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상 Aug 02. 2024

수학이 제일 재미있어요!

- 교사가 보는 학교

‘수학이 제일 재미있어요!’

 

우리 학교 얘기가 아닙니다.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을 때 교환교수인 아버지 따라 내가 있는 곳에 온 한 중학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도 역시 처음 만났을 때 한국의 어느 아이들처럼 제일 못하고 재미없는 과목으로 수학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1학기 지나서 ‘학교 재밌냐?’는 가볍게 던진 질문에 의외로 자신 있게 ‘네’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놀랍게도 ‘수학이 제일 재미있어요.’ 합니다. 영어도 그때 당시 서툴던, 정확히는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이가 수업을 재미있어 한다는 자체도 놀라웠지만, 수학을 제일 재미있어한다는 점이 경이로웠습니다. 어느 글에서 한국에서 스웨덴 고등학교로 전학 간 고등학생이,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아이가 ‘수학이 재미있다’는 깨달음을 얻어 대학에 올라가 수학을 전공했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나긴 하지만 정말 놀라웠습니다.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 제일 싫어했다는, 한국의 대부분 아이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그래서 다른 과목에서도 그렇지만 유독 많은 아이들이 포기하고 수업 시간에 엎어진다는 그 과목을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한 학기만에 제일 좋아하겠되었다니.... 

 

어떻게 한 학기 만에 그렇게 싫어하던 과목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변해버리는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내 관점에서 단적으로 말하면 학습량의 차이에 기인합니다. 물론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의 차이도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근본 원인인 학습량에 관하여 논하겠습니다. 미국 아이들의 공부 양은 뒤에 가서 언급해 보겠습니다. 과외·학원 시달리고, 새벽 1시에 귀가해야 하는 등 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이 부진학생이 되는 이유도 모두 학습해야 할 교과목이, 그리고 학습해야 할 피상적인 내용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있습니다. 공부하는 것에 재미는커녕, 엄청난 학습량으로 인한  수박 겉 핥기식 지식 교육으로 인하여 공부하는 것에 지치고, 심지어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고 거부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모든 교과에서 가르치는 학습량이 많다 보니 개념이나 내용에 대한 진지한 사유나 체험적 학습은 언감생심, 그저 내용 위주로 암기하면서 정신없이 진도를 쫓아가야 합니다. 완전하게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신의 내적 성숙에 기여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이러니 무슨 재미있는 수업, 유의미한 수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교사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수업형태가 바뀌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 수업 전환이 어려운 이유도 학습량 과다에 의한 진도의 압박입니다. 여기에 중·상위권에 맞출 수밖에 없는 수업 진도로는 늘 어렵고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많은 과목에, 너무 많은 내용에 오히려 아이들이 한 과목도 제대로 숙달하지 못하고 던져지는 지식들을 그냥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스쳐 지나가는 꼴이 되어버린 모습입니다.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단기기억에 잠깐 들어온 지식들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어 쌓이지 못하고 시험만 끝나면 바로 지워져 버립니다. 결국 내실이 없는 속 빈 강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수학만 해도 그렇습니다. 수학에 나오는 공식들은 옛날 최고의 수학자들이 오랜 고민과 노력 끝에 만들어낸 최고의 정교한 결과물들일 것입니다. 그만큼 수학 공식들과 개념들에 대한 제대로 된 학습이 이루어지려면 핵심 내용을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제공함으로써 가능할 것입니다. 한데 그 엄청난 의미가 함축된 공식들은 그저 단순 암기로 해치우고, 그 공식이 적용된 숫자풀이 문제들을 푸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또한 국어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국어  교과를 일주일에 4-5시간 이상 수업받지만 논술지도를 하다 보면 문해력뿐만 아니라 글 쓰는 능력 등 도대체 국어 시간에 무엇을 배운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아이들의 부실한 국어 능력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모든 교사가 자신이 맡고 있는 교과의 모든 지식들을 여과 없이 쏟아붓는 열정(?)도 학습량 증가에 한몫합니다. 대부분의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을 다 가르치려면 현재 수업 시간의 2∼3배는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험이 있고, 교과서라는 정해진 양이 있으니 그 잡다한 지식들을 다 가르쳐야 하는 것처럼 피상적으로나마 충실하게 쏟아붓습니다. 특히 수능이라는 절대적인 외부적 평가가 존재하는 한, 교과서 내용을 샅샅이 살펴봐야 하고, 거기다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시험에 대비하여 교과서 이외의 더 많은 관련 내용까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교내 시험은 어떻게든 교사들이 양을 적절하게 조절해 나가려고 할 수도 있지만 학교교육을 옥죄는 외적 평가(수능)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수능 시험에서는 국어는 국어 교사가 읽어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들, 내용들로 가득 찼고, 영어는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닌 내가 읽어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도의 독해 능력을 요구하는 제시문들이 가득 찼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열심히 했어도 시험을 못봤다는 말이 나오는 아이러니한 실정입니다. 이 어려운 시험을 해내는 아이들이 경이로울 뿐입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수능에 해당하는 모든 내용을 어떻게든지 수박 겉 핥기식이라도 흩어주면서 교과서 진도를 다 나간 후, 교과서에 없는 내용까지 보충해주어야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교과들이 같은 방식의 접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교사가 교과서 진도에 쫓기니 제대로 듣고자 하는 아이들조차도 수업을 이해하는 확률이 50%를 넘지 못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지 아닌지는 개의치도 않고, 마치 ‘쫓아올 수 있는 놈만 쫓아와라.’식입니다. 그러니 수업 시간 안에 쫓아오는 놈만 살아남고(그것도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나머지는 이해되든 안되든 넘어가야 합니다. 뒤처지는 아이가 없나, 못 쫓아오는 아이가 없나 돌아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진도를 빼나가는 것이 급선무인 판국입니다.

