니를 부리는 꼴입니다. 이러니 아주 투철한 교육적 소신을 가진 교사들 외에는 그렇게 힘들게 올라온 관리자들에게 민주적 학교 운영? 학교 운영에 관한 토론 및 의결권을 교직원들에게 맡긴다? 언감생심입니다. 결과적으로 비정상적인 교사 승진제도가 승진 과정을 통하여 민주적 학교 운영이라는 인식 자체를 삭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비정상적인 교사 승진제도로 고착화된 관료적 위계로 인하여, 그리고 현재와 같이 교사에 대한 근무 평정 권한이 교장에게 집중되어 있는 구조 속에서는 교사가 학교장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힘듭니다. 더욱이 관리자가 지나치게 의욕적이면서 일방적일 경우 평교사들이 그나마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부장들이나 교감과의 의사소통조차 어렵게 됩니다. 무슨 일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하는데 담당 부장이나 교감이 서로 등을 떠미는 웃지 못할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교장샘에게 먼저 구두 결제부터 받아와라.’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결국엔 관리자나 동료 교사들하고 학교 변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할 때마다 '네가 교장 되면 해.’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됩니다. 이 말은 제시한 의견이 당시 관리자들이나 동료 교사들에게는 지극히 이상적인 생각이라는 의미와 함께 교장이면 독단적으로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교사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내가 주시하고자 하는 것은 ‘교장 되면 하라.’는 소리입니다. 교장이 되면 독단적으로, 마음껏 운영할 수 있다는 교사들의 위험한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당연히 교장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운영을 당연시하고 복종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교사들의 의식입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교장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학교 운영이 일상화되면 교사들의 순응적 마인드가 고착화되어 또다시 학교의 민주적 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이처럼 왜곡된 승진 제도, 그리고 이에 맞물려 형성된 교사들의 순응적 의식으로는 학교의 민주적 의사소통 과정이나 운영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교직 문화의 민주화가 이루어질까요? 학교의 교육적 기능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기보다는 권위주의적, 독선주의적, 그리고 관리적 기능에 초점을 둔 관리자를 양성하는 현행 승진제도, 이러한 관리자들의 일방적 행태를 당연한 것인 양 받아들이는 순종적 교사들의 양성, 혹 의견을 게재할지라도 논의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방적 의사소통 시스템 등 교직사회 발전에 장애가 되는 총체적 문제들을 다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문제점들이 개선의 여지없이 아직도 반복되며 악순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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