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장이 변하면 학교가 산다
내 경험으로는 교사 연수과정에서도 민주시민 교육에 필수적인 토론 능력 양성 심화 과정을 갖지 못합니다. 그렇게 성장한 교사들이 교직사회에서도 토론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아이들에게는 토론과 민주적 의사소통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정작 아이들에게는 학급회의를 통해 토론하며 의사소통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는 토론하며 의사소통하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민주적이고 논리적인 교육보다는 일방적인 교육, 지시만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이 역시 우리 교육의 허구적 모습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교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교사들조차 왜곡된 관행에 젖어 민주적 학교 운영이 무엇이며, 또 무엇이 학교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즉, 단위학교 내에서의 ‘교직원 회의의 의결화’, 교무회의가 토론을 통한 실질적인 의결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위 학교 내에서 교사들의 주체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그리고 교장의 독단적 학교 운영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이고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학교 운영 방식이 될 것입니다.
허용적 분위기에서 건의사항, 정책제안, 의견, 주장을 자연스럽게 논의하다 보면 교사들의 참여도도 높아지고, 이러한 의견들이 직접 학교 운영에 반영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 건강한 학교를 만들 수 있는 변화 가능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교직원 회의의 의결화가 법제화된다면 교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교장이 마음대로 뒤집는 경우도 없어질 것입니다. 앞에서 교장의 주먹구구 철학에 따라 학교 운영이 달라진다고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장치가 제도화가 되지 않는다면, 교장들에게 교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의결하는 학교 운영 방식을 반강제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면 교직사회에서 민주적인 의사소통 분위기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존경한다는 교사이자 동료인 친구는 공모 교장이 되자마자 교직원 회의의 의결화를 우선적으로 시행합니다. 개인적인 욕심 같아서는 워낙 교육적인 친구인지라 오히려 그 친구의 독단적인 운영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 살짝 아쉬움이 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교장을 생각하여, 그리고 언젠가 교장이 될 수 있는 후배 교사들에게 바람직한 학교 운영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필요한 조치입니다. 당연히 교사들의 엄청난 호응과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합니다. 이 친구야 태생적으로 진정한 교사다움을 갖추고 있는 친구인지라 교직원 회의의 의결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교장들에게는 감히 기대할 수 없는, 언감생심의 조치일 것입니다.
설혹 교직원 회의의 의결화가 어렵다면 최소한 교직원 회의에서 단순 전달이 아닌 교사들의 궁금증이나 의견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료를 정리하다 영국 의회의 PMQ’s(Prime Minister’s Questions) 방식이 눈에 띕니다. 영국의 총리가 매주 수요일 낮 12시가 되면 의회로 출석해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방식으로, PMQ’s를 통해 영국 내에서 한 사안에 대해 끊임없이 총리와 의회, 국민 간의 소통을 이룬다고 합니다. 우리 교직원 회의도 이러한 방식으로 전환하여 교장, 부장들과 교사들 간 질의응답하며 궁금증도 풀고, 토론도 하면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의 장이 마련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면 토론이 어려우면 부담이 적은 온라인상의 토론도 괜찮을 것입니다.
교사 그 자체의 본업에 충실한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들의 ‘사랑한다.’는 말에 속아 평생 교사직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이는 교사들에게 활력을 제공하는 원동력은 명예나 경제적인 보상이 아니라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하는 교육적 성취감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아이들도 이러한 교사들을 만남으로써 달라지고 변화하고 발전해 나갑니다. 당연히 교사들도 어떤 관리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구성원 모두가 같은 꿈을 갖고 지혜와 노력을 결집시킬 수 있도록 바람직한 철학을 공유하고 민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줄 관리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교장은 교사들과 토론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교사들이 무조건 교장들을 비난, 반대만 하려고 토론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들 성장 자체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교직사회에서의 의사소통이 활성화될수록 교사들이 더욱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고, 아이들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의 해결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교육개혁들이 왜 학교 현장에 정착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 보고, 학교교육의 주체인 교사의 능동적인 교육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변화를 시도해 주었으면 합니다. 교사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전제하지 않는 한 어떠한 새로운 개혁 정책도 단지 지난 과오를 되풀이할 뿐입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단추로, 교장들의 개방적 자세로 의견 소통 및 수렴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교장 나름의 학교 운영 철학이 있을지라도 교사들과 공유하고 협조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장이 확고한 교육적 철학, 즉 왜 우리가 하려는 일을 무엇인지를 뚜렷이 정의하고, 끊임없이 공유하면서 교사들을 존중하고 의견을 경청하려고 하는 자세만 갖춰도 교사들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