 

여과 없이 전달되는 교과서의 양뿐만이 아닙니다. 교과서 이외에 수행평가, 별도의 시험공부, 그리고 학원 공부까지 해내야 합니다. 특히 지필시험만을 위한 별도의 공부를 따로 더 해야 합니다. 누구나 경험했듯이 우리 교육에서는 수업만 열심히 듣는다고 시험을 완벽하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교사들이 변별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수업내용과 별도로 더 까다롭고 어렵게 출제하므로 어차피 수업 내용 이외에 문제 풀이로 그 이상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히(?) 시험 때가 되면 학원이 해당 학교의 기출문제들을 철저히 분석하여 자주 나오는 문제 유형들을 뽑아서 시험 준비를 해줍니다. 그러니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학원이라도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수업 따로, 시험공부 따로 해야 하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어차피 억지로 해야 하는 공부라면 시험공부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고, 이를 대신해 주는 학원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쫓아가려고 바둥거리는 아이들조차 교과서 내용을 소화해 낼 여유도 없이 달아나버리니 학년을 올라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모든 교과의 너무 많은 학습량에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한 채 쫓아가다 쫓아가다 결국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쳐 떨어지고 맙니다. 심하게는 좌절감을 느끼고 포기하게 됩니다. 당연히 수업에 대한 흥미도가 낮아지고, 그 결과 점차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면 학습부진 교과목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에는 어려운 수학이나 영어부터 포기하는 과목들이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실에서 수업 시간에 엎어져 있는 아이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학습부진이 누적되고 악화되어 결국 학습부진아로 낙인찍히게 되면 학습부진아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든, 낙인 효과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과도한 학습량에 노력하고자 하는 아이들조차 학습부진아로 전락하게 만드는 기이한 교육 체제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내가 우리 교육의 모순을 정리하는 또 하나의 용어입니다. 모든 것이 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침이 도리어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판국입니다.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인데도 우리 아이들의 학습량은 줄어들지를 않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어르신들의 고등학교 검정고시반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기출문제들을 설명하고 가르치면서 점차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정도의 수준과 양이라면 영어를 읽고, 구사하는데 충분할 것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재학 기간 동안 검정고시 영어 수준 정도로만 수업이 이루어졌더라도 아마 모든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재미를 느끼며 참여하고, 외국인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 모두 자신 있게 영어를 구사했을 것입니다. 기초, 또는 교양과목들을 조금 낮은 수준으로 가르치면 아이들도 저렇게 지쳐하지 않고, 즐겁게, 제대로 배워갈 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도 밤 11시에 야간 자습을 끝내는 학교 벨이 울립니다. 항상 들어왔던 소리이지만 오늘따라 새삼스럽습니다. 우리 아이들 참 공부 열심히 합니다. 점수 한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동시에 무엇을 위한 야간 학습인지, 그리고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것인지 새삼 회의가 듭니다. 정규 수업 시간도 많은 시간인데 거기에 방과 후 수업, 더 나아가 야간 자습까지... 얼마나 엄청난 것을 배우고 연구하길래 하루 종일 그 많은 시간들을 투자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내가 대학원 때도 이렇게 까지는 안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애를 쓰는데도 교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좌절하고 절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교사로서 더욱 곤혹스럽습니다. 이렇게 애쓰는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못 쫓아가고, 결국에는 포기하게 만드는 것일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모든 교육 정책가들이, 그리고 교실의 모든 교사들이 진지하게 고려해 봤으면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자퇴하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