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마음속에 궁금증이 가득 차올랐다. 눈앞에 있는 이 아이가 정말 어린 왕자일까?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일이 현실로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아이가 정말 그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어린 왕자라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실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린 왕자는 어떻게 동물이나 식물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하루에 44번이나 해가 뜨고 진다고 했는데, 그런 빠른 자전을 하는 별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바오밥나무가 소행성에서 자랄 수 있을까? 정말 그렇게 크게 자랄 수 있을까?’
‘어린 왕자가 만나는 여러 행성의 거주자들이 모두 작은 행성에 살고 있다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누가 봐도 모자인 그림이 어떻게 어린 왕자와 통할 수 있었을까?
사실, 어린 왕자는 그저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이다. 소설이기에, 동화이기에, 당연히 공상과학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는 상상력의 힘으로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그동안 나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깊이 따져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눈앞에 있는 이 아이가 정말 어린 왕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 모든 의문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종종 텔레파시를 보내는 상상을 하곤 했고, 종말론을 믿었으며, 귀신의 존재도 확신했다. 사후 세계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했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몸서리쳤으며, Y2K에 겁을 먹기도 했다. 그러니 어린 왕자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하기보다는 긍정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이 과연 옳을까? 이곳은 나 혼자만 아는 비밀스러운 공간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찾을 수 있다면 호기심 많은 누군가도 이곳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그 누군가가 바로 이 아이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중요한 문제나 고민이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심플 이즈 베스트.’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궁금하면 물어보면 된다. 허리 통증이 점점 심해져 바닥에 누운 채로,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너 혹시 여우 친구가 있지 않니?”
아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놀란 얼굴로 아이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 여우를 어떻게 알아요? 우리는 서로 길들여졌어요. 아저씨도 여우에게 길들여졌나요?”
“나? 나한테 묻는 거야?”
아이는 얼굴 가까이 다가와, 그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내게 비추며 물었다. 당황했지만, 아이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심은 거짓말을 모르는 아이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사회성이 발달하기 전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아이가 그런 사회성을 갖추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이 아이가 정말 어린 왕자라면, 나 역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너희 집은 B소혹성이고, 장미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니? 오래전에 여우를 만났고, 양을 그려주는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어?”
내가 알고 있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아이에게 물었다.
“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이의 눈이 더 크게, 더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이 아이는 정말 그 어린 왕자일까?
‘뭐 이런 꼬맹이가 다 있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내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저씨도 여우와 친구였던 거예요? 여우가 그랬어요. 길들여지면 책임이 따른다고… 그래서 아저씨도 책임을 지고 있었나요?”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아이의 순수한 눈빛이 내 마음을 진지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나는 여우와 친구는 아니지만, 책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지.”
“나도 책임이 무엇인지 알아요. 하지만…”
아이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눈동자가 흔들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나를 책임져야 해.”
웃으며 말하자 아이는 큰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도 나에게 길들여졌어요?”
아이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은 내가 조금 다쳤어. 놀라는 바람에 허리를 삐끗해서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네. 그래서 이렇게 누워 있는 거야.”
아이의 눈에 염려가 스쳤다. 나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리를 잡아주며, 내가 마련한 아지트를 간단히 소개했다.
“여기서 잠시 같이 시간을 보내자. 나중에 괜찮아지면,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조금의 시간이 흘러, 나는 이 아이가 정말 어린왕자임을 알게 되었다. 생텍쥐페리가 이야기하던 어린 왕자가 맞았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이곳에 오기 전에 서울에